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나는 쪽으로



"또 찡그린다."

  시야 안에 손바닥이 움직이는 것 같더니 그 끝이 가볍게 눈 사이를 누르고, 문질렀다. 루윈은 약간 눈가를 찌푸리고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그 중지 손가락이 이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이 평소처럼 웃었다. 루윈, 그거 알아요? 신문 볼 때 맨날 얼굴 찡그리고 있는 거. 들고 있던 신문을 무릎 위에 걸치듯이 올려놓았다. 그런 건 언제 보고 있었어요. 아까부터. 플로베르는 거기서 말을 끊으려는 듯, 짧은 막을 두고는 다시 말했다. 보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고 손가락을 떼어내었다 싶더니, 이번엔 입을 맞추었다. 아주 잠시간 동안 입이 맞닿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 같았다. 떼어내는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루윈은 정말 멍청하게도, 새삼스럽게 남자의 입술도 여자의 것만큼 부드럽다는 생각을 한다. 플로베르는 이따금, 아니 생각보다 잦은 빈도로 그러한, 가벼운 스킨십을 하곤 했는데 그건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든 플로베르는 루윈 이바노브와는 달리, 솔직한 성격이었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시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그렇게 웃는 것은 아무래도 버릇인 것 같았다. 자주 웃는군. 속으로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신문을 접는다. 수요일의 석간은 그 요일의 위치만큼 애매하고 무미건조했다. 석간에는 이따금 조간에 뜬 기사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혹은 더욱 과장시켜서 서술하거나, 그 외에 다른 새로운 정보를 들고 오기도 하였지만 원래 저녁의 읽는 신문이란 그 두께의 차이만큼, 아침에 읽는 신문만큼 극적이진 않은 법이었다. 아침에 오는 신문이 정보를 꽉꽉 채워서 오는 만큼 두껍고 무거웠던 것이 비해, 회사에서 돌아와서 읽는 신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그리고 얄팍했다.
  다 읽었어요? 어디 가요? 창 밖으로 멀리에서 구급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지역에선 썩 들리지 않는 소리인데. 루윈은 몸을 일으키다가 무언가가 팔을 잡은 느낌이 들어서 그 쪽을 바라보고 말한다. 신문 버리러 가는거에요. 나중에 버리면 안 돼요? 이따금 그럴 때에는 루윈은 그가 장성한 남자를 대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지금 크고 있는 다섯 살짜리 아이를 대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곤 했다. 루윈 이바노브는 가능한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이따금 신기하게 보였다. 알고 보니 나이도 스물일곱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바노브는 그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앉았다. 원한다면 자신의 팔을 잡아당겨, 놓게 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어쩐지 바보같이 느껴졌다. 예를 들어, 그런 것이다. 아무도 아이가 무섭다고 할 때에 무조건적으로 혼자서 자야 한다고 강요하는 어른은 잘 없다. 있을지도 모르지만 루윈 이바노브는 아이에게 그리 엄격하지 않았다.

"꼭 아이 같네요."
"누가요?"

  루윈은 대답 대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플로베르는 약간 눈을 꿈뻑이다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킨다. 다만 아이와 다른 것은, 아이는 쉽게 질려 버리는 것에 반해 아마 그는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비슷한 정도로 질릴지도 모르지만. 루윈은 왼손을 뻗어서 그의 이마를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가볍게 잡아당기다가 옆으로 쓸어보았다. 가려져 있던 얼굴의 인상이 그대로 시야에 들어왔다. 텔레비전의 소리가 귓가에 들어왔지만 너무 작아서 아나운서의 말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플로베르가 소리를 줄였기 때문이었다. 루윈은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왼쪽 손을 소파의 등 받침에 짚으면서 그의 입에 입술을 겹쳤다. 손등에 힘이 들어가면서, 무게가 그 쪽으로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딸은 모든 것에 쉽게 질렸다. 생일 날 받은 선물도 일주일 즈음 지나면 그녀의 방에 있는 장난감 통에 던져졌다. 오히려 아이는 언젠가 그녀의 어머니가 사 준 롤러 스케이트 같은 것을 더욱 즐겼다. 많은 장난감의 운명이 그러하였겠지만 아이의 장난감은 평소보다도 빨리 그의 첫 주인을 바꿔야만 했다. 아내는 아이가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그러모아선, 이따금 어린이 집에 기부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루윈은 아이한테 이런 키스를 해줬나 봐요?"
"그런 농담 재미없어요."

