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d of sea

 
  훈련과 실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간의 위협과 긴장감을 제외한다면 모든 것은 익숙하게 벼려진 동작들이었다. 나다니엘은 팔뚝까지 걷고 있던 셔츠의 소매를 내려 버튼을 잠그고 방탄조끼를 입었다. 두 대의 총과 나이프 하나. 복도 어귀까지 달려나왔을 때 그는 세스와 마주쳤고, 플라스틱 통 안에 담긴 포도당 캔디를 건넸다. 
  그들에게는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고 홀에 들어서자마자 나다니엘은 후퇴하는 마루들 사이에서 보았던 익숙한 남자를 발견했다. 벽이 허물어지는 광경을 나다니엘은 적어도 처음 보고 있었다. 아니 건물이 허물어지는 광경이라면 9.11테러가 그의 기억에 남아있었지만 철판들이 우그러져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보며 나다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들의 사이에는 벽들이 내려 섰다. 세스와 루이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나다니엘은 남은 마루를 바라봤다. 독대를 위한 벽 처럼 그들은 모두 서로가 벽 안에 갇혀있었다. 마루의 머리칼은 짙은 갈색이었고 마루의 눈은 파란색이었다. 그는 인간과 달라 보이지 않았고 나다니엘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그러길 바라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 것 처럼.



  그리고 나다니엘은 마루의 파란색 눈과 마주쳤을 때 바다를 떠올렸다.
  나다니엘 가렛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마루에게 그는 살의나 증오같은 것을 가지기엔 조금 유순한 축에 속했다. 군에서의 살상훈련과 임무의 수행 도중에도 나다니엘이 온화함과 거리가 먼 것들을 익숙하게 견디게 한 것은 그의 타고난 기질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켜야한다고 태어날 때부터 배운 것들을 위해 완전히 정당하거나 옳지 않은 일도 어느 정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나다니엘은 마루의 파란색 눈과 마주쳤을 때 바다를 떠올렸다. 그에게는 마루의 눈을 보고 살의나 증오 같은 것을 느낄만한 그 어떤 평범하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적어도 그 마루와 나다니엘이 한번쯤 전장에서 마주쳤더라면 나다니엘은 좀 더 기민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파란 눈동자에 대한 입장을 견고하게 쌓았을지도 몰랐다. 유순하고 상냥한 그의 기질들을 덮을 수 있게 하는 것들은 그가 인정할 수 있는 상부에서 하달된 그러한 공적인 것들로 이루어져있었다. 마루에 대한, 또는 전투에 대한 그런 것들이었다. 나다니엘은 아주 날렵하게 마루에게 총을 겨눈 뒤에, 마루의 바다색 눈과 마주쳤고 그리고 바다를 떠올렸다.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기억 중의 하나였다. 나다니엘의 삶에서 그가 사람의 얼굴 만큼 자주 마주친 광경 중의 하나는 바다였다. 스무살의 나다니엘 가렛은 비행기 위에 올라 발치에 융단처럼 깔린 바다 위를 날았고, 열여덟의 여름에는 그의 동기들과 해변에서 훈련을 했으며, 열다섯에는 해변의 농구 코트와 비치발리볼 코트에서 온 몸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그의 기억은 지독한 감기로 해변으로 놀러가지 못했던 열 살의 방을 지나, 일곱 살의 해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나다니엘은 일곱 살의 발치를 적시던 파도를 떠올렸다. 마루와 그의 발이 일직선이 되도록 멈추어 섰을 때 나다니엘은 모래사장을 짙은 색으로 적시고 뒤로 달아나면서 발목을 휘감던 파도를 기억했다. 파도는 그가 짐작하는 것 보다 빨랐고 나다니엘은 두 팔을 펼쳐 중심을 잡았다. 파도는 나다니엘이 짐작하는 것 보다 빨랐고, 그가 알아차리는 것조차 기다리지 않았다. 마루의 눈은 신중하게 나다니엘을 바라봤다.
  나다니엘은 두 팔을 펼쳤듯 천천히 손가락을 하나하나 펼쳤다. 총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처음 걸음마를 떼는 아이가 그렇듯 자신의 걸음을 셀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자신의 몇 걸음을 걷는지도 나다니엘의 통제 하에 있지 않았다. 빠르고 약한 물살이 발목을 맴돌면서 그를 멈추어 서게 했다가 다시 끌어당겨 걷게 했다. 나다니엘의 발목에서 물살이 빠져나갔을 때 마루는 나다니엘의 팔목을 잡았다. 물살은 뒤로 천천히 사그라들었다가 하얀 거품을 일며 다시 덮쳤다. 발목을 낚아채는 파도에 잡혀 몸이 무너지는 순간 마루의 어깨가 몸을 받쳤다. 나다니엘은 졸음처럼 몸을 덮치는 혼미한 정신 속에서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았다. 아무 것도 떠올릴 것이 없었다. 그는 이제껏 자신의 목숨을 위협당한 기억도, 주변의 누군가가 목숨을 잃은 기억도 없었다. 나다니엘은 자신의 몸이 통제를 벗어났다는 것을 몇 가지의 기억에 의존해 깨달았다. 그가 심하게 고열을 앓았던 독한 감기에 걸렸을 때의 지독한 수면제가 들어있던 약이나, 사관학교에서 온 몸을 하나도 움직이지 못할 만큼 지옥 같은 훈련을 하고 난 뒤의 몸과 비슷했다. 미약한 신경들만이 남아 그의 뇌를 움직였다. 나다니엘은 아주 느리게 눈을 깜박였고 등 뒤에서 마루의 손이 방탄조끼의 매듭을 뜯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차가운 금속이 가슴 위를 긁었다. 나다니엘은 마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물에 휩쓸려 부표가 떠오른 해변의 끝까지 쓸려갔을 때 겨우 목만이 물만으로 나와있는 것처럼 나다니엘은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나다니엘은 자신이 물에 휩쓸린 적도, 물에 휩쓸려 죽을 뻔 했던 경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다니엘은 숨을 헐떡였다. 입 안으로 자꾸 물이 밀려 들어왔다. 그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고 옆구리가 뜨거웠다. 제대로 악다물리지 못한 어금니 사이에서 힘겹게 외마디를 뱉었다. 나다니엘은 피곤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몸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칼날은 좀 더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졸음이 밀려와 마루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겨우 몸을 지탱하는 동안 마루는 자장가를 부르듯 쉬, 쉬, 하고 나단을 달랬다. 희미하게 밀려오는 졸음 속에서 몸에 박혀있던 차가운 칼날이 천천히 빠져나갔다.

