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01.
 "내일 약속있어요?" 
 "아니요."

 조용히 대답하는 그를 두고 이든은 나른하게 웃는다. 그래요, 그럼 저녁 시간 좀 비워줄래요? 무슨 일이냐는 듯 그는 시선을 두고 있던 책에서 눈을 뗐다. 두사람이 누워도 적당히 편안한 거리감이 느껴질 만큼 넓고 푹신한 침대 옆 협탁에는 두어권의 책이 쌓여있었다. 루윈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자기계발서, 아주 가볍지만 손쉽게 팔리는 소설책, 유명인의 에세이집. 책이라고 할 만한 것에서 논문과 과학잡지와 전공서적을 제외한다면 이렇다 할 것을 읽지 않는 이든에게는 생소한 광경이었다. 아주 묵직하고 딱딱한 고전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같은 것이 아니면 읽지 않을 것 않은 남자가 싸구려 자기계발서를 읽는 광경은 사실 조금 귀여웠다.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그저 풀어서 다시 엮은 것 밖에는 한 것 없는 몇 권의 책들과, 티비를 틀면 늘 얼굴을 볼 수 있는 인간이 쓴 자기위선적인 에세이 같은 것. (혹은 절대로 그와는 어울리지 않을 오프라 윈프리의 자서전 같은 것이나.) 이든은 그의 손에 들린 책의 표지를 훑고 조용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는 듯 되묻는 루윈의 얼굴을 엎드린 채 올려다보았다. 아마 혼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책을 읽으며 서재에 틀어박혀있던 것 같은 그는, 이든이 집에 도착하고 난 뒤에는 책을 손에 들고 거실의 소파나, 침대 위로 올라온다. 이든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무도 노크하지 않는 서재 안에 들어가 책을 읽는 남자의 등을 생각하다가 앉아있는 루윈의 배 위에 얼굴을 부볐다. 책장을 넘기던 손이 책을 집고 있던 모서리 끝에서 벗어나 이든의 머리 위에 가볍게 얹힌다. 숨을 쉴 때 마다 따듯한 숨이 다시 자신의 얼굴로 끼쳐 돌아왔다.

 "별 일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일은 시간 비워둬요."

 남는 시간 나한테 투자 좀 해요 루윈.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일종의 긍정과 같아서 이든은 그의 대답을 듣지 않고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웃음이 느리게 얼굴 위로 번졌다. 아직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기는 하지만 괜찮았다.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의 약간의 표정 변화, 약간의 손짓 같은 것들은 대부분 아주 작은 신호처럼 눈에 박혀들어 왔다. 미소 짓는 대신 아주 잠시 침묵하는 긍정이나,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서 구급상자에서 연고를 찾아내는 손길, 키스대신에 가볍게 머리칼 위에 손을 얹는 동작과 같은 것들. 아무도 찾아낼 수 없었던 것같지만, 이든에게는 아주 손쉬웠다. 이제껏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쪽이 납득되지 않을 만큼. 그는 무뚝뚝하고 고집스러운 만큼 솔직했고, 솔직한 만큼 충분히 상냥했다. 이든은 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덮친 몇가지의 큰 사건들을 제외하면 아무런 문제없이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고, 덕분에 그의 미미한 표정과 손길의 변화를 감지해내는데 초조해하지 않았다. 침대는 푹신했고 오랫동안 크고 넓은 침대에서 혼자 잠들었던 남자의 냄새가 났다. 우아하리만치 약한 바디 워시의 냄새, 쉐이빙크림의 냄새나, 그를 가만히 끌어안으면 머리칼에서 나곤 했던 샴푸의 냄새, 아주 희미하리만치 약한 담배 냄새. 그의 목덜미나 머리칼 끝에서 나던 향이 고스란히 시트와 베개 위에 하얗게 묻어있는 것같았다. 루윈이 책을 덮는 소리에 이든은 약간 얼굴을 떼어내고 그를 올려다본다. 

 "다 읽었어요?"
 "네."

