滿潮


 이든 플로베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창에 꿰뚫려 너덜너덜해진 세스의 팔이 자신의 발치에서 덜렁거렸다.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힘없이 늘어진 시신에 어깨와 등이 굽었고 경추에서 허리로 내려오는 척추들이 견디기 어려운 무게에 잠시 휘청였다. 이든. 관을 들 때는 어깨로 드는 거야. 흘러내리지 않도록. 매고 다른 손으로 관을 잡아. 저스틴은 전에도 조부의 관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얀은 멀찍이서 검은 양복을 입고 생애 처음으로 관을 들고있는 이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얀과 눈이 마주쳤을 떄 얀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미국 십대들이 대개 그렇듯이 소년의 티를 완연히 벗고 청년의 몸을 한 남자애들은 대게 손이나 발부터 자라났다. 어른이 되기에는 어깨가 조금 모자랐고 아직 덜 자란 티를 내듯 목 뒷덜미에 빛에 비쳐야만 보일 법한 솜털이 남아있었다. 어른이 되기에는 아직 조금 모자란, 청년의 티가 드러나는 이든과 저스틴의 어깨 위에 묵직한 관이 올라왔을 때 이든은 숨을 멈췄다. 짐의 무게가, 사체와 관의 무게가 아직 덜 자라난 어깨를 묵직하게 내리누르고 흔들었다. 이든과 저스틴은 한발자국씩 앞으로 내딛을 때 마다 휘청거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이든은 세스를 안고 걸어가며 짐의 장례식을 생각했다. 이든의 아이보리색 터틀넥은 오래전에 모래 빛으로 지저분해져 있었고 이미 황폐하게 변해버린 땅의 모래냄새 위로 세스의 몸과 닿은 곳 마다, 세스를 안아 일으킬 때 닿았던 곳 마다 피로 얼룩져 있었다. 관처럼 어깨에 들쳐 매었으면 조금 더 수월했을 지도 모른다. 성인 남자의 무게는 생각보다 버거운 것이어서 이든은 짐과 짐을 넣었던 관을 생각했다. 세스. 그가 죽는 순간 눈이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평행세계에서 돌아가면 세스도 관 안에 무겁게 내리 잠길 것이었다. 이든은 물에 가라앉는 구멍 난 보트처럼 땅 아래로 꺼져가던 짐의 관을 떠올리고, 꽃을 떨어트리며 내려다보았던 구덩이 안에 세스가 가라앉아 있는 것을 상상했다. 본래 속해있던 세계로 돌아오면서 이든은 지금까지의 죽음들과 세스의 죽음 사이에서 차이점을 발견했다. 이든은 이제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 친구들도 짐도 아이다도 그냥 죽었을 뿐이었지만 세스는 그가 죽였다. 또는 죽는 것을 관조했다. 

 "먼저 가요"

 호텔에 도착했을 때 이든은 그들의 등 뒤에 말했다. 세스를 눕혀야했다. 아니 그는 죽어있었음으로 그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쓰는 형용사는 산 사람에게만 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든은 세스를 어딘가에 '놓아야'했다. 크루거가 돌아보았을 때 이든은 약간 웃었다. 가요. 입술만이 움직였다.  
 그는 동료들과 뒤떨어져 복도를 걸었다 호텔의 길게 늘어선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 위에서 이든 플로베르는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장례식장에도 이런 카펫이 깔려있었던가. 이든은 아득하게 흔들어 놓은 기억 속을 더듬다가 오히려 장례식보다는 결혼식에 어울릴 법한 부드러운 카펫 위를 걸어 가까스로 나타난 문 앞에 멈추어 섰다. 세스의 무릎 뒤를 받쳐 안았던 팔을 느리게 움직였다. 팔을 움직일 때 마다 몸의 무게중심이 기울어 세스의 팔이 덜렁거렸다. 제발. 누구에게 말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이든은 빌었다. 제발. 굽혀있던 팔을 천천히 펴고 손가락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이든은 하얀 시트로 뒤덮인 침대 위에 세스를 내려놓았다. 세스의 몸에 묻어있던 핏자국의 일부가 시트에 묻었고, 나머지 절반은 이미 세스의 사체 위에 굳어 떨어지지 않았다. 세스. 세스의 이름을 곱씹을 때 마다 이든은 언어가 아니라 다른 것을 곱씹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할 사람이 없는 것은 사물에 대고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컵. 책. 노트. 그런 것들과 같이 아마 세스의 이름은 불려도 대답없이 오랫동안 이든의 주변을 맴돌다가 비석으로, 묘비에 새겨진 한 종류의 알파벳의 나열로 끝날 것만 같았다. 이든은 너덜거리는 세스의 팔을 바라보았다가 차갑게 굳은 손을 조금 끌어올려 반대편의 멀쩡한 어깨와 길이를 맞추어 놓았다. 퍼즐처럼 그의 팔은 아귀에 맞아 들어갔다. 이든은 그를 놓아두고 자리를 떳다. 모두가 향한 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든은 잠시나마 예측하고 있었다. 헤일리의 목소리와 헤드의 목소리가 오가다가 그들은 잠시 방을 벗어났다. 떠나갔던 절반과 남아있던 절반이 합해 전부가 되었는데 한 사람이 부족했다. 그리고 곧 한 사람이 더 부족하게 되겠지만. 이든은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세스의 어깨춤을 한번 더 바라보고 곧 등을 돌렸다. 괜찮았다. 슬픔과 자책은 천천히 밀려드는 것이었다. 아직은 밀물의 때가 아니었다. 

