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eeping Pill


 이든은 작은 기척에도 쉽게 깨어났다. 그가 처음부터 얕은 잠을 자는 부류의 신경증적인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정하면서도 수다스러운 목소리들, 조용한 타자기의 소리, 음식을 준비할 때 칼이 도마 위를 두드리며 나는 소리 같은 것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천둥이 치는 소리, 방아쇠가 당겨지는 소리, 사람의 기척이나 발자국 소리, 침대의 출렁임 같은 것들에는 금세 깨어났다. 이든 플로베르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으나 그의 인생에서 몇가지의 중요한 전환점과 상처를 남긴 것들이 그에게 남긴 또 하나의 습관이었다. 다만 이든 플로베르의 구김살 없는 성격에 익숙한 사람들이 그의 몇가지의 중요한 변화와 응어리들을 눈치 채지 못했으며, 이든 플로베르와 같은 침대 위에서 생활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그런 습관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가 침대가 얕게 출렁이는 기척에 눈을 떴을 때 방 안은 푸르스름한 빛으로 잠겨있었다. 짙은 남색의 커튼으로 창을 모두 닫아놓았지만 방안은 늘 약간의 빛으로 차있었다. 밤이면 희미한 가로등의 불빛이 커튼을 투과해 집 안까지 비칠 때면 달리 협탁 위의 스탠드를 켜놓지 않아도 침대 위에 누워있는 루윈 이바노브의 등과 허리를 눈으로 분간할 정도는 됐다. 가로등이 꺼지고 난 뒤에 방안은 칠흑처럼 어둠에 잠겼지만 그 시간에는 이든과 루윈 모두 대개는 잠에 들어있었으나 때때로 루윈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이명에 곤혹스러워 했다. 이든은 그가 처음부터 얕은 잠을 자는 부류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윈. 그는 아이가 몸을 구부리듯이 몸을 둥글게 말았다가 펴며 침대 위에서 뒤척거렸다. 방 안은 푸르스름한 빛으로 잠겨있었다. 짙은 커튼  아래로 슬며시 비치는 약간의 빛을 보건대 그즈음의 시간대일거라고 생각했다. 밤새 뒤척이고 있었을는지도 몰랐다. 루윈. 이든은 한쪽 팔을 세워 상체를 비스듬히 일으켰다. 흐릿한 시야 안에서 루윈의 등이 약간 움직였다. 이든은 손을 뻗어 그의 등을 더듬는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그려지는 짙은 갈색 머리칼 아래로 이어지는 마른 목에서 불거지며 튀어나온 뼈에서부터 얇은 셔츠 아래로 이어지는 등뼈를 하나씩 손가락으로 더듬어나간다. 느리게. 마른 뼈를 둥글게 지문으로 문지르며 헐렁한 셔츠를 걸친 어깨 위를 턱으로 눌렀다. 루윈. 어깨 위를 누르는 턱을 떼어냈을 때 루윈 이바노브는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눈은 잠보다는 다른 것에 취해 약간 흐리게 흔들렸다. 이든은 가만히 손을 올려 그의 이마 위를 덮고 있던 머리칼을 한쪽으로 쓸어내렸다. 

 “이쪽 보고 누워요.” 

 목소리는 반쯤 잠에 취해있었다. 밤새 공기가 나간적 없는 후두에서는 칼칼하게 잠긴 목소리가 났다. 이든은 아주 조용하게 소리죽여 말하려고 했지만 잠결에 제대로 통제되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생각보다도 분명하게 들렸고 방안에 가라앉아있던 공기 사이의 곳곳으로 파고든 것처럼 울렸다. 이든은 머리칼을 쓸던 손을 떼어내고 그가 몸을 틀기 수월하도록 루윈의 몸 위에 내려덮듯 걸쳐져있던 이불을 들었다. 몸을 뒤척이는 동안 침대가 약간 출렁였다. 그가 느리게 몸을 돌려 누웠을 때에서야 이든은 다시 이불을 그의 목 끝까지 덮었다. 그의 목과 베개 사이의 틈으로 팔을 집어넣어 왼쪽 어깨와 등을 감싼 뒤에, 이불 밖으로 비어져 나온 오른 팔로 그의 등을 두드렸다. 느리게. 할로윈이 지나면 얼마간은 무서워하던 아이에게 줄곧 얀이 해주던 방식이었다. 그가 숨을 쉴 때 마다 가슴께에 더운 숨이 가늘게 와 닿았다가 흩어졌다. 그가 얼굴을 묻고 있는 부근이 따듯했고 느리게 흩어지는 따듯한 숨이 가슴을 덮었을 때는 따듯한 초콜릿을 마신 것처럼 얇은 피부의 안쪽까지가 묵직하게 덥혀왔다. 

