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ll
정민회의 손은 물고기처럼 피아노 위를 유영했다. 손을 움직일 때 마다 불거져 나오는 뼈들이 등 위로 불쑥 튀어나온 지느러미 같았다.피아노의 맛. 머릿속에는 그 단어만 맴돌았다. 피아노의 냄새. 피아노의 감촉. 피아노의 소리. 피아노의 느낌. 손 끝과 눈과 귀에 닿는 피아노의 모든 것이 생생했다. 오늘은 비가 왔고 비오는 날에는 피아노에서는 습한 나무의 냄새가 난다. 지금 막 대패질을 끝낸 듯 매끈하게 나무를 다듬는 과정에서 나무에서 배어나오는 내음. 마치 젖은 색연필의 물컹한 내피에서 나는 냄새. 번드르르한 피아노의 감촉은 희고 검고 차갑다. 손이 닿는 자리마다 단지 약간의 온기만이 감돈다. 지문을 찍어내리듯 건반의 가장자리만이 홈이 패이듯 문들거리는 느낌도 기억하고 있다. 하프처럼 현이 조금 울리고 건반의 나무가 딱딱 떡떡 거리며 소리를 낸다. 매끄러운 스케일과 벼락처럼 내리치는 양손의 화음. 리스트의 초절기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땀에 젖은 검은 턱시도가 등줄기를 따라 축축하게 늘어 붙었다. 슈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의 현이 끊어지는 소리는 바이올린의 현이 끊어지는 소리만큼이나 분명하게 들렸다. 축축하게 젖은 실크 셔츠가 목을 감싸 그는 금방이라도 하얀 셔츠에 목을 졸려 죽을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는 셔츠에 목을 졸리지 않아도 금세 죽을 것처럼 얼굴이 창백했고 늘 걱정이 될 만큼 비쩍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마르고 긴 다리가 땅을 지탱하고 서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해 보일만큼 입술은 푸르죽죽했고 희고 큰 손은 매끄럽게 피아노 위에 얹어있었다. 단순한 그리고 단순한 디자인만큼이나 쌀 것이 분명한 은색 커프스단추가 번들거렸다. 으레 그렇듯 무대 주변의 공기는 차가웠다. 한 층 내려선 객석의 공기도 차가웠고 노교수가 펜을 굴리며 앉아있는 책상 앞의 공기도 차가웠다. 교수는 물을 삼켰다. 그의 손등 위에는 푸르스름한 강줄기가 흘렀다.
정민회는 현이 끊어진 피아노를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의 시선은 차가웠다. 정민회군 그게 끝인가. 민회는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손끝에 아직도 나무의 감촉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자네. 베토벤이 어떤 사람이었는 줄 아나”
정민회는 대답하지 않았다. 교수는 다음말을 아꼈고 정민회는 고개를 숙인 채 교수의 말을 받아들였다. 정민회의 피아노는 폭력적이었다. 열아홉의 호로비츠 강이 흐르는 마른 손에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는 쇼팽처럼 비쩍 마른 몸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힘으로 피아노를 때려부쉈다. 베토벤처럼. 귀가 먹어가던 베토벤처럼 그는 피아노를 박살냈다. 피아노의 현이 끊어지고 손가락 끝의 지문이 건반 위에 문대어졌다.
“나는 자네가 미친 것 같네”
정민회는 웃었다. 그렇습니까. 그런가요.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은 채 교수를 바라봤을 때 교수는 책상 모서리를 볼펜으로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D교수는 민회를 처음 봤을 때 그를 열아홉의 호로비츠라고 불렀다. 그 다음에는 동기들이 그를 말라깽이 쇼팽이라고 불렀다. 교수는 정확히 이년 뒤에 그를 아무도 없는 작은 콘서트홀에 세워놓고 말했다. 다만.
“자네가 치는 피아노도 자네만큼 미쳤는데, 그나마 나은게 있다면 괜찮게 미쳤다는 점이야”
그래도 기억하게. 그렇게 피아노를 치다가는 자네 손도 박살날걸세. 정민회는 입술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까지 들어차 가슴 언저리가 차가워졌다. 그리고 무언가 말을 하려던 입술이 그대로 다물렸다. 민회는 다시 웃었다. 이미 박살나고 있습니다. 목구멍 끝에 차오르던 말이 다시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넘어갔다. 속이 울렁거렸다. 먹으면 안되는 말을 집어삼켜 버린 것처럼.
아가미
“형”
정민형은 아주 약간 낡은 교복을 입고 컴퓨터가 놓여있는 구석자리로 들어왔다. 민회는 아빠다리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가 의자를 돌려 앉았다. 아주 느린 버퍼링으로 호로비츠의 동영상이 흘러갔다. 단칸방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이었다. 미처 꺼놓지 못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정민형은 인상을 지푸렸다. 민형이 민회 앞에 불쑥 하얀 공고문을 건넸다. 싸구려 잉크로 아무렇게나 복사한 것이 눈에 보이는 공고문이었다.
