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gger
이든 플로베르는 갈색 머리칼을 가만히 내려다 보다가 평소와 다르게 흰 이마를 가리고 있는 머리칼들을 손가락으로 느리게 왼쪽으로 쓸었다. 이든의 손가락은 그렇게 힘있게 머리칼을 넘기지 않았고 부드럽게 손가락 위를 스쳐지나간 머리칼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둥근 이마를 가렸다. 루윈 이바노브의 약간 창백하리 흰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는 이제 슬슬 다시 호텔 벽난로에 장작을 태워야할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벽난로의 안쪽은 까맣게 그을렸지만 봄과 여름동안 잘 닦인 채 정리되어있었다. 다시 벽난로에 장작을 태울 계절이 다가오면 가끔 이는 발걸음과 옷자락에서 이는 바람에 재가 날리고 턱턱거리며 나무껍질이 튀는 소리가 방 안을 메울 것이었다. 사실 벌써 구두 안에 갇힌 발은 조금 차가워져 있었다.
“다녀올게요”
이든이 말했을 때 루윈은 무릎 위에 놓여있던 신문을 반으로 덮었다. 고개를 드는 순간 이마를 덮고 있던 갈색 머리칼들이 한쪽으로 흘러내렸다. 이든은 다시 손을 들어 그의 머리칼이 눈을 찌르지 않도록 머리칼을 넘겼다. 루윈은 신문을 한 번 더 접고 소파에 기대어있던 상체를 약간 움직여 테이블 위에 신문을 내려놓았다. 루윈은 호텔에 있었지만 마치 다른 옷은 입지 않는 사람처럼 하얀 셔츠에 정돈된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넥타이를 매고 있지 않았다. 단추가 정확히 두 개 풀어진 셔츠 사이로 얼굴의 그늘이 드리워져 약간 그늘이 잠긴 목덜미가 드러났다. 그는 입술을 잠시 열었다가 닫고,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옅은 색의 그림자가 드리운 목덜미에서 목울대가 움직였다.
“거긴 괜찮아요?”
루윈의 말투는 건조했다. 그는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적어도 한번쯤은 확인해야겠다는 말투로 이든에게 그렇게 물었다.
“별 문제 없을거에요”
이든은 그의 최소한의 배려에 웃었다. 별 문제 없을 거에요. 그래야하고요. 덧붙이려던 말을 삼키면서 이든은 신문을 내려놓은 루윈의 얼굴을 바라봤다.
“잘 다녀와요.”
루윈의 말투에서 이든은 긴장감이나, 불안감, 걱정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럴게요. 이든은 이번에는 손바닥을 펴 가지런히 내려와 이마를 덮은 루윈의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희고 둥근 이마 위에 입을 맞췄다. 입술은 긴장으로 말라있었고, 이마에 입 맞추고 난 자리에는 아무런 소리도 남지 않았다. 이든은 루윈이 자신의 상태를 모르기를 바랐다. 이제 이든에게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했던 기계를 가지러 헤이든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는 일만이 남아있었다. 이든은 약간 손을 떨었다. 긴장하면 흔히 나오는 버릇이었지만 지금 당장 루윈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제 적어도 이든 플로베르가 그의 지푸려진 미간에 키스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은 알았겠지만, 이든이 긴장하면 손을 떤다는 사실은 아직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앞으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든은 그와 함께 있던 방에서 자리를 뜨기 전에 담배를 한 개비 태웠다. 이든은 약간 손을 떨었다. 루윈은 담배연기에 미간을 조금 지푸렸다. 이든은 담배연기가 가시지 않은 입술로 루윈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고 이든이 그를 보며 약간 웃는 동안 누그러진 무표정으로 이든을 바라보았다. 이든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허리를 세웠다. 다녀올게요. 말로 내뱉는 대신 이든은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그리고 손이 떨리지 않도록 손을 우그러트려 주먹을 쥔 채 걸어나갔다.