 “또 그래요?”

 루윈은 대답하지 않았으나 이든은 힘주어 등을 안았다. 잠든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또는 잠에서 깬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든의 손은 잠결에 오른 체온 탓에 루윈의 숨보다 따듯했다. 이든은 이불로 그의 등을 감싸고 그 위에서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느리게 문질렀다. 이든 플로베르는 다시 잠이 들 때 까지 루윈의 등을 느리게 문질렀다. 루윈은 이든이 그의 몸을 감싸듯 안고 있는 탓에 몸을 웅크리거나 움직이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이든의 팔 안에서 편안한 자세를 찾듯 간간히 조금 뒤척였다. 그는 익숙하게 편안한 자세를 찾았고 이든은 그가 자세를 고쳐 눕고 나면 잠결에도 습관처럼 한번씩 등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든 플로베르는 커튼 사이로 차가운 빛이 드는 아침에 일어나 자신의 팔 안에서 눈을 감고 있는 남자의 이마를 내려다 보았다. 일곱시에서 일곱시 반. 여섯시의 빛은 노랗기 보다는 푸르스름했으므로 아마 시간이 그쯤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든은 밤새 그의 등을 도닥거리던 손을 들어 루윈의 흐트러진 이마를 쓸었다. 이든은 은행으로 향하는 루윈 이바노브, 혹은 루윈 그가 그 자신에 가깝다고 믿고 있는 루윈을 떠올렸다. 그는 젊었지만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든은 루윈을 처음 보았을 때에도 그의 단정한 옷차림이나 수트를 고르는 취향, 앞머리를 남기지 않고 뒤로 넘긴 솜씨로 보아 그가 사회 초년생이 아님은 쉽게 짐작했다. 그의 행동거지와 옷차림들은 나쁘지 않은, 오히려 꽤 좋은 취향임을 감안하더라도 젊은 사람이 쉽게 몸이 익히고 익숙해할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나이 들어보이지는 않았으나 모든 것들이 너무 익숙하고 정돈되어있었다. 이든은 둥글고 흰 이마 위로 내려온 앞머리를 쓸고, 흩곤, 다시 쓸어 넘겼다. 이마 위로 흩어진 머리칼들 아래에서 그는 그제서야 겨우 제 나이처럼 보였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나면 제 나이보다 어려보일 법한 인상이었다. 짙은 갈색의 머리칼들이 일곱시를 넘어선 빛에 색을 되찾아 보였다, 이든은 팔을 뻗어 협탁 위에 놓인 스탠드를 켰다. 루윈이 미간을 지푸렸다. 그는 아마 밤새 자신의 팔 안에서 제가 깨지 않도록 약간씩만 뒤척이면서도 잠들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든은 루윈의 이명이 밤새 그를 그리 쉽게 놓아주지 않았을 거라고 미리 짐작했다. 여러번의 경험에서 얻어낸 결과였다.

 “루윈”

 이든은 그의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부른 뒤에 느리게 눈을 뜨는 루윈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사에 전화할거에요? 이든은 자신이 일어나고 난 뒤에 비워진 자리에 이불을 끌어 채워 덮으며 물었다. 자신이 사라진 자리에서 바람이 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마도요. 루윈의 대답에 이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씻고 나올게요. 이든이 집요하게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다시 흩어놓던 이마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루윈의 이마는 열이 나는 사람처럼 약간 뜨거웠다. 