 피가 덕지덕지 엉긴 셔츠에 손을 문질러 닦고 이든은 방문을 열었다. 헤일리의 눈이 셔츠에 와 닿았다가 사라졌다. 이든은 벽에 기대듯 한쪽 어깨가 벽에 스치도록 방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벽에 기대어 서서 의견을 묻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든은 방 안을 살폈다. 헤드는 없었다. 이든은 멀리서 들리던 소음과 머릿속에서 울리던 소음을 다시 한 번 그렸다. 시선의 끝에는 익숙한 남자가 무리의 뒤쪽에 빠져나와 서있었다. 이든은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주변을 흘려보냈다. 최소한의 주의와, 최소한의 정신만이 그 방 안에 남아있었다. 필요 없는 것들, 과한 것들, 저만의 문제인 것들, 이제 밀어 닥칠 것들. 많은 것들이 최소한의 주의만을 거기에 둔 채 머릿속과 가슴 속으로 말려 들어왔다. 나머지의 것들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것들은 여기서는 필요 없었다. 이제는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고, 후회하고 견뎌내야하는 것들은 늘 개인의 문제였다. 이제는 오롯이 그만의 문제였다. 불평할 사람도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이든 플로베르는 망설이기는 했으나 그렇게 비열하지는 못했다. 이든은 루윈에게서 가까스로 시선을 떼어냈다. 그는 평소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같은 표정으로, 같은 자세로 무리에서 두발자욱 쯤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서있었다. 이든은 벽에 등을 기댄 채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든은 헤일리의 눈길이 다시 한 번 제 얼굴에 닿았을 때 헤일리를 바라보며 웃었다. 순간 다리가 휘청거렸고 이든은 손으로 벽을 더듬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더는 서 있을 힘이 없었다. 발목까지 잠겼던 물들이 거센 물살로 이든의 발목을 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든은 세스가 관 속으로, 구덩이 속으로 가라앉는 생각을 했다. 계속. 뇌 안에서 재생되는 예지처럼. 

 "제거"

 이든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는 괜찮았다. 감정과 이성은 별개의 문제들이었다. 그는 최소한의 이성과, 최소한의 주의만을 남겨두고 사고했지만 대신 나머지의 것들은 이미 양피지 자루처럼 말아 한켠에 치워놓았다. 아직은 밀물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들이 들이 닥치기 전까지, 아니 들이 닥친 후에도 이든 플로베르는 가장 이성적인 사람 중의 하나였을 테지만 지금도 그는 이성적이었다. 세스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고 누군가가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든은 자신의 책임을 도그마에게 덮어씌울 만큼 비열하지는 않았다. 다른 어딘가에 감정을 내버리는 것 보다는 혼자 삭이는 것에 성격에 맞았다. 이든은 고든이 했던 말들을 기억했다. 이든, 자네 세상에 외계인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 세상이 아니지 우주에. 별들이 이렇게도 많은데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인간의 오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헤일리를 보면서 이든은 조금 더 웃었다. 지구에 다다를 수 있는 문명을 가진 것들이 지구에 올 때, 그게 과연 순수한 호기심일 확률은 없네. 무에 가깝지. 이든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가늠했다. 그와 지금껏 같이 움직였던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능력은 무력감에 가까웠고 말은 언제나 행동보다 가볍기 마련이었다.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그들의 능력은 인간의 것이라기에는 무서웠고, 이든은 다시한번 키스를 떠올리며 그의 불필요한 강함을, 적어도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과하게 느껴졌던 그의 유능함을 가진 도그마들을 생각했다.

 "우린 끝장을 보게 될 거에요 헤일리. 역사책을 하나만 뒤집어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죠."