폐허가 된 도시로 걸어가는 동안 이든의 발밑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먼지가 이는 땅은 좋은 땅이 아니었다. 미들스쿨의 운동장이라도 되는 것이었으면 모를까 사람이 살기에는 좋지 않은 조건이었다. 이든은 얀과 함께 정원을 가꾸면서 얀에게서 좋은 땅과, 좋은 잔디와, 좋은 비에 대해서 익혔다. 얀은 정원사는 아니었지만 그 일대의 어떤 미국인 아버지보다도 잔디를 잘 깎았고 누구보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멋지게 만들 줄 알았으며 지붕 위를 예쁘게 장식할 줄 아는 남자였다. 이든은 발끝에서 부옇게 이는 흙먼지를 바라보다가 잠시 멈추어 섰다. 눈을 거치지 않고 뇌 안쪽으로 침투해온 영상을 그는 암호를 해독하는 사람처럼 천천히 읽어나갔다. 일행의 눈앞에는 거의 다 스러져가는 탑이 있었다. 이든의 눈에 그것은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피사의 사탑과 흡사했지만 조금 더 흉측했다. 갈릴레이가 깃털과 무게추를 떨어트리는 실험을 하기에 피사의 사탑보다 적합하지는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탑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천장은 뚫려있었고 더 둘러보지 않아도 그것은 충분히 폐허로 보였다. 불이 있었던 자리 같네. 세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마도 그것이 도그마들의 에너지원이었을거라고 추측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생각나 이든은 고개를 위로 한 채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바비큐 파티 하기 좋은 곳인 것 같은데”
이든은 작지도 크지도 않은 보폭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를 몇 걸음 움직이다가 뒤를 돌았다. 크루거의 말에 이든은 약간 웃었다.
“맥주 생각나죠?”
“그래”
“챙겨올 걸 그랬어요.”
지금쯤 미지근해졌겠지만. 마치 그리스의 유적 앞에 서서 거대한 과거를 바라보며 오늘 밤에는 펍에 가서 술 한 잔 걸쳐야겠어하고 말하는 관광객들 같았다. 크루거가 발로 타일을 두드렸다. 텅 빈 탑 안에 그의 발소리가 울리는 동안 이든은 뚫려있는 천장 위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비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내려올 것 같았다. 크루거는 무언가 발견한 사람처럼 허리를 굽혔다.
“조”
이든은 이번에는 그를 제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와 크루거 사이의 호칭은 이제 제멋대로 들쭉거렸다. 크루거가 그를 선샤인이라고 부르는 만큼 그들의 호칭은 제멋대로였으나 이쯤되면 이든도 그것이 싫지 않았다. 크루거를 대하고 있을 때면 이든은 그들 사이의 몇 년 간의 연륜의 차이에 대해서 실감하기는 했으나 그는 그것을 감안할 정도로 충분히 시덥잖은 농담을 건넸고 가벼운 농담들은 무게 있는 말을 전하기에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편안했다.
“놈들이 올거에요”
이든은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조 크루거는 이든이 그랬던 것처럼 위를 올려다보았다. 놈들이 올거에요. 이든의 목소리를 들은 일행들은 멈추어 섰다. 이든은 그들 모두가 자신처럼 위를 올려다보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으나, 적어도 이든의 예지는 그들 모두에게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도그마는 날아왔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둘이었지만 이든은 왜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는지 그때에서야 알았다. 날아오는 모습이 뇌 안에서 낡은 필름처럼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투는 너무 쉽고 용이하게 끝났다. 이든은 탑의 중간에 붙잡힌 도그마를 보며 천천히 뒷걸음질 쳐 중앙에서부터 벗어나 걸어나왔다. 조 크루거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이든의 곁에 서있었다. 벽은 차가웠고 이든은 벽에 천천히 등을 기대며 약간의 한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심리학자였고, 과학을 신으로 떠받드는 사람이지만 마치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라도 할 것 처럼 그의 살갗을 스치고 지나가는 벽의 한기에 약간 몸을 떨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아나? 크루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며 이든은 오래된 앨범 사이에 끼워진 사진을 보는 사람처럼 도그마와 세스를 멀리 내다보았다. 이든은 그의 말을 듣다가 간간히 웃었다. 노망이 들었다 진짜. 크루거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럴지도 모르지. 이든은 키스의 군화 아래에서 뭉개어지는 도그마의 손가락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리고 아마 조 크루거도 같은 것을 보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럴 필요 없잖아요. 이든은 자신이 키스에게 했던 말을 곱씹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생갱하게 들리고있다고 생각했다. 키스의 강함은 불편했고 이든의 생각에 그는 필요 이상으로 강했다. 그리고 언제나 모자란 것을 채우는 것은 쉬워도 넘친 것을 주워담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이든은 그의 강함이 임계치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다. 