 그는 단조로운 동작으로 덮은 책을 협탁 위에 올려놓고 침대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잠옷과 시트가 서로 스쳐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든은 이불을 그의 목덜미까지 올려 덮고, 이불 안에서 스멀스멀 팔을 뻗어 약간 마른 몸을 끌어안았다. 손가락과 손바닥에 약간 마른 몸 아래로 딱딱하게 도드라져 나오는 갈비뼈가 닿았다. 

 "집에서 기다려요. 일찍 올게요."

 대답 대신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제 쪽으로 약간 몸을 돌려 누운 남자를 조금 더 강하게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뺨에 닿는 셔츠가 기분 좋을만치 차가웠다.



02.

 "이든, 냉장고에 넣어놓은 케이크 챙겼어요?"
 "아! 네. 고마워요. 안젤리카!"

  안젤리카가 등 뒤에서 듣기 좋은 목소리로 웃었다. 내일은 두 배로 일하게 이든! 고든이 등 뒤에서 소리쳤다. 월급도 얼마 안주잖아요! 뒤돌아서 소리치는 이든의 등 뒤로 고든은 꺼져가는 목소리로 내 탓이 아니라고 둘러댔다. 연구비라거나 스폰서 같은 말들이 연구실에 울려퍼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타카의 대학가에서 조금 벗어나면 살기 좋은 적당한 주택가들이 있었는데 골목을 한 두 개만 돌아도 작은 마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법한 그럴싸한 가게들이 대개 줄을 지어 있었다. 케이크만큼은 동네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케이크 가게의 주인 부부와 알고 지내게 된 것은 아이다 때문이었다. 그녀는 초콜릿만큼이나 단 것을 좋아했고,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두조각의 케이크를 사들고 아파트로 습격해와 테이블 의자 위에 두 다리를 모두 올려놓은 이상한 자세로 앉아 케이크를 수저로 퍼먹었다. 사실 부부의 케이크는 동네가 아니라 뉴욕 주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맛있었다. 아이다는 도통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울상이었지만 이든은 그녀의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든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가게에서 주문해놓았던 케이크를 찾아다가 연구실의 냉장고 안에 넣어놓았는데, 그만 중간에 안젤리카에게 들키고야 말았다. 
 '누구거에요?' 평소에는 아주 훌륭한 동료인 안젤리카가 흔하지 않은 빈도로 보이는 관심에 이든은 약간 주춤거렸다. 안젤리카가 저렇게 흥미로워 하는 것은 정말로 흔치 않았다. 케이크 박스에 박힌 가게의 은색 로고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애인거에요.' '생일이에요?' '네, 본인은 모르는 것 같지만.' '자기 생일도 모른단 말이에요?' '아마도요.' '세상에, 그 사람 이든 생일은 알아요?' '아마도 모를거에요.' 안젤리카는 검은 색에 가까운 짙은 색 눈동자를 크게 뜨고 이든을 바라봤다. 안젤리카의 등 뒤로 파란 눈 한 쌍, 호박색 눈 한 쌍, 갈색 눈 한 쌍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비어져 나와 있었다. 젠장. '오늘은 우리끼리 이든 플로베르의 무덤을 축하하러 가자고.' 고든은 아주 심술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엔 우리 케이크도 좀 사와요!"
 "등 뒤에서 내 얘기나 하지 말아요. 나쁜 사람들 같으니라고!"

 "우린 오늘 술 한 잔씩 할거라고!"

 자네 얘기 하면서! 고든이 뒷통수에 대고 여전히 소리치고 있었다. 뛰어가면 케이크 다 망가져요. 그 와중에도 안젤리카는 꽤 사려 깊었다. 좋은 하루 보내요. 이든. 당신 애인도요! 


03.
 "음..."

 상냥한 표정을 한 금발머리의 점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 장미, 산백합, 안개꽃, 프리지아, 샤프란, 불도화, 라일락 ‥. 꽃 선물을 떠올리면 대개는 장미부터 떠올렸겠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든도 고민 없이 붉은 색이나 옅은 핑크색의 장미를 골랐겠지만, 어쩐지 오늘 선물하려는 사람은 장미보다는 흰 꽃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어떤 꽃을 안겨주어도 당혹스러워하거나, 놀라는 것은 매한가지겠지만 장미는 그에게는 지나치게 요란했다. 꽃이 나란히 놓인 투명한 냉장고 앞에서 발을 구르며 한참이나 꽃을 노려보는 이든을 바라보던 점원은 이든이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난 뒤에야 겨우 말을 붙였다. 