 이든 플로베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언젠가 끝을 보게 될 터였다. 지금 당장의 공존은 결국 나중의 제거로 이어지게 될거라고 이든 플로베르는 확신했다. 그의 확신은 들어맞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매우 드물게도 이든은 자신의 생각을 오만하리만큼 확고하게 믿었다. 그는 고든의 말을 떠올렸다. 그런 문명을 가진 것들이 순수한 목적으로 이 먼 거리를 날아왔겠나? 이든은 천체물리학에, 우주물리에 관심을 가진 고든을 기억했다. 그는 손자를 잃었고 그리고 이든에게 벌레구멍의 이야기를 했다. 이든이 아이다를 떠올리고 있던 그 춥고 오붓했던 겨울의 크리스마스 서재에서. 역사책을 하나만 뒤집어 봐도 알 수 있는 일들이었다. 고든의 이야기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고든은 의아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이든의 곁에서 잠시 일어섰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 책상 위에 쌓여있던 몇 가지의 우주에 관한 책들 가운데에서 역사책을 펼쳐들었다. 이든은 책을 내려다보고 고든을 돌아보았다. 교수님 연구는요? 고든은 웃었다. 나 대신 네가 하잖나. 
 지금 제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제거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든은 효율적인 쪽을 택했다. 강한 것들은 언제든 드러나기 마련이었고 도그마들의 힘을 알고 있는 이상 이든은 그들이 언제까지 죽은 듯 지내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아주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었고 이든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벽에 기대어 서서 그 수많은 경우의 수들을 헤아렸다. 그들 내의 단 한사람만이라도 인간에게 반기를 드는 순간 조직은 분열되고 반발은 일어날 것이다. 또는 도그마들의 힘은 인간을 위협하기 충분했고 힘있는 것들은 언제고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그들의 능력은 언제든 인간 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에 충분했다. 그것들이 지금 당장 드러나는가 혹은 공존 뒤에 수개월, 수년 또는 수십년의 세월을 거쳐 더 발전되고 조직화된 형태로 드러나는가의 차이였다. 인간으로 이루어진 반란군 조차 세월이 지날수록 무서워지고 똑똑해지는 법이었다. 지금 당장 그들의 수장을 죽이는 편이 수월할 것이다. 그들이 혼란스러운 틈을 적절히 이용하고도 남았다. 고든이 펼쳐든 역사책의 페이지만을 돌아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이든에게 그들은 한 종류의 외계의 생명이었고 그들에게는 인간들 사이에서 고요하게 침묵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생존을 위해서. 이든은 그들의 말 가운데 가장 못미덥고 위험한 단어를 꺼내들었다. 카드놀이를 할 때 뽑아져 나오는 조커에 다름없었다. 단지 생존을 위해서. 이든은 심리학자였고 생물이 가장 무서울 때는 그들이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임을 그는 알았다. 생존은 모든 욕구의 기본이었다. 모든 공격성과 이성의 가장 아래에 있었다. 이든은 그들이 미덥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이든은 자신에게 시선이 머물러있던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 루윈의 눈을 갈색이었고 이든은 그를 오랜만에 본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지났을까. 이든은 헤일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걸어 나왔다. 주저앉고 싶었다.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고는 끈적거리는 손을 흐르는 물에 씻었다. 이든은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기척에 얼굴을 찡그렸다. 웃어보이려고 하다가 상처의 아픔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던 탓이었다. 루윈은 이든을 가만히 바라보았고, 이든은 힘이 들었다. 최소한의 주의와 최소한의 이성,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있던 것들을 이든은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었다. 감정들은 나중에 밀어닥칠 것이었다. 조금씩. 아주 고통스럽게. 여러 번에 나뉘어. 이든은 입에 물고 있던 담뱃재가 떨어지기 전에 재떨이 위에 담뱃재를 털었다. 그는 소파 위에 몸을 묻으며 앉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루윈은 의자를 끌어당겨 제게로 다가왔다. 남자의 그런 몸짓에 이든은 힘겹게 입술을 올려 웃다가 뺨 안쪽의 상처가 아파 조금 덜 웃었다. 조금 다쳤어요. 루윈은 왜 그렇게 다쳤냐고 물어보았지만 이든의 대답은 속 시원한 것은 못됐다. 더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뿐더러 이든은 루윈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론이 자신을 때린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얽혀있을 것이었다. 단순히 세스가 죽어서였을지도, 아닐지도 몰랐지만 그건 이든이 알고 있는 바는 아니었다. 얼굴을 긁히기라도 했나봐요. 루윈의 말에 이든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얼굴의 여기저기에 닿았다 사라지는 온기에 집중했다. 그의 손 끝에서 소독약의 냄새와, 거즈들에서 나는 병원의 냄새, 알코올의 냄새 같은 것들이 감돌았다. 구급상자를 뒤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든은 혼미하게 죽음과 알콜과 소독약의 냄새에 취한 채로, 상처로 부르튼 입술로 그에게 키스하려다가 관두었다. 자신의 입술에서는 비린 맛이 감돌았을 것이다. 이든은 그에게 키스하는 대신 약간 지푸려져 있는 듯한 걱정과 무관심 사이에서 애매하게 멈추어 있는 듯한 루윈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이든은 이 호텔 안에 있는 사람 중에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그의 아내조차 그의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듯한 얼굴 위로 서리는 잠깐의 미혹들을 근심들을 몰랐을는지도 몰랐다. 