이든은 그의 특성을 가늠해보고자 했으나 그것은 이든의 영역이 아니었고, 이든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든은 벽에 기대어 크루거의 질문에 답했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나? 한참 독서에 취미를 들인 열여섯의 소녀가 물어볼 법한 질문에 이든은 한쪽 미간을 지푸렸다가 다시 세스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웃었다. 아직 상자에서 안나온 것 같은데. 이든은 크루거의 말에 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렸다. 어딘가에 있기는 하겠지만 제 눈앞에 나타난 적은 없었다. 이든이 처음 상자를 열었던 것은 대학에 들어왔던 해의 봄에 펍에서 울고 있던 아이다를 보았을 때였다. 사실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거기에 무언가가 남아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든은 곧 다시 거기에 희망을 남겨둔 채로 상자 뚜껑을 덮었다. 그녀는 그가 상자를 발견한 뒤 얼마 가지 못해 사라졌다. 이든은 그 상자가 자신의 것이 아닐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리고 그 후로 몇 년 동안 그는 상자를 다시 발견하지 못한 채로 여러 사람들의 사이를 전전했고 외로움과 외로움의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든 플로베르는 심리학적으로 외향적인 지표에 치우쳐져있었고, 불안정한 사람인가 안정적인 사람인가 가늠하면 대개 안정적인 사람에 속했다. 그의 십대와 이십대의 절반을 깎아먹은 주변인의 죽음은 그에게 큰 트라우마를 심어주기에는 충분했지만 사람의 특성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또한 이든은 자신의 내면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밝았지만 낙천적이지는 못했고, 희망이 없다고는 얘기하지 않았으나 희망이 모든 사람 앞에 하나씩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주어질거라는 안이한 생각은 하지 않는 축에 가까웠다. 상자는 있고, 안에 뭔가 들어있는지는 확인했는데, 상자가 내 것인 것과는 다른 문제지. 이든 플로베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희망이 남아있으리라고 믿었다. 크루거는 급작스레 수통에 물이 없다고 말했다. 유서에 나랑 같이 묻어달라고 써놔요. 당신 나 좋아하잖아요. 전우애를 뒤집어쓴 게이 같은 농담에 조 크루거는 의연하게 대답하면서 웃었다. 그는 적어도 이든에게 헛소리를 지껄이게 할 만큼 편했고 이든은 그의 시덥지 않은 위트를 들으며 웃었다.
돌연 세스의 질문은 달라졌다. 이든은 차가운 벽에서 등을 떨쳐냈다. 벽은 이든의 체온으로 약간 덥혀있었고 돌연 떨어진 등 위로 스산한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크루거의 시선을 느끼면서 이든은 세스와 도그마에 시선을 고정했다. 머릿속에서 수 많은 영상들이 영화처럼 지나갔다. 때로 그것들은 오래된 코닥필름처럼 노랗고 파란 색감 위에 흐린 필터를 입힌 것처럼 흘러가거나 이따금 노이즈로 흐려졌으나 이든은 긴 영화를 짧게 압축해서 보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관전했다. 그가 모든 것을 흘려보고있는 시간은 아주 짧았고 몇 번을 되풀이해도 그것은 기괴한 경험이었다. 상영시간이 족히 한시간이나 되는 영화가 단시간에, 고작 몇 초, 아니면 몇 분 안에 머릿속에 박혀드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눈과 귀를 거치지 않고 뇌 안에서 그대로 재생되었다. 이든은 네 마리의 도그마가 탑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헤이든과 론이, 안젤로와 키스가, 세스와 가르지울로가 나가는 것을 바라봤다. 이든은 천천히 걸어나가 그들 모두에게 간단히 상황을 요약한 뒤 크루거를 끌고 밖으로 향했다. 당신 물 없으면 형편없잖아요. 다시 돌아온건 시덥잖은 농담이었다. 너 나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이든은 자신이 개소리를 해대기 전에 농담으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크루거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설사 그게 그들의 언제나와 같은 패턴이라고는 하더라도 이든은 지금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이 크루거라는 사실에 감사했다.내가 물에 젖으면 더 볼만 해 질텐데. 조 크루거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이든은 온갖 신경을 쏟고있던 총을 그 자리에서 당장 부숴질 만큼 강하게 던져버렸을지도 몰랐다. 이든은 작은 물방울들이 수로를 내리치는 소리를 들으며 기억을 곱씹었다. 세스는 허공에 들렸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든은 잠시 바닥에 누워있는 세스가 일어나기를 기대했다가 눈을 감았다. 크루거는 물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제이, 이쪽은 맡길게요. 이든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람의 표정과 죽은 사람의 표정을 분간할 수 있었다. 짐의 시신을 보지 않았다면 이든은 그 때 자리에서 튀어나가 세스를 향해 달려다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가르지울로의 뒷모습이 망막 뒤에 맺혔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든은 달렸다. 숨이 모자라 가슴이 들썩거렸다.