 이든은 그리 공식적이거나 갑갑하지 않은 흰색의 셔츠에 베이지색의 치노 바지를 갖춰 입고 머리칼에 남은 물기를 손가락으로 빗어 털며 아직 흐린 빛이 도는 주방으로 향했다. 방금 커피를 내린 커피머신에서 약간의 따듯한 열이 올라왔다. 그는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앞에 두고는 밤새 잠자리에 들었던 흐트러진 차림새 그대로 쓰러질 듯이 식탁의자에 걸터앉아있었다. 루윈. 이든은 생각보다도 훨씬 많이,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낮은 목소리, 또는 n을 발음할 때 약간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마지막 목소리, 혹은 끝이 좀 더 커지거나 작아지는. 아마도 그러한 이든의 억양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단순히 이름을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이름을 부르면서 달리 건넬 몇가지의 말을 축약하고 있었을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마 그는 이든이 부르는 몇 가지의 억양이 다른 자신의 이름에서 생략되고 축약된 말들을 짐작했을 것이다. 커피 마시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든은 그에게서 컵을 빼앗지 않았다. 다만 그의 곁을 지나가면서 컵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의 손목을 잠시 쥐었다 놓았다. 이든은 흐트러진 자세로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그를 지나쳐 간단한 서너개의 동작으로 토마토를 반으로 자르고, 식빵을 토스트하고, 베이컨을 구웠다. 아침식사로 하기에 조촐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식사였다. 아침을 먹는 것 보다는 커피를 한잔 들이키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루윈의 앞에 접시를 내려놓고 다시금 그의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점심은 안먹더라도 아침은 먹어둬요.”

 루윈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든은 조금 웃고 자리에 앉아 천천히 아침식사를 마쳤다. 루윈이 아주 느리게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이든은 루윈이 방금 전 까지 쥐고 있었던 머그컵을 들어 알맞게 식은 커피를 반쯤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고른 버버리 코트를 걸치고 강의에 필요한 자료가 든 각진 서류가방을 어깨에 걸친 뒤에 이든은 아직 짙은 커피향이 남아있는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다녀올게요. 다른 일 하지 말고 쉬어요.”
 “다녀와요.”

 오후가 조금 못되어 시작하는 강의와, 확인해야할 이메일 여러 개. 머릿속으로 평소와 유사한 일정을 그리면서 이든 플로베르는 낡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연구실에는 퇴근하기 전에 잠깐 들렀다가 돌아오면 될 것이다. 하루쯤 비워도 괜찮았다. 



 집 안은 오후를 훨씬 넘긴 시각이었는데도 어두웠다. 아침나절 이후로 집 안의 불을 켠 흑적은 없는 것 같았다. 거실 테이블 위에 루윈이 읽다가 만듯한 신문이 펼쳐져 있었고 거실과 주방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이든은 소리를 죽이고 어깨에서 가방을 내려놓았다. 침실 문이 반 뼘만큼 열려있었다. 저녁이 못 된 늦은 오후이기는 했지만 아직 일반적으로 커튼을 칠 시각은 아니었음에도 밖으로 난 침실의 커다란 창문들은 완전히 커튼으로 가려져있었다. 이든은 반뼘 만큼 열려있던 문 틈으로 손을 집어넣어 몸이 통과할 만큼만 문을 열었다. 방안의 공기는 탁했고 빛이 들지 않는 방은 거실이나 주방보다도 훨씬 어두웠다. 이든은 침대 발치에 서서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죽은 듯이 잠든 루윈을 발 끝부터 머리끝까지 훑고는 협탁 위에 놓인 약병을 바라봤다. 자신이 집에서 나간 뒤에 그는 절반도 먹지 않은 아침식사를 치우고, 은행에 전화를 한 뒤에, 병원에서 처방한 수면제를 삼키고 잠든 듯 했다. 병원에서 처방한 수면제는 효과만큼은 꽤 그럴싸했다. 루윈은 수면제를 먹은 뒤에는 거의 반나절은 죽은 듯이 잠들었지만 대신 잠에서 깬 뒤에 잠에서 깨어난 것 보다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굴었다. 갈색 홍채 안쪽에서 검은 동공이 팽창되어있었고 정신을 차리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이든은 그가 깨지 않도록 발걸음 소리를 줄여 걸었고 혹시나 그 사이에 걸려올 전화가 있을까 전화선을 뽑았다. 개수대 안쪽에는 아침 식사를 한 접시와, 여분으로 나온 몇가지의 설거지 거리들, 그가 커피를 마신 머그잔 같은 것들이 규칙성 없이 놓여있었다. 점심도 거르고 잤을 것이다. 이든은 서류 가방 안에서 차키와 지갑을 빼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하얀 팩에 담긴 차이니즈 푸드라도 사와 저녁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이든이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밖은 완전히 어둑하게 저녁빛에 덮여있었다. 거실의 불이 켜져 있었다. 이든이 들어올 때 가지고 왔던 접혀있던 저녁 석간이 테이블 위에서 조금 움직인 듯 보였다. 이든은 석간을 한쪽으로 치우고 사들고 온 차이니즈 푸드 팩 두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에, 입고있던 버버리 코트를 벗어 반으로 개어 소파에 걸쳐놓았다.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오던 욕실 안에서 그가 걸어나왔다. 그는 늘 수면제를 마신 날이면 그렇듯이 아직 혼수상태에서 덜 깬 사람처럼 보였다. 