 "그쪽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에요?"

 루윈은 물었으나 이번에도 이든 플로베르는 모르는 척 대답했다. 늘 후회는 개인의 것이었다. 개인의 것이 아닐 필요가 없었다. 뭐가요. 이든이 그의 갈색 눈동자와 눈썹들을 살피는 사이 루윈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젖은 수건을 가져와 이든의 얼굴을 닦았다. 그 나이의 남자치고는 세심한 치료였다. 이든은 그에게 곧 다섯 살이 된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넘어지고 깨져 늘 어딘가 다치기 십상이었다. 이든은 자신이 모르는 남자의 과거를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잘 짜여진 약간의 마른 물기로 얼굴이 천천히 닦여 나갔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울대가 울렸다. 헤일리의 질문에 대한 선택이요. 이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든은 그 순간 냉정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이든은 자신의 실수를 누구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그것은 온전히 그것에 대한 선택으로 그가 좀 더 나을 거라고 확신한 어떤 생각과 이유들에 근거해 있었다. 루윈은 이든의 상처와 그의 표정을 보고 무언가를 짐작하고 있는 듯 했다. 자신이 한마디도 내뱉지 않아도 호텔 안의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세스는 죽어서 침대 위에 놓여있었고 그가 그렇게 되도록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것은 자신이었다. 곧 모두가 알게 될 것이었다. 지금 자신의 얼굴 위를 젖은 수건으로 닦으며 제 걱정을 하고있는 이 남자 조차도. 
 루윈은 얼굴을 닦아내어주고 난 뒤에 웃옷을 걸쳤다. 이든은 소파에 앉아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디가요. 이든은 그의 손목을 붙잡지 않았다. 집에 다녀올게요. 이든은 그의 대답이 조금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집에요. 집에 가요.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다녀오겠다고 말하는 루윈에게 이든은 간단히 대답했다. 그래요. 마치 이전에 그에게 했던 대답과 같았다. 빨리 결혼하면 그럴 수도 있죠. 루윈의 말이 떠올랐다. 이든은 그때도 그에게 그래요라고 대답했다. 이든은 루윈이 나간 자리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잠시 다리가 휘청거렸다. 세스를 다시 볼 자신은 없었다. 세스에게 가려고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몇 가지의 필요한 것들이 거기 있기를 바래서였을 뿐이었다. 이든은 피가 묻은 터틀넥 셔츠 대신 갈아입을 것이 필요했다. 약간의 술과, 담배와, 세스의 피가 묻지 않은 셔츠. 이전에 루윈을 만났을 때처럼 그 것들은 옷장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터틀넥 셔츠와, 두어병의 위스키와, 두 갑의 담배. 이든은 그 자리에서 셔츠를 벗어 옷장 안에 던져 넣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직도 몸에서는 피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마 터진 입안에서 나던 피냄새였을지도 모르지만. 이든은 테이블 위에 술병을 올려놓고 러그 위로 내려와 앉았다. 




 "플로베르"

 루윈은 그를 이제 플로베르라고 불렀다. 이든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이든은 그의 호칭에서 그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제게 내어줬음을 알았다. 이든은 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그에 한해서는 오래 알고 있었던 사람을 보는 것처럼 직감적으로 굴었다. 그것은 이든이 지금까지 쌓아온 객관적으로도 많은 수에 속하는 여러 사람이 이든 플로베르에게 남긴 일종의 훈장 같은 것이었다. 이든은 직감적으로, 그리고 그보다는 정확히 경험에 근거해 루윈의 말들을 걸러들었다. 그는 이든을 이제 플로베르라고 불렀고 호텔의 러그 위에 앉아 이든은 이제는 확실하게 죽음과 소독약과 알콜에 취한 채로 루윈을 올려다보았다. 