  나다니엘은 아주 독한 감기약을 먹은 사람처럼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마루는 공들여 허리를 숙였다. 나다니엘의 눈커풀이 느리게 완전히 감길 때 마다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었다. 몸은 금방 잠에서 깬 사람 처럼, 금방 다시 잠에 들기라도 할 것 처럼 무겁고 지쳐있었는데에도 고동소리만이 조금씩 빨라지면서 그의 의식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놓으려고 애썼다. 나다니엘이 가쁘게 숨을 내쉴 때 마다 그랬다. 고동이 빨라질수록 손끝이 저려왔다. 마루의 눈은 이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루의 그림자 때문에 마루의 얼굴은 그의 파란 눈동자보다도 갈색 머리칼 끝만이 하얀 빛처럼 보였다. 나다니엘은 지친 가운데에서 눈이 부셨고 마루는 나다니엘의 셔츠 단추를 톡톡 칼로 끊어내고 피에 젖은 셔츠를 손으로 열어 젖혔다. 그는 일부러 자신이 잠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나다니엘이 졸음 속에서 겨우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그것 뿐이었다. 그는 일부러 자신이 잠들지 않도록 만들었다. 마루의 눈동자는 마루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마루의 머리 위에서 흔들리는 빛처럼 마루의 파란 눈동자는 마루의 눈동자가 있는 곳에 박혀있었다. 나다니엘은 검은 색으로 보이는 그 눈을 따라 느리게 눈동자를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바다를 찾았다. 목 깊은 곳에서 갈증이 일었다. 몸 안에 있는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다니엘은 이제 단순히 전보다 검어진, 그림자로 검게 물들어 보이는 마루의 손을 보면서 자신의 몸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단은 시야 위로 천천히 들어올려져 곧 마루의 손 안으로 사라진 군번줄을 바라봤다. 
  나단이 그 뜻을 셈하기도 전에 마루는 웃었다. 

