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before
나다니엘은 가을의 끝무렵에 태어났다. 스무살의 알리사는 품 안에 안긴 작은 아이를 보고 웃었고 잭은 겨우 스무살이 된 아내에게 미안해했다. 그의 조부와 조모는 딸이 겨우 스무살에 낳은 아이를 걱정스레 바라보았으나, 가을의 끄트머리에 그들의 정원에 어린 묘목을 심었다. 늙은 노부부가 투덜거리면서도 아이와 아이의 부모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애정 표현이었다. 나다니엘은 그의 조부모의 정원 귀퉁이에 뿌리를 내린 묘목과 함께 나무처럼 컸다. 고개를 들기만 하면 흠뻑 몸을 적시는 햇살과, 물과, 흙만 있으면 튼튼하게 자라는 어린 묘목처럼 고개를 들기만 하면 거기에 있는 애정과, 사랑과 관심을 먹고 서두르지 않고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자라났다. 이따금 돌아보면 나무는 한뼘씩 자라났고 나다니엘도 그랬다. 부족한 것은 없었다. 나다니엘은 약간의 햇살과, 물과 흙만 있으면 저 혼자 스스로 자라주는 아이였다. 그는 다른 아이들보다 말 수가 적었지만 부모가 걱정하지 않을 만큼 밝았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금 더 얌전했지만 교사가 그를 주의깊게 보지 않아도 될 만큼은 충분히 어른스러웠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그가 세상에 온화하듯 그에게 온화했다. 그는 말썽을 부리지 않았고, 누구도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조부모의 연하고 물렁해진 살 위에 앉아 책을 읽었고, 잠든 조모의 안경을 벗겨 탁상 위에 놓아주고는 함께 잠들었다. 아이는 나무가 자라듯 자라 또래보다 반 뼘씩 컸지만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약한 계집애를 놀리는 것 보다는 조부와 뒤뜰에 나가 강한 위스콘신의 바람에 연을 날리는 쪽을 좋아했다. 더 이상 그의 늙은 조부모가 그를 무릎 위에 앉힐 수 없을 만큼 자랐을 때에는 카펫 위에 엎드려 그림을 그렸고, 뒤뜰에 나가 아버지를 졸라 공놀이를 했다. 숨이 가쁜 운동을 하면서도 나다니엘은 싸우지 않았다.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서로 뒤엉켜 농구공을 저만치 두고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나다니엘은 아이들의 등을 도닥이고 팔을 잡아 코치와 함께 그들을 떼어놓는 쪽이 그의 성미에 맞았다. 그는 스스로 자라주는 아이였다.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알맞은 양의 애정을 알고 있었다. 아이는 때로 예상을 벗어나고 부모의 마음대로 자라주지 않는다고들 흔히 말했지만 그의 부모는 지나가던 노부인이 그런 말을 할 때면 그저 웃으며 나다니엘의 어깨를 팔로 감싸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늘 온화하고 착한 아이들 중에 하나였다.
커튼을 걷고 몸을 일으켰을 때 복부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통증에 나다니엘은 커튼을 그의 단단하고 큰 손으로 잡은 채로 한참동안 눈을 감고 빛을 맞았다. 가을의 초입 답게 햇살은 따듯하고 강렬했다. 나다니엘은 오래된 일들을 떠올렸다. 아직은 흐릿한 머리를 흔들고 늦은 가을에 태어난 자신과 함께 자란 나무와, 이제는 작별 인사를 준비하기 시작해야하는 조부모와 알리사가 있는 부엌을 생각했다. 가을 볕은 따가웠고 아주 드물게 그런 햇살은 나다니엘에게 그가 오래전에 겪었던 생각 중의 일부를 떠올리게 했다. 나다니엘에게는 아주 드물고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지만 가을은 종종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따듯한 볕 아래에서 눈을 감은 채로 배와 허리를 덮은 상처 때문에 아침 조깅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침대 맡에 몸을 기댔을 때 문득 나다니엘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침에 알람 없이 눈을 떴고 이불에서 뒤척거리는 법을 몰랐다. 그는 늘 정해진 시간에 무엇을 했다. 학교에 갔다가 아이들과 놀고는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숙제를 했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훈련을 하고 강의를 들은 후에 미래를 이야기 하며 잠이 들었다. 그가 그대로 사관학교를 졸업해서 군인이 되었었더라면 변한 것은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옷을 입고, 정해진 일을 하고, 정해진 비행기를 몰고 정해진 시간에 잠이 들었을 것이었다.
나다니엘은 한번도 그런 것들에 의문을 품어본 적 없었다. 이따금 특무부의 훈련이 끝나고 난 뒤에, 막스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왔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티비를 켜는 것과 샤워를 하는 것, 집에 전화를 하고, 잠이 드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 나다니엘을 약간 서운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에 깊은 생각을 품어본 적은 없었다. 심심하다거나 지루하다는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나다니엘은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혼자 집에 돌아와 텅 빈 집안에서 멍하니 작은 뉴스소리만 들으며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있을 때에도 그것에 외롭다는 말을 써야한다는 것을 몰랐다. 나다니엘이 알고 있는 외로움은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나온 퍽퍽한 문학에서 읽은 것과, 언제쯤 돌아오니 나단? 이라고 말하는 알리사의 목소리에서 추측해낼 수 있는 것들이 전부였다. 나다니엘은 처음부터 혼자였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익숙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집어 말하거나 누군가에게 그런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남자는 쉽게 기분이 좋아졌다가는 쉽게 우울해했다. 쉽게 기뻐했다가 쉽게 초조해했고, 쉽게 불안해했다. 한참을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면 잠시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다시 목에 힘을 주고 일어나 나다니엘의 어깨를 두드리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겼다. 그의 다채로운 감정들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다니엘을 쉽게 흥미롭고 곤란하게 만들었다. 나다니엘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표정들을 앉아 말없이 관찰하고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거나, 그가 재잘거리는 사이에 식탁에 차려진 밥을 먹었다. 혼자 사는 집에서 나다니엘이 겨우 할 줄 아는 것은 마이크로 오븐에 인스턴트 식품의 한 귀퉁이를 찢어 넣고 돌리는 것 뿐이었고, 마이크로 오븐에서 갓 꺼낸 음식에서는 차가운 김이 흘러나왔다. 음식들은 약간 눅눅했고, 나다니엘의 입에는 그것들이 아주 짰다.