 "어느 분에게 선물하실 건데요?"
 "애인이요."

 그는 곧 곤란한 표정을 거두고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장미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쉽지 않네요.

 "붉은게 어울리지 않으시면, 흰색 장미는 어떠세요? 백장미나 샤프란도 예뻐요."
 
 윈도우 안의 꽃을 들여다보다가 애써 고개를 끄덕이는 이든을 보고 그녀는 약간 웃었다. 어쩐지 꽤나 곤란해하는 것 같은 폼이 아직도 어느 꽃이 가장 어울릴지 확신이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흰색 장미에, 연노랑색 꽃에, 아주 연한 핑크색 장미도 섞어드릴게요. 요란하지는 않을 거에요. 크기는 얼마나? 이든은 두 손을 두뼘의 거리만큼 벌렸다. 이정도. 점원은 초록색 앞치마에 슥슥 손을 문질러 닦고 연보라색 포장지 위에 꽃을 뉘였다. 흰색 장미송이 사이로 연노랑색 장미와, 아직 채 다 피지 않은 분홍색 장미 봉오리, 연두색의 꽃들과 약간의 이파리들, 안개꽃, 라일락. 갈색 양복 위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의 조합들이었지만 그는 오늘 옅은 회색의 양복을 입고 나갔으니 충분히 어울릴 것이다. 이든은 꽃을 받을 사람이 흰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아니라 회색 양복을 입은 스물아홉의, 아니 이제 서른이 되는 은행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점원을 향해 웃었다. 

 "고마워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여기서 밤샐 뻔 했네요."
 
 

04.
 루윈, 손이 비질 않아서 그런데 문 좀 열어줄래요?
 꽃다발을 들고 펼 수 있는 손가락으로 벨을 누르고 이든은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긴 끈이 허리께까지 내려오는 서류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한 손에는 큼직한 케이크 상자를, 한 손에는 지름이 두 뼘은 넘을 법한 꽃다발을 들고 있었으니 손이 빌 턱이 없었다. 현관문이 반 뼘만큼 열렸다가, 이내 이든의 몸이 지나가고도 남을만큼 열렸다. 

 "받아요."

 넥타이를 푼 편안한 셔츠 차림으로 푹신한 슬리퍼를 끌고 나온 루윈의 품에 꽃다발을 안기고 이든은 웃었다. 겨우 비게 된 손으로 등 뒤에서 문을 닫았다.

 "무슨 꽃이에요?"
 "당신 거에요. 예쁘다고 해줘요."

 꽤 고민해서 골랐다고요. 반은 점원이 골라줬지만. 탁자 위에 케이크 상자를 내려놓고, 소파 옆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반정도는 예상했던 그대로의 표정이어서 이든은 웃었다. 케이크 상자의 손잡이 아래에서 케이크가 녹지는 않았는지 실눈을 뜨며 확인하고 외투를 벗은 뒤에 이든은 등을 곧게 펴고 루윈을 바라봤다. 

 "생일 축하해요. 루윈."

 약간 미간을 찌푸리는 표정으로 그는 놀라움을 대신 하는 것 같았다. 생전 처음 받아보았을 것 같은 꽃다발을 품에 안고 미간을 찌푸리는 루윈 이바노브. 이든은 가만히 다가가 여전히 바람 내음이 나는 몸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그가 품에 안은 꽃다발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 없는 입술 위에 아직은 약간 차가운 입술로 키스하고, 아직 흐트러지지 않고 곱게 뒤로 넘겨진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어 내렸다. 자기 생일도 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약간의 타박을 담아 말해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깨 위로 가볍게 닿는 이마의 감촉에 이든은 잘 다려진 그의 셔츠 위로 등을 쓸었다. 

 “생일 축하해요.”

 이든은 그의 손을 잡아 끌어당겨 소파 위에 앉혔다. 