“이게 뭔데”
“집 밀어버린다고”
정민회는 하얀 종이를 받아들었다. 아니 사실 그렇게 희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시험지로나 쓸법한 얇고 거친 갱지였다. 똑똑한 정민형은 어디선가 이 공고문을 주워왔거나, 누가 주고있는 것을 가져왔을 것이다. 아니면 벽에 붙어있는 공고문을 떼어왔을지도 몰랐다.
“밀게 어딨다고 밀어”
“내가 어떻게 알아. 어쩔건데”
민형의 말에 민회가 앉아있는 자세 그대로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쌍커풀 없는 큰 눈이 서슬퍼렇게 빛났다. 이게 봐주니까.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리자 그제서야 민형은 눈을 내리깔았다. 아오씨. 조용히 읊조리는 소리에 민회가 어금니를 짓씹었다. 그렇게 꼬우면 나가서 혼자살지 그러냐.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이 가까스로 내려갔다. 구역질을 참아내는 것처럼 정민회는 잠깐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았다. 눈썹이 파르르 떨리다가 열렸을때, 그는 다시 차분해졌다.
“이번 분기 회비. 급식비. 부교재값.”
하얀 봉투 두 개와, 교재값의 만원짜리 지폐 몇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민회는 자리를 일어났다. 여전히 낡은 컴퓨터 안에서는 카라얀의 피아노 협주곡이 흘러나오고있었다. 민형은 민회의 등 언저리를 유심히 눈여겨봤다. 앞으로 조금 굽은 등, 비쩍 말랐는데도 근육이 잡힌 목. 칼에 긁힌 것처럼 여기저기 다치고 깨진 팔뚝의 흉터들. 정민회는 좋은 가장은 아니었지만 가장이었다.
“엄마 약값”
하나 더, 하얀 봉투가 책상 위에 놓였다. 턱하고 메마른 소리가 났다. 다른 봉투들에 비해 보기 무서울 정도로 두꺼운 봉투를 내려놓는 정민회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엄마 병원 이제 내가 같이 못가니까 니가 가서 내. 손목 안쪽의 힘줄이 돋아나는 것이 보였다. 민회는 민형을 지나쳤다. 지나가는 형의 얇은 하얀 티셔츠, 무릎을 덮는 반바지에서 희미한 나무 비린내가 났다. 민형은 방금 전까지 형이 앉아있었던 의자 위에 가만히 앉아 여기저기 글씨가 벗겨져 나간 키보드 위를 손으로 쓸었다. 카라얀. 클래식은 클래식 기타밖에 모르는 민형도 알 정도로 민회는 카라얀을 좋아했다. 카라얀. 피아노. 컴퓨터는 아주 낡았고, 키보드도 그랬다.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세월만큼 민회가 두드렸던 키보드 위에는, ㅋ, ㄹ, ㅍ, ㅇ, ㅑ, ㅣ. 남들은 흔히 찾지 않는, 치지 않는 글자들이 벗겨져 나갔다. 정민형은 정민회가 얼마나 피아노를 좋아하는지 알았다. 민형은 구깃구깃한 만원짜리 몇장을 지갑 안에 넣고 가방 속에 넣은 뒤 가방 지퍼를 닫았다. 두 개의 하얀 봉투를 앞주머니에 넣고, 하얀 봉투 하나는 옷장 안쪽에 넣었다.
민형은 하얀 봉투들을 모조리 숨기고 민회가 켜놓은 사이트를 닫다가 창 밖에서 들어오는 담배연기에 콜록거렸다. 민형은 보란 듯이 콜록거렸지만 담배연기는 창문을 넘어 보란듯이 계속 스며들어왔다. 민형은 바람한점 불지 않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커튼을 닫았다. 커튼의 뒷면에는 늘 담배연기가 배어있었다. 민회는 벽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 나이 또래 애들은 절대 피지 않을 것 같은 제일 값싼 국산 담배. 민형은 그 냄새가 싫었다. 아저씨들이나 피울 법한 담배냄새, 학교 친구들은 그런 담배를 피지 않았다. 친구들 중 반절정도는 담배를 피지 않았지만, 친구들의 형들도, 그런 담배는 피지 않았다. 말만 들어도 멋있어 보이는 그러니까 말보로나, 에쎄 같은 외국 담배를 피웠다. 민형은 낡은 의자 위에 쪼그려 앉아서 무릎 안에 얼굴을 묻었다. 민회에게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민회가 진 몫을 다 지기에 민형은 그 나이 또래 애들만큼 평범하게 어렸다.