이든 플로베르의 손끝에는 방아쇠가 걸려있었다. 이든은 정말로 그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되었으나 그는 술을 마신 사람처럼 손을 떨었고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이든은 어깨에 창이 박힌 채로 허공에 끌려올라가고 있는 세스를 보며 도그마를 조준했다. 한 번도 총을 거머쥔 적 없는 남자의 사격실력이 얼마나 좋을지 장담할 수 없었지만 이든에게는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밖에 없었다. 할 줄 아는 것조차도 아니었다. 그는 손목에 걸려있는 자신의 낡은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도그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손이 떨렸다. 한 번도 총을 거머쥔 적 없었던 이든은 몇 번의 연습이 무색하게 손을 떨었다. 단순히 자세를 잡는 것만으로는 그의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드러내주지 못했다. 숨을 토해내기 위해 가느다랗게 열린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숨마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세스의 목소리나, 가르지울로의 목소리,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들이 등 뒤에서 또는 눈앞에서 들려오고 있었지만 이든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시발 개새끼들이 총을 가지고 왔어. 이든, 이든 개새끼야. 숨으라고. 짐의 목소리가 발걸음보다 한걸음 앞에서 이든의 등허리를 덮쳤다. 이든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도그마를 겨누고있었다. 초침이 흘러가는 소리마저도 짐의 목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았다. 얼마만큼의 망설임이 허락되었는지 헤아려볼 시간은 없었지만 이든은 망설였다. 생에 최초의 살인을 눈앞에 둔 사람의 망설임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본능적으로 자신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귓가에 울려퍼지던 축제의 기억이 되살아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든 개새끼야. 누군가가 이든의 바지 끝단과, 종아리와, 벨트를 쥐고 그를 바닥 아래로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떨렸기 때문에 손이 같이 떨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든은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에 눈을 감으려고 했으나 그는 상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이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세스. 방아쇠를 당긴 순간 어깨가 약간 뒤로 밀려났다. 총소리가 폭음처럼 들려 이든 플로베르는 잠시 그 자리에서 비틀거리다가 겨우 땅을 제대로 디뎠을 때 자신이 한박자 느렸다는 것을 알았다. 도그마의 어깨에는 총알이 박혀있었지만 세스가 천천히 땅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세스. 이든의 입술 사이에서 한숨처럼 이름이 흘러나왔다가 그는 총을 버려두고 달렸다. 손끝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세스으으으으. 목소리에 방아쇠를 당긴 것 같았다. 이든의 목소리는 탄피처럼 흩어졌다. 폐허가 된 공간을 울릴 만큼 그의 목소리는 충분히 갈라져있었다. 이제 이든 플로베르에게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 못 박힌 사람처럼 서있었다. 아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심정이 그러한 것일 것이라고 그 와중에 그는 생각했다. 호텔에서 벗어나기 전의 긴장감으로 개소리를 해댄 이든 플로베르는 다시 한 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그런 생각을 했다. 뒤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의식은 그 자리에 붙들려있음에도 감각이 멀어진다고 생각했다. 마치 귀에서 들려와야할 발소리가 그의 뇌 안에서, 뒷통수의 안쪽에서 그의 머리를 내려치는 것처럼 소리들이 머릿속을 휩쓸고 지나갔다. 욕조에나 있을 법한 거대한 구멍이 뇌 가운데서 감각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발자국 소리가 멈췄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흙바닥 위에 누워있었다. 손이 뺨을 내려칠 때 마다 머리가 심하게 흔들렸고 이든은 자신의 얼굴을 내려치는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울컥 기침을 뱉었다. 익숙한 손이 몸 위를 누르고 있던 사람을 거두어 갔다. 목구멍 안으로 피냄새가 번졌다. 먼 발치에 자신이 떨어트린 총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자신의 곁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남자의 발을 보다가 이든은 더는 뜨고 있기 힘든 눈을 감았다.
잘다녀와요. 긴장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가 떠올라 이든은 팔로 뜨거워진 눈을 가렸다. 그는 죽음에 대체로 잘 적응했다. 그의 십대와 이십대를 거치는 동안 그의 주변에서 죽어간 몇몇의 인물들과, 그램블린 총기난사사건이 그에게 남긴 충격은 그를 그렇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물의 죽음에서 현실성을 느끼지 못하는 동안 이든은 거기에 쉽게 순응하는 법을 알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금세 죽음에 적응했고 금세 울음을 터트릴 수 있었다. 입술 사이에서 울음에 가까운 앓는소리가 흘러나왔다. 상처들이 아파와 가슴이 들썩거릴 때 마다 팔의 무게로 일그러진 시야 가운데서 크루거의 발이 보였다. 크루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거기에, 이든의 곁에 그의 발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이든은 아직 상자가 있다고 여겼고, 상자 속에 아직 희망이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것인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의 것인가 하는 문제였을지도 몰랐다.
'PROJECT-D' 카테고리의 다른 글
Sleeping Pill (0) | 2011.10.14 |
---|---|
滿潮 (1) | 2011.09.26 |
Mint Cookie in Suit (0) | 2011.09.05 |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0) | 2011.08.21 |
Thirteen, Four, Two, Two. (0) | 2011.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