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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그마들의 능력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미리 볼 수는 있죠."

 이든은 여전히 '그들'을 '도그마'라고 불렀다. 그는 마루를 접하기 이전에 도그마를 접했고, 그는 오래전에 , 그의 기억이 희미해져 아주 가끔만 그를 악몽에 시달리게 할 만큼 이전에 그들을 접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 능력은 과거에도 해당됩니까."

 테일러가 그렇게 말했을 때, 이든 플로베르는 세스 테일러를 바라보았다. 그와 세스 베일리 사이에 어떤 연관성도 어떤 연결고리도 없다는 사실을 이든 플로베르는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마치 눈앞에 나타난 스물여섯 살의 세스 테일러는 마치 이든에게 세스라는 이름을 가진 오년 전에 죽은 그의 교관이자 동료였던 남자를 떠올리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손에는 코코아가 들려있었다. 그가 세스 테일러에게 코코아를 들려준 것은 그냥 순전히 편안하게 말을 이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파트너가 쉽게 착각했던 것처럼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잘 웃었고, 잘 말했고, 잘 마셨고, 솔직했다. 그는 적어도 세스 테일러 앞에서 쉽게 웃지는 않았지만 부분적으로 솔직해졌다. 그는 세스 테일러를 보면 세스 베일리가 생각났고 그는 약간의 양심의 가책과 세스 베일리가 잃어버린 생에 대해서 무게감과 죄책감을 느꼈다. 이든은 이 상황이 굉장히 우습다고 생각했다. 세스 테일러는 그가 오래전에 눈앞에서 죽도록 내버려둔 남자를 떠올리게 했고, 코코아는 그에게 아이다를 떠올리게 했다. 모두 오래된 기억들이었다. 아이다 코스트너와 학교 앞의 작고 비좁은 플랫과 고작 일년 남짓의 연애, 라플란드와 순록과 비행기와 케이크. 세스 베일리와 도그마와 예지와 서브웨이 샌드위치, 평행세계와 호텔과 프로텍터들. 이든 플로베르는 세스 테일러를 바라보았다. 이든은 그를 세스를 부르듯 여전히 세스라고 부르지 못했다. 그는 테일러였다. 이든은 그에게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권하지도, 제인의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그는 테일러였다. 이든은 그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한마디도, 자신에 대해서조차 한마디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세스 테일러는 이든에게 벌레구멍에 대해서 물었다. 그 능력은 과거에도 해당됩니까. 

 내 터널은 항상 딱 십분 앞에 있어. 십분 만큼만. 세스, 좀 더 훈련하면 내가 보고 싶은 순간을 볼 수 있나? 단 십분이라도 괜찮아. 쿨타임이 길어져도, 그래 그것도 괜찮아. 과거에 터널을 뚫는 건 불가능해?

 "안되더군요."

 이든은 침묵했고 이내 자리를 떴다. 그는 악몽 이외에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연결고리들을 더 이상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세스 테일러는 세스 베일리와 어떤 연관성도 어떤 연결고리도 없다는 사실을 이든 플로베르는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 그가 이든의 과거로 이어지는 길목에 서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진저색 머리를 가진 세스 테일러였다. 스물여섯은 아직 스물일곱이 되기에 일년이 부족했다. 


 도그마들의 능력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미리 볼 수는 있죠.