  “안녕 나다니엘”

  일어나 네이트. My mate. 나다니엘은 누군가가 그를 네이트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 나다니엘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것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심하게 갈증이 일었다. 마루는 무릎을 꿇고 그림자를 만들었다. 이미 온몸의 통각이 마비된 것 같았는데도 나다니엘은 서늘함을 느꼈다. 칼날이 복부 위를 긁어 나갈 때 나다니엘은 바다 위에 떠오른 부표처럼 두 팔에 힘을 떨치고 흐리게 번지는 눈으로 마루의 얼굴을 바라봤다. 귀까지 물이 찬 것 같았다. 이제 정말 가라앉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때 마루는 굽혔던 무릎을 펴며 일어났다. 심장이 뛰었다. 마루의 손에 들린 칼날 끝에서 떨어지는 피가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마루의 얼굴이 녹아내렸다. 
  나다니엘은 그것이 세스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루는 좀 더 나다니엘의 곁에 서있었고, 앳된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다니엘은 눈커풀을 감은 채로 온 몸에서 피를 쏟아내는 감각 속에 천천히 가라앉았다. 귓가에서 찰랑거리던 물이 얼굴 위를 덮쳤다. 통각과 피함이 천천히 밀물처럼 빠져나가는 가운데에서 나단은 얕은 물 속에 잠겨있었다. 다시는 뜨이지 않을 것 처럼 감긴 눈커풀 아래에서도 의식은 가느다란 실처럼 아주 오랫동안 나다니엘을 붙잡았다. 나다니엘은 느리게 팔을 들어 상처가 새겨진 자국 위에 손을 올렸다. 

  나다니엘은 평범한 남자들 중의 하나였다. 갈색 머리나 색소가 옅은 눈 같은 것들은 그를 분별하게 해주는 수많은 특징들 중에 하나나 두가지에 불과했다. 그는 키가 컸지만 그만한 키의 남자들은 미국 도처에 깔려있었고, 중학교시절의 농구팀에서는 그다지 큰 축에도 속하지 못했다. 나다니엘은 그 뒤로도 성장했고 고등학교 때는 교내 농구팀과 미식축구팀에게서 제의를 받았지만 이내 그것들에 흥미를 잃었다. 그는 또래 보다는 약간 영민했지만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무언가를 주장하는 데는 그렇게 두드러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영리함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흥미로 약간 반짝이는 눈이나 나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몸짓에서 영리함보다는 온화함으로 비추어졌다. 그는 평범한 남자들 중의 하나였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다니엘을 분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주 적었다. 

  나다니엘은 이제 처음으로 자신이 죽을 뻔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발밑에 융단처럼 깔린 새카만 밤하늘에서 조차 한 번도 나다니엘은 그런 것을 겪은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든 폭풍의 눈 앞에 있을 수도 있었다. 나다니엘은 물 속에 잠겨 하늘을 생각했다. 나다니엘의 팔은 뻗어있었고 그는 균형을 잡는 것이 나는 것만큼이나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다니엘은 실처럼 희미하게 이어지는 의식 속에서 마지 물에 비쳐드는 불빛처럼 굴절되어 희미하게 빛나는 빛에 의존해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바다 한가운데에 잠겨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융단 같은 도시를 떠올렸다. 도시의 집과 건물들과 학교와 공원, 초목과 점같은 인파들은 잘 짜여진 페르시안 태피스트리처럼 보였다. 나다니엘은 복부에 새겨진 상처를 따라 손가락으로 천천히 상처를 더듬었다. 상처는 공들여 짜여진 태피스트리의 무늬 같았다. 나다니엘은 천천히 잠들었다. 

  이제 겨우 그는 몸에 표식이 남았음을 알았다. 겨우 하나의 상처였다. 그가 선택한 것들이 녹아든 하나 였다.

with Valium

mission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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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