 “케이크 사왔어요. 단 건 싫어해요?”

 싫어해도 먹어야 돼요. 생일이니까. 그렇게 말하고 고든만큼 심술궂은 얼굴로 웃었다. 

 

05.
 "너무 달아요?"
 
 한 조각은 예의상 비워준 것 같지만 많이 달았던 모양이다.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단 것을 먹을 때의 표정, 예를 들면 약간 입가가 굳어있다거나 조금 심각한 표정이 된다거나 하는 것들이 여실히 드러나서 크림이 묻은 포크를 내려놓고 허리를 폭 끌어안았다. 그래도 맛있었죠? 목 안쪽을 울려 웃었다. 그래요. 아직도 혀가 얼얼한 목소리로 그래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 귀여워서 이든은 또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느긋하게 웃었다. 
 
 "사랑해요."

 이든은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조곤조곤 속삭였다.

 "이것도 너무 달아요?"

 그래요. 그의 대답에 약간 웃고, 어깨 죽지 위에 입을 맞췄다. 


06.
 "어떻게 알았어요?"
 "얼핏 쓰여있던 것 같아서요. 싫었어요?"
 "..."
 "서른살 축하해요."

 "루윈?"
 
 젖은 살에서 축축한 땀냄새가 났다. 자신의 어깨 위에 그의 젖은 머리칼이 약간 엉겨 붙었다. 그가 말없이 숨을 내쉴 때 마다 젖은 숨이 끈적한 몸에 와 닿았다가 느리게 사라졌다. 약간 땀에 젖은 살결이 스칠 때 마다 몸은 마찰이 일듯 조금씩 뻑뻑하게 닿았고 이든은 여전히 약간의 땀으로 젖은, 마른 허리를 감싸 끌어당겼다. 베개도 약간 젖어있었다. 이든은 조금의 시간의 틈을 두고 루윈의 젖은 머리칼을 내리 쓸어 넘겼다. 이든은 그 침대에 누워 루윈을 끌어안고 이 집에서 지난 몇 년간 일어난 일을 상상했다. 이 집에 발을 들인 뒤로 생긴 고질적인 습관 같은 것이라고 해야할는지도 몰랐다. 세 식구가 살기에는 약간 널찍한, 좋은 집의 표본이라고 할 만한 주택은 그가 혼자 살기에는 지나치게 넓어보였다. 이든은 그가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크리스마스를 생각했을 때처럼, 그가 혼자 사는 이 집을 떠올릴 때 마다 목 안쪽이 시큰거렸다. 처음 담배를 피던 날 같았다. 
 이든은 그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조금 올려 그의 등뼈를 헤아리고, 그의 뒷목을 문질렀다.

 "루윈."

 말이 없어 잠든 줄 알았던 그가 약간 고개를 든다. 그는 지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이든은 그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어 내리듯이 쓸어내리고 뺨에 입을 맞췄다. 그가 먼저 다가오는 것은 고작 입술을 맞대는 정도의 키스나, 키스할 때 어깨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는 손 같은 것이 전부였음에도 그는 이든의 다른 스킨십을 피하지 않았다. 집 안에서조차 숨소리만큼 조용한 걸음걸이로 방과 방 사이를 단조롭게 걸어다니는 그를 등 뒤에서 가만히 끌어안거나,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 목덜미에 입을 맞추거나, 소파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의 허벅다리를 베고 눈을 감고 있을 때에도 그랬다. 그는 먼저 다가오는 것은 충분히 어울릴 만큼 서툴렀지만, 몸을 맞대면 마치 기다린 사람처럼 손이나, 뺨이나, 입술을 내어주었다. 아이에게 하듯 어리광을 받아주고 있었을는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 집으로 짐을 좀 옮기려고 해요.”

 그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이번에도 어리광을 받아주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든은 엄지와 검지로 목뼈의 양 옆의 움푹 들어간 부분을 느리게 위에서 아래로 쓸었다. 피곤한 듯 감고있던 눈커풀이 약간 떨렸다. 어두운 침실의 스탠드 빛 아래에서 주홍색으로 물든 속눈썹이 눈커풀을 따라 떨렸다.