 이든은 자신이 그렇게 말했을 때, 그가 무언가 몇마디의 말을 생략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과거에 이든 플로베르가 세스에게 말했던 것과 같았다. 시간은 이든의 앞에서 세스의 앞으로 흘렀고, 이든은 그 두 시간사이를 종이처럼 반으로 접어 아래에 지름길을 만들었다. 그는 이제 십분이 아니라 열두시간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데릭 로슨은 죽었고 수 많은 요원들이 다시 목숨을 잃었다. 루윈이 걱정한 것은 그가 손에 총을 쥐고 생채기를 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다시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생각보다도 훨씬 섬세한 남자였다. 이든이 그의 아주 미묘한 감정을 알아차리듯, 그 또한 이든의 감정을 알아차렸다. 이든이 내키지 않는 얼굴로 사격장에 서있는 것은 그가 다시 소용돌이 치는 과거의 감정들 한 가운데에 서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여전히 권총을 싫어했고,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가 다치지 않기를 바랬다. 그것은 막연히 이든 플로베르 자신을 오래된 기억에서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가 이내는 루윈 이바노브와 그가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커졌다. 그것이 자신의 진심인지 단순한 변명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든은 열두시간 앞을 바라보는 능력을 가지고 꾸준히 사격장에 섰다. 비록 어떤 날은 그가 단 한발의 총알도 쏠 수 없었더라도. 
 그는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쉽게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역사책을 한번만 뒤집어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생존에 직면한 개체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고 강했으며 이든 플로베르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제거하기를 원했지만 그들이 쉽사리 제거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얼마간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는 그들이 쉽사리 제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그들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든은 그가 가장 시덥지 않게 생각하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고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이든 플로베르의 전화를 받았다. 남자는 펍에서 한잔 걸치는 대신 자신의 집에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뒤에서는, 조 누구에요, 하고 청년의 목소리 같은 물음이 들렸다. 이든 플로베르는 그에게 몇 가지의 농담을 던지고 몇 마디의 욕을 먹은 뒤에 뉴욕 자이언츠와 리차드 포드의 이야기를 했다. 이든 플로베르는 숨통을 트기 위해 폐 깊숙이에 공기를 집어넣는 대신에 자신의 몸에 바늘로 만든 바람구멍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든 플로베르는 남자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남자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든이 왜 그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이해했다. 그들은 서로의 과거에 대해 말할 만큼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 사실상 이든 플로베르는 루윈 이바노브에게 조차 자신의 과거를 말한 적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도 그들은 바람구멍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그 느낌을 알고 있었다. 남자가 바람처럼 말했을 때 이든 플로베르는 웃었다. 



 한 때 이든 플로베르는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루윈 이바노브에게 자신이 필요할거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전화를 받는 그의 구겨진 셔츠와, 접힌 양복바지의 끝단을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목 아래에서 담배연기처럼 들끓던 것들을 말해야한다고 생각한건 그 때문이었다. 그는 루윈에게 자신이 필요할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의례적인 미소와 엷은 무표정들이 제 앞에서 바스라질때는 더더욱 그랬다.

 "루윈"

 이든 플로베르는 취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비틀거렸고 코트 자락에서 차가운 바람의 냄새와 술냄새가 났다. 루윈. 흐릿하게 뜨인 녹색 눈으로 한참이나 루윈을 바라보던 이든은 헤메는 사람처럼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마른 몸을 끌어안았다. 몸은 집 안의 공기와 함꼐 미지근하게 덥혀있었고 그에게서는 아직 식지 않은 커피의 향이 났다. 늦은 시간까지도 연락없이 돌아오지 않는 이든 플로베르를 그는 넓은 집의 식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기다렸을 것이었다. 그의 손에는 손으로 책갈피를 대신한 채 책이 들려있었다. 이든이 차가운 바람을 등 뒤로 맞으면서 현관 문을 열었을 때 루윈은 거기에 서있었다. 내가 틀렸어요. 루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든 플로베르는 지금껏 그에게 자신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푹퐁이 강바닥을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그의 가슴 가장 깊숙이에 침전해있는 모든 기억들이 들쑤셔져 뒤엎어진 다음에야 그의 생각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루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책을 들지 않은 손만이 천천히 올라와 등 위에 얹혀졌다. 내가 틀렸어요. 이든은 울고있었다. 어깨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이든은 그가 짊어지기로 결심했던 것들이 어쩌면 자신에게 지나치게 무어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는 여전히 그런 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덜 자랐는지도 몰랐다. 내가 틀렸어요. 이든은 자신이 틀렸다고 쉽게 인정하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여느 과학자들 만큼이나 고집이 셌고, 루윈 이바노브 만큼이나 고집이 있었다. 루윈은 그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무언가가 정말로 틀렸다는 것을 그가 꺠달았던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이든 플로베르는 루윈의 곁에 있는 오년 동안 그에게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어느날 문득 침대 위에서 그에게 이 집으로 짐을 옮기겠다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든은 그와 함께 있고 싶었고, 그가 혼자 있는 것이 싫었다. 그에게 넓고 황량한 고요대신에 자신이 필요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에게 이바노브가 필요했었는지도 몰랐다.

 "당신이 필요해요."

 루윈 이바노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등 뒤로 책의 무게가 느껴졌다.

 
* OD 현재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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