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rteen, Four, Two, Two.
이든에게 넥타이는 어른의 상징이었다.
얀은 짐이 죽었을 떄 벽장에서 아주 낡고 오래된 양복을 꺼내주었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긴 했지만 그 당시에도 꽤 비싼 값을 주고 샀을 법한 좋은 옷이었다. 옷은 약간 유행에 뒤떨어졌지만 클래식했고 아주 고급스러웠지만 이든에게는 조금 컸다. 얀 플로베르는 독일남자였고 독일남자들은 미국남자들보다 키가 반 뼘만큼 컸다. 이든에게 상의를 입혀본 얀은 손등을 덮는 소매를 보고 잠시 턱을 쓸다가 이든의 등을 두드렸다. 소매를 수선할 시간은 없을 것 같구나 에단. 양복은 얀에게는 조금 작아보여서 이든은 아마 그것이 얀이 졸업파티에서 입었던 양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얀은 이든의 목에 검은 넥타이를 매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풀러냈다.
이번에는 네가 하는 거야. 남자가 어른이 될 때는 넥타이를 매는 법 정도는 알아야지.
얀은 짐이 죽었을 때 드디어 철없는 아들이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든은 그러지 않았다. 비록 이든은 졸업파티를 마치기도 전에 넥타이를 매는 법을 배웠지만 배울 줄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이든은 졸업파티에서도 넥타이를 매지 않았고, 대학에 와서는 더더욱 맬 일이 없었다. 심지어 이든은 직장조차도 넥타이를 맬 일이 없는 곳에 잡았기 때문에 얀은 그의 아들이 두 번 다시 어른처럼 넥타이를 맨 일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아버지의 말은 절반정도 맞는 것처럼 보였다. 이든의 친구들은 대부분 어른이 되어있었다. 넥타이를 맬 줄 알게 된 뒤에 어른이 되었든, 어른이 된 뒤에 넥타이를 맬 줄 알게 되었든, 어쨌거나 이든이 알고 있는 어른의 대부분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하물며 바이크와 사이드 쇼를 전전하던 놈들조차 그랬다.
그리고 이든은 루윈을 보면 넥타이를 떠올렸다. 그는 적어도 이든에게 어른의 표본이었고 이든은 그를 보면 목을 죌 것 같은 넥타이와, 걸어 잠근 양복과, 묵직하게 복도를 울리는 남성용 구두를 생각했다. 열세개의 셔츠 버튼과 네 개의 소매 버튼, 두 개의 깃 버튼, 투버튼의 양복 재킷. 루윈 이바노브의 셔츠에는 커프스 버튼이 달려있을지도 몰랐다. 수없이 많이 걸어 잠근 옷을 입은 남자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을 때 이든은 약간 웃었다. 담뱃불이 번지는 매캐한 냄새가 났다.
치즈 1/8개. 플루오르골드 두 병. 보틀리누스 독 한 병. 딸기잼과, 포도잼, 피넛버터 각 한 병. 코카인 칠그램. 이든은 노란 메모지를 접어 흰 가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뉴욕은 아직도 겨울처럼 보였다. 뉴욕 시내는 아직 겨울인 것처럼 보였다. 사실 뉴욕은 늘 그랬다.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여름조차도 뉴욕 시내는 이타카에 비하면 겨울처럼 추워보였다. 높은 건물들이 도로와 인도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사람들은 늘 바쁘고 우울한 표정으로 거리를 걸었다. 새처럼 땍땍거리는 하이힐소리와 남자들의 무겁고 힘겨운 구둣굽 소리들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마치 메아리처럼 휩쓸고 다녔다. 메인 도로에서 두 블럭쯤 떨어진 골목에서 이든은 가게를 찾았다. 플루오르골드와 보틀리누스 독과 코카인을 살 수 있는 가게. 이든의 가운안 주머니에는 교수의 확인증과, 허가서와, 여러장의 서류가 들어있는 하얀 봉투가 들어있었다. 코카인을 사는 건 쉽지 않았다. 어른이 될수록 그랬다. 그램블린 고등학교에서 코크는 깡패들의 신발 밑창에서 얼마든지 나왔다. 마치 끝이 없는 둑처럼 그들은 그것을 팔았고 하얀 가루약을 든 아이들은 모두 클럽으로 향했다. 약간의 가루와, 약간의 액체가 든 갈색병을 주인은 작은 박스에 담아주었고 이든은 그것을 담배가 들어있는 주머니에 넣었다. 낡고 짤랑이는 도어벨이 등 뒤에서 사그라들 때 쯤 이든은 건너편 인도를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다른 뉴요커들만큼 재미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루윈"
이든이 부르자 루윈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사람을 찾기라도 하듯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손을 흔들고 있는 이든을 발견했다. 그는 뉴욕 뒷골목의 보석상 앞에서 발을 멈추었는데 사실 그가 이든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든은 연구소에서 늘 입고 있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고, 한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로 다른 손을 들어 루윈에게 손을 흔들었다. 뉴욕 한 복판에서 의사나, 연구원이 입을 법한 흰 가운은 제법 눈에 띄었다.