  아깐 아이 같다고 하더니. 플로베르는 웃었다.
  루윈은 그에게 전에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남자를 상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것은 정말로 순수한 의문이었을 것이다. 루윈은 이따금 그가 이 남자를 정말로 좋아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곤 했다. 글쎄, 사실상 좋아한다는 감정은 정의를 내리기에는 너무나도 애매하기에 그는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둘 다 그러는 걸 수도 있었다. 평범하게 살아온 남자 둘이 아무런 복선도 없이 서로를 좋아하게 되었다, 라는 것은 너무 잘 짜여진 싸구려 소설 같다.

"플로베르."

  루윈은 여전히 그를 성으로 불렀다. 

"나랑 하고 싶어요?"
"네?"
"남자한테, 그런 욕구를 느끼냐고요."

  그는 남자한테, 라는 말을 하고 난 후에 조금 간격을 두고 뒤의 목적어를 이었다. 아마도 그것이 그의 머릿속에서 조합된, 그러한 행위를 가리키는 가장 상스럽지 않고, 점잖은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자신과 섹스하고 싶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못했던 걸 수도 있다. 그는 생각보다는 상당히 보수적이었고 또한 일반적으로 품위가 없다고 일컬어지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플로베르는 그의 얼굴을 잠깐 쳐다보더니 웃었다. 언제나와 같은 웃음이었는데 루윈에겐 그것이 조금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플로베르는 대답 대신 그의 허리를 끌어 안으면서 이번에는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루윈의 몸이 그에게 가까워졌다. 다른 사람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그 자신, 루윈 이바노브라는 사람 자체가 잘 웃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그 얼굴의 근육은 지금까지 살아온 이십구 년 동안 그대로 굳어져 버렸을 것이다. "싫어요?" 플로베르의 목소리는 루윈의 것 보단 조금 덜 건조했다. 그것은 공기가 아니어서 단지 그렇게 느꼈을 뿐이었겠지만 그 순간에는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루윈은 무릎을 세운 채로 앉아 그를 내려다보았다. 손을 올려서 그 이마를 쓸어 올려본다. 싫냐고? 드러난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춰 주고픈 욕구가 일었다. 아마 떼어낼 때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으리라. 뉴스의 마지막 문장을 맺고 아나운서의 저녁 인사와 함께 저녁 뉴스의 끝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싫으면 처음부터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앞서서 말하였듯이 루윈 이바노브는 생각보다는 보수적이었고 고집이 있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그만큼 생각보다는 솔직했다. 그는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좋아하는 척 할 정도로 친절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싫냐고? 루윈은 속으로 그 문장을 다시 되새겨봤다. 

"싫어하는 것 같아요?"

  루윈은 그 이마에 입을 맞추는 대신에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위로 쓸어 올려, 눈을 가렸다. 루윈 이바노브는 지금까지 평범하게 여자를 좋아했고, 한 때 자신의 아내였던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했으며 아이까지 낳았다. 지금 그 아이는 다섯 살로, 아마 미국 대륙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운만 좋다면 아내는 아이에게 루윈에게 전화하는 것을 잊지 않고 시킬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플로베르의 눈을 가린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 자신의 표정은 굉장히 보기 싫은 표정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싫냐고? 글쎄. 하지만 좋으냐고 물으면 그것 역시 애매한 대답밖에 할 수가 없다. 루윈 이바노브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인간 관계를 굉장히 담백한 것 같으면서도 본질적인 부분은 쓸데없이 복잡하게 헝클어 놓았다. 글쎄, 잘 모르겠지만 싫다면 그런 욕구 역시 없었겠지. 그의 입가에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이마에 하는 키스 같이 짧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다음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무언가의 가전제품이었던 것 같지만 그 소리는 너무 작아 그의 귀에는 제대로 닿지 않는다. 플로베르는 조금 입을 열었다. 루윈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말 없이 그 안으로 파고드는 것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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