“집 민대 민회야”
알아. 민형이 잠든 사이에 엄마는 거의 우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루 종일 집안에만 앉아있는 양반이 어디서 그런 말은 주워들어왔는지 신기할 정도로 웃겼다. 민회는 단칸방의 끄트머리, 현관에 다리를 뻗고 걸터앉아 담배를 피웠다. 엄마는 민회가 담배 연기를 내뱉을 때 마다 기침을 하지 않으려는 듯 안으로 기침 삼키는 소리를 냈다. 기침을 하는 것조차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
“아까 정민형이 말해줬어”
“민형이는 어떻게 알았대?”
“어디서 주워들었겠지”
엄마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칠 때 마다 눈동자가 천천히 흔들렸다. 어떡하지. 그렇게 묻고있는 것 같았지만 민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민형이가 어쩔거냐고 하더라”
그래서?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아무말도 안했지”
민회는 현관 바닥에 담배를 비벼끄고 돌아앉아 웃었다. 할 말이 있어야 하지. 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다. 할 말이 있어야 하지. 나도 할 말 좀 있어봤으면 좋겠다. 속이 답답하게 미어져왔다.
“민회야 우리...”
“돈 없잖아”
희미하게 웃었다.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정민형. 엄마 약값 제대로 내고 병원에서 제대로 계산하고 와. 민형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정민형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엄마를 잃을 사람처럼 일그러졌었다.
“일단은 좀 버텨봐야지”
부서질 때 까지.
“자 엄마”
“내일 병원 잘 다녀오고”
기억하게. 자네 손도 박살날걸세. D교수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저 밑바닥을 긁었다. D교수는 더 이상 김민회를 호로비츠라고 부르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것을 깨닫게 된 뒤로 민회는 그것보다 더 포악한 피아노를 쳤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피아니스트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아니시모를, 아주 약하고 갸녀린 음을 치던 피아니스트. 폭력적이고 강렬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을 때부터 였을 것이다. 교수는 더 이상 민회에게 호로비츠라고 말하지 않았고 민회는 그를 보며 더 포악한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의 현이 뚝뚝 끊겨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김밀러가 말했다. 미친 새끼야. 그만 때려부수라고. 불을 끈 단칸방은 아주 비좁았다. 소싯적에는 이것보다 큰 집에 네 식구가 나란히 누워 여름 바람을 맞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거실에는 오래된 풍금이 놓여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주 풍금을 잘 치는 여자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리랑도, 꽃밭도, 야기염소도 칠 줄 알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워있는 단칸방을 바라보다가 민회는 집을 나섰다. 비좁은 골목길에는 달리 갈 곳도 없었다.
벽에 기대어 돗대를 입에 물었다. 손에는 구겨진 상자 하나와 뜯지 않은 새 담배갑이 같이 들려있었다. 금방이라도 다음 개피를 물 수 있도록. 교수님. 괜찮아요. 이미 다 박살났어요. 이제는 집도 박살날거에요. 하늘과 맞닿을 것처럼 솟아오른 달동네 위로 달빛만 쏟아져 내렸다. 달동네는 달이랑 가까워서 달동네인가봐. 수레에 이삿짐을 싣고 오는 내내 어린 민형이 자신의 손을 붙잡고 종알거렸다. 그게 듣기 싫어 민형의 손을 뿌리쳤을 때 민형은 언덕빼기에서 굴러 무릎이 깨졌다.
정민회는 호로비츠가 되고싶었다. 열아홉의 호로비츠.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시간이 지나는 동안 호로비츠도 사라져 말라깽이 쇼팽과 귀먹은 베토벤이 피아노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민회는 피아노를 부수고있었다. 피아노를 치는 동안 음도, 악보도 천천히 부서졌다. 이제 남은 건 손과, 집 뿐이었는데 아마 그것들 조차 곧 박살나서 없어질 것이다.
입에 담배를 문 채로 민회는 어두워진 달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위로, 위로 올라가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은 달동네 뿐이었다. 점점 달만 가까워졌다. 이제는 보기힘든 주황색 가로등 불빛 사이를 천천히 걸어올라가는 발걸음 뒤로 그림자처럼 담배연기만 남았다. 박살날걸세. 교수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선생님이 치는 피아노는 무서워요. 입시과외순이도 말했다. 민회는 교수에게도, 과외순이에게도, 민형과 엄마에게도 해줄 말이 없었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해줄 말도 없었다. 피아노만 남아서 헛구역질 처럼 식도 아래로 집어삼킨 말들을 대신했다. 정민회는 계단의 녹슨 쇠파이프 난간 위에 두 손을 올리고 피아노를 쳤다. 입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 소리들이 손 끝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아가미를 뻐끔거리면서 허덕이는 물고기처럼, 물 밖으로 튀어나온 물고기도 이제 서서히 굳어 가고 있는 참이었다.
community 한새동. 정민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