 “그렇게 해요.”
 
 그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언젠가 묻게 될지도 몰랐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고마워요.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고 이든은 그의 등에서 흘러내린 이불을 끌어당겨 그의 몸 위로 덮었다. 몸이 아직 식지 않아 작은 바람에도 추웠을 것이다. 그는 약간 말랐고, 이든은 그래서 그가 좀 더 걱정됐다. 이유를 물었다면 이든은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을 것이다.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었겠지만, 이든은 그와 함께 있고 싶었고, 그리고 그가 넓은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싫었다. 이든은 그와 함께 있고 싶었고, 그리고 그가 혼자 있는 것이 싫었다. 인심 좋은 고양이처럼, 다가가 등줄기를 느리게 쓰다듬으면 온화하게 풀린 표정으로 눈을 감는 루윈 이바노브를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07.
 “안젤리카가 누구 생일이냐고 물어보길래 애인이라고 그랬어요.”

 그는 대답하기 전에 약간 뜸을 들였다. 이든은 그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약간 목청을 울려서 웃었다. 꽃가게 점원이 어느 분한테 드릴거냐고 하길래, 그 사람한테도 애인한테 줄거라고 했죠. 

 “걱정 마요. 보이프렌드라고는 안했으니까.”
 
 이든은 개구진 표정으로 웃었다. 그정도의 사리분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진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이든은 적당한 대답을 찾다가 결국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는 루윈의 표정을 보고 웃었다.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 마다 주근깨가 도드라졌다. 스물일곱, 아니 스물여덟살이나 된 적절한 직장을 가진 남자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어린애같은 표정이었다. 어리다고 부르기에는 나이가 어려보이기 보다는 웃는 모습이 어린애같다고 표현하는 쪽이 어울릴 것이다. 확실하게. 이든은 천진한 표정으로 웃었다. 웃을 때는 웃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루윈은 이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보이프렌드라는 말에 약간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찾는 동안 멈추었던 숨을 한숨처럼 내뱉었다. 금방 씻고 난 머리칼 끝에서 약간의 물기가 떨어져 이든은 그의 목덜미에 걸려있던 수건을 빼앗아 그의 머리칼 위에 느리게 수건을 문질렀다. 갈색 머리가 물에 폭 젖은 탓에 검은 색에 가까워 보였다. 조금 더 침대 위에서 늑장을 부려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는 끈적거리는 것은 싫어했다. 따듯한 물로 샤워를 했는지 몸에서는 기분 좋은 열기가 올라왔다. 

 “아니면 보이프렌드가 더 좋아요?”
 “플로베르.”

 단호하게 이름을 불려 이든은 조금 웃었다. 

 “그만 자요.”

 
08.
 이든은 분명 아침에 학교에 가기 전에 그의 주방에 어설프게 놓여있는 꽃다발을 보았다. 그는 하이스쿨 졸업식에도, 대학 졸업식에서도 꽃다발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처럼, 머그컵에 물을 담아 꽃다발을 담그는 정도의 일도 하지 않았지만, 이든은 그것이 그가 정말로 꽃다발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꽃다발은 그가 유일하게 스스로 만질 줄 아는 커피머신에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있었고 아주 조심스럽게 놓여있었다. 
 이든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을 한참 넘긴 시각이었다. 그는 못된 고든의 말대로 어제보다 두배의 일을 절반의 시간을 더 투자해서 끝마쳤다. 이든이 현미경과 통계자료에 몰입하는 동안 고든과 동료들은 숙취로 비실거렸다. 이든이 가방과 코트를 벗어 소파 옆에 내려놓았을 때 테이블 위에는 하얀 꽃 몇송이가 화병에 담겨 놓여있었다. 물을 뜨러 간 주방의 식탁 위에도 꽃이, 그리고 손을 씻으러 들어간 욕실에도 꽃이 놓여있었다. 한번도 꽃다발을 받은 적 없는 남자 대신에 주의 깊은 가정부가 손을 썼음이 틀림 없었다.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욕실의 흰 꽃들을 바라보다가 이든은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루윈, 저녁 먹었어요?"


*10월 10일 루윈 생일 기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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