루윈은 여전히 구속복 만큼이나 복잡한 양복을 입고 있었고 이든은 그게 그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도 약간은 어른스럽지 못한 점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가 양복 안에 갇혀있는 동안 그의 '어른스럽지 못함'은 갈아놓은 사과처럼 어딘가에 으깨져있을 것이다. 이든은 모든 심리학자들이 그렇듯이 누구도 완벽하지 않을거라고 믿었다. 잠깐만요. 그렇게 외치고 이든은 가게 앞에 세워져있던 검은 승용차 조수석에 갈색 봉투와 작은 상자를 내려놓았다. 고든이 빌려준 차는 오르막을 오를 때 마다 덜덜거렸지만 아직 쓸만했다. 이든이 차에서 몸을 빼내고 한적한 도로를 서둘러 건넜을 때도 여전히 루윈은 재미없는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는 약간 웃고있었지만 그것 뿐이었다. 이든은 저렇게 웃는 사람을 여럿 알고있었다. 행정실의 사무보조가 그랬고, 증권거래소의 직원이 그랬다. 이든이 고든을 대신해 연구비를 타러 갈 때마다 보는 은행 직원도 그랬다. 그러니까 루윈은 웃고있었지만 이든은 그가 재미없는 표정을 짓고있다고 생각했다. 루윈은 누구에게나 저렇게 웃을 법 했고, 이든은 자신이 은행이나 증권거래소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디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이든이 물었을 때 루윈은 병원이라고 답했다. 이든은 먼저 루윈의 안색을 살폈고 뺨이나 손끝, 이를테면 홍조가 보일 법한 곳이나 손톱 끝의 색을 느리게 훑어 확인했다. 약간 경직된 것처럼 느껴졌으나 아마도 루윈의 표정탓이었을 것이다. 이든은 손목에 찬 시계를 약간 내려다보고 가던 길을 멈춘 루윈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자신보다 약간 작았고 이든은 루윈을 아주 약간 내려다보았다. 이든이 루윈을 떠올렸을 때 넥타이를 떠올렸던 것처럼 이든이 루윈을 내려다보았을 때 이든은 짙은 갈색 머리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얼굴 선 아래로 루윈이 매고 있는 넥타이를 바라봤다.
점심시간이라고 하기에 조금 이르지만 아주 이른 시간은 아니어서 이든은 루윈에게 담뱃불을 붙였을 때처럼 웃었다.
"점심 같이 할래요?"
이든은 서브웨이 샌드위치 여섯 개를 더 사야했지만 아직 점심시간까지는 약간 시간이 있었다.
"선약이 있습니다."
"아, 그래요"
루윈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고 이든은 두 손을 들었다.
샌드위치는 일곱 개를 샀다. 고든이 자신의 샌드위치는 올리브를 빼라고 했으나 이든은 별 생각없이 똑같은 내용물이 든 샌드위치 일곱 개를 포장해달라고 점원에게 말했다. 교수님은 알아서 잘 빼먹을 것이다. 미각이 둔해서 사실 올리브가 들어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를지도 몰랐다. 교수님이 좀 더 까탈스럽거나 조금만 더 미각이 좋았더라면 고든 부인은 절대로 민트색 케이크 같은걸 굽지 않았을 것이다. 이든은 샌드위치 일곱 개가 들어있는 플라스틱 백을 손에 들고 걸어가다가 늘 그 코너를 돌 때 마다 보았던 비스트로의 창가에 익숙한 남자가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이든은 창을 노크하면 루윈이 알아차릴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지나쳐갔다. 선약이 있다고 말한 사람치고 그의 앞자리는 비어있었다.
"점심 잘 드셨어요?"
이든은 방에 딸린 작은 냉장고에서 미적지근한 물을 꺼내어 컵에 따르면서 웃었다. 미적지근한 물을 목 뒤로 넘기면서 이든은 창가에 기대어 섰다. 창 밖은 설원이었다. 침엽수림이 우거져있었고, 나무의 곧은 가지마다 뽀얗게 내려앉은 눈이 바람이 불 때 마다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이든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루윈은 평소처럼 재미없는 표정으로 아주 약간 웃고있었다. 웃고있다기보다는 미소라고 표현하는게 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저녁 시간인 것 같은데요?"
루윈의 말에 이든은 오십불 짜리 시계의 유리를 톡톡 손 끝으로 두드렸다. 이든은 사실 이미 저녁을 먹었다. 세스와 가르지울로 몫의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함꼐 사서 호텔에 들어오자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해할 법한 샌드위치 포장지에 세스가 비식거리며 웃었다.
"아뇨. 오늘 말고 지난번에요"
"혼자 드시고 있던 것 같아서요"
루윈은 약간 미간을 지푸렸다. 짓고있던 미소가 드물게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고 이든은 고개를 들며 들고있던 컵을 비웠다. 미지근한 물이 목 뒤로 넘어갔다. 드물게 어른스럽지 못한 표정에 이든은 재킷을 벗은 루윈 이바노브를 돌아봤다. 투버튼의 재킷을 벗은 만큼 그는 덜 어른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어딘가에 으깨져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약간의 어른스럽지 못함이 그의 다갈색 눈과 눈썹 사이에서 아주 조금 일그러졌다. 이든은 자신보다 반뼘, 또는 한 뼘만큼 작은 남자의 이마의 둥근 선을 바라보다가 컵을 창틀에 내려놓았다. 창 밖에는 이든이 보틀리누스 독과, 플루오르골드와 코카인을 사서 나섰던 뉴욕의 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이든은 루윈의 짙은 갈색 눈을 들여다보다가 금방이라도 그램블린 고등학교의 학생으로 돌아간 것 처럼 입술을 끌어올리며 웃었다. 얇은 입매가 올라가면서 뺨이 약간 끌려올라갔고 옅은 주근깨가 도드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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