 "언제 왔어요?"

 루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지푸려져 있었다.

 "언제부터 마셨어요"
 "당신이 가고 난 다음부터요"

 루윈은 그저 말없이 눈을 잠깐 감았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동안 그는 어디에선가 그쪽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듣고왔을지도 몰랐다. 이든은 그가 말하지 않는 동안 비어있는 글라스에 술을 따랐다. 그에게 권하지도, 술을 마시는 것을 멈추지도 않았다. 재떨이에는 이미 한 갑 이상이 되어 보이는 담배들로 가득했다. 왜 그랬어요. 루윈의 말에 이든은 대답없이 웃었다. 술이 들어갈 때마다 입안의 상처가 쓰려왔지만 이든에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곁에 와 앉은 루윈이 상처를 치료해줄 때처럼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이든은 러그 위에서 올라와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을 조금 끌어당겼다. 상체를 내밀어 손을 다 뻗지 않아도 약간의 거리면 손이 닿을 수 있는 그 거리를 가로질러 키스했다. 루윈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든을 떼어내지도 않았다. 약간의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을 뿐이었다. 이든은 소파에 앉아 남아있는 술병을 천천히 비워나갔다. 한모금 들이킬 때 마다 입 안이 쓰려와 줄곧 미간을 지푸린 채로 마셨지만 이든은 미리 비워놓은 한 병의 위스키 옆에 두병을 더 비우고 한갑의 담배를 더 피웠다. 루윈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든은 그런 그를 보며 간간히 조금씩 웃었다. 이든이 그에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었다. 그는 루윈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모르는 채로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몸 위에는 누군가가 꺼내어 덮어주었을 담요가 덮여있었다. 루윈. 이든은 그를 부르듯 입 안에서 남자의 이름을 되뇌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의 달빛이 방 안에 스며들듯 침대와, 소파와, 옷장을 비췄다. 이든은 침대 위에 시트 아래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모양을 발견했다. 그는 비척거리고 일어서 침대 위에서 조용히 잠들어있는 남자의 옆얼굴을 바라본 뒤에 욕실로 달려 들어가 어제 먹은 것들을 게워냈다. 그가 어제 먹은 것이라고는 위를 녹여버릴 것 같은 세병의 술과, 두 갑의 담배 연기, 한 잔의 물 정도 밖에는 없었다. 이든 플로베르는 위액이 나올 때 까지 액체들을 게워냈다. 찬물로 입을 헹구고 얼굴을 닦은 뒤 거울을 올려다 보았을 때 이든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의, 약간의 피곤함만이 가시지 않은 얼굴의 남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천천히 걸어나가 루윈이 잠든 침대 곁에 무릎 꿇고 앉았다. 두 팔을 교차시켜 팔짱을 끼고는, 그 위에 턱을 올려놓고 흐린 빛에 물든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피부는 백인들 중에서도 창백한 축에 속했다. 루윈. 이든이 작게 속삭이는 소리에 그가 뒤척였다. 손을 들어 앞머리를 살살 훑으면서 이든은 잔숨결이 흘러나오는 입술을 바라봤다. 부모가 자는 사이에 큰 사고라도 쳐놓은 아이처럼 루윈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는 어느 새랄 것 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는 완연히 다 자란 어른의 어깨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아이다가 죽었을 때도 이든의 어깨는 어른의 어깨가 되어있었다. 플로베르. 루윈이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시트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낙엽 소리처럼 들렸고, 루윈이 몸을 일으키며 침대가 출렁였다. 루윈은 말이 없었다. 이든은 한참 동안 자신의 다 자란 어깨 안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달빛이 사그라드는 동안 새벽빛이 들었다. 흰 시트가 푸르스름해 졌고 그 때도 이든은 울고 있었다. 등 뒤로 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호텔의 창밖을 내다보면 물이 밀려드는 바닷가가 보였을 지도 몰랐다. 루윈의 숨소리는 울음소리 사이에서도 가늘게 귀에 들어왔다. 이든은 소리 없이도 한참을 울었다. 감정들은 물 밀듯 밀려오는 것이었다. 느리게. 오래도록. 여러 번에 걸쳐서. 알고 있음에도 예기치 못한 것이란 그런 것이었다. 만조였다.

'PROJECT-D' 카테고리의 다른 글

Happy Birthday  (0) 2011.10.14
Sleeping Pill  (0) 2011.10.14
Trigger  (0) 2011.09.21
Mint Cookie in Suit  (0) 2011.09.05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0) 2011.08.21
by mer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