 “언제 일어났어요?”

 이든은 루윈의 손에서 떨어질 것처럼 쥐어진 수건을 받아들고 그의 얼굴을 천천히 문질러 닦았다. 희게 질린 얼굴위에 맺혀있던 물기가 가만히 수건 위로 젖어들었다. 방금. 요. 루윈은 드문드문 말을 이었다. 이든은 그의 얼굴에서 물기가 가시는 것을 보고는 뺨에 입을 맞추며 수건걸이에 수건을 걸어놓고 돌아왔다. 잘 잤어요? 루윈은 여전히 제대로 눈빛이 돌아오지 않은 채로 약간 고개를 저었다. 젓는지, 끄덕이는지 애매해서 이든은 그의 움직임을 바라보다가 아마 그의 대답도 움직임과 비슷할거라고 생각했다. 

 “앉아요. 저녁 사왔어요.”

 루윈은 이든이 영어 대신 라틴어로 말을 걸기라도 한 것처럼, 이든의 말을 알아듣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는 약간의 침묵이 따른 뒤에야 느리게 말했다.

 “생각 없어요”

 그는 알파벳을 하나하나 입 안에서 굴리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이든은 그의 뭉툭하게 구슬러지는 발음을 싫어하지 않았다. 루윈은 늘 아주 명확한 발음으로 말하곤 했는데 약에 취한 그는 가끔 이든보다 어린 아이처럼, 이든의 손에 무엇을 맡기지 않으면 안될 사람처럼 보였다. 루윈이 보여주는 약간의 서투른 틈새를 이든은 다른 여느 때 보다도 잘 비집고 들어가 자리 잡았고 이든은 그런 날이면 다른 날 보다는 어른스럽게 굴었다. 그래도 먹어요. 이든은 아직 혼미하게 정신이 멀어져있는 루윈을 가만히 부축했다. 허리를 감싸 안고 느린 걸음으로 소파까지 다다라 상체를 기울여 그를 안전하게 앉혔을 때 루윈의 입술이 스치듯 입술을 훑고 지나갔다. 그는 다시 잠들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이든은 하얀 종이 팩을 열고 물컵과, 물과, 스푼을 가지고 소파로 돌아왔다. 이든의 옷깃에서는 바깥 공기에서 묻어온 옅은 바람 냄새가 났고 약간의 차가운 공기가 묻어있었다. 이든은 자신의 팩이 식도록 내버려 둔 채로 수저에 진득한 차이니즈 푸드를 떠 루윈의 입에 떠넣었다. 그가 수저를 잡고 난 뒤에야 유리잔에 물을 따르고 테이블에 소리가 나도록 잔을 올려두었다.
 루윈이 팩을 삼분의 일 정도 비우고 나서야 이든은 자신의 팩에 손을 가져갔다. 그는 소파 위에 비스듬히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저녁 먹고 석간 읽어줄까요? 됐어요. 루윈은 눈을 감고있었다. 이든은 천천히 두 개의 다 비우지 못한 팩을 치우고, 바람이 들도록 테라스로 향한 거실의 문을 반뼘 만큼 연 뒤에 루윈의 팔 사이로 제 팔을 끼워넣어 그를 안아 일으켰다. 침대 가서 자요. 재워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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