막스는 마치 알리사가 그러듯 정성들여 요리를 했다. 그는 점심시간이면 꼭 그래야하는 것처럼 나다니엘의 이름을 부르면서 활짝 웃었고 나다니엘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을 헤메이기 전에 흔쾌히 그와 함께 걸었다. 나다니엘은 한 번도 그런 것에 의문을 품어 본 적 없었다. 침대 곁은 늘 비어있었고, 나다니엘은 그런 것에 칭얼거리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쉽게 기분이 좋아졌다가, 쉽게 우울해했다. 쉽게 초조해하고 쉽게 가슴아파했다. 상처를 보며 울음을 터트렸을 때조차 그랬다. 나다니엘의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었지만 붕대를 풀렀을 때 보이는 흉터는 그리 흔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잘 단련된 복부 한 가운데 쓰여 있는 알파벳은 결국 쉽게 마음 아파하는 남자를 울리기에 충분했다. 이를 악물고 울지 않는 표시라도 내려는 듯 했지만 나다니엘의 눈에 그런 것이 보이지 않을리 없었다. 말 수가 적은 나단이 아주 잘 하는 일 중의 하나는 누군가를, 사람을 관찰하는 일이었다. 손등과 풀어진 위에 번지는 물자욱을 보면서 나다니엘은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조용히 막스를 안았다. 왜이래. 이거 풀어. 놔. 나 안울어. 품 안에서 몸을 뒤트는 몸짓에 나다니엘은 약간 웃었다.
“나 환자야.”
마른 몸을 비트는 대신 조용히 불리는 이름에 나단은 좀 더 얼굴 근육을 움직이며 웃었다. 나단. 나단. 가끔 나다니엘은 막스가 몇 살인지 잊어버리곤 했다. 아니 나다니엘은 쉽게 막스의 나이를 잊었다. 그는 스스럼없이 곁에 있었고 그의 나이보다는, 그가 움직이고 말하는 것들이 좀 더 나다니엘에게는 중요했다. 금세 기뻐했다가 우울해하고, 초조해하고 걱정하다가 금세 또 씩씩하게 제 팔목을 잡아 끄는 것들이 더 중요했다. 나다니엘은 그가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우는 것을 달래기 위해 안고 있었던 마른 몸을 좀 더 당겨 안았다. 이따금 제게 그 많은 음식과 요리를 먹이면서도 마른 것이 호기심처럼 자리매김 하고는 했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쉽게 모든 감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람이니까, 쉽게 떨고, 쉽게 무서워했을지도 몰랐다. 나다니엘은 결국 아주 드물게, 아주 드물게 내는 목소리로 목청을 울려 나지막하게 웃었다.
“울지마.”
색이 엷은 제 곁에 있으면 좀 더 짙은 색으로 보이고는 하는 갈색 머리를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두 어깨를 잡아 안겨있던 몸을 떼어냈다. 빨갛게 번진 갈색 눈동자를 보다가 그마저도 조용히 웃어보였다. 아주 익숙한 생활이 이따금 아주 조금씩 이상하게 느껴지고는 했다. 같은 자리에 앉아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이, 눅눅한 김이 오르는 피자를 들고 조용한 외곽의 아파트 가운데 앉아 듣는 티비 소리가 지나치게 조용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나다니엘은 품 안에서 우는 남자의 빨갛게 번진 눈을 보고 나서야 겨우 익숙한 것들이 익숙하지 않게 변해가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익숙한 것이, 익숙하지 못하게 될 때는 다른 것이 익숙한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새롭게 익숙해지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는 침대 맡이 어쩐지 지나치게 고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순전히 남자의 탓이었다. 커튼을 걷었을 때 몸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맞다가 문득, 상처가 난 몸으로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우두커니 앉아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도 막스의 탓이었다.
악물었다가 놓은 것처럼 발갛게 변한 입술을 바라보다가 나다니엘은 조금 더 웃었다. 힘없이 늘어진 두 손을 잡아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리고 알리사가 어린 나다니엘의 이마에 남겼듯, 가벼운 입맞춤을 입술 위에 남겼다.
“이제 울지마.”
막스는 쉽게 놀라고, 쉽게 울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은 지켜보기에는 심심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다니엘은 그가 우는 것이 싫었다. 곁을 비집고 들어와 익숙하게 자리 잡았을 때 나다니엘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몰랐지만 막스는 천천히 기다렸다. 늘 하는 만큼 점심을 먹고 저녁식사를 초대했다. 나다니엘은 스스로 자라는 아이였다. 정해진 것들에서 벗어나는 것들에, 정해진 만큼의 사랑과 무미건조한 것들에서 벗어나는 것에는 또 다시 자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다니엘은 정해진 양 만큼의 것들, 흘러넘치지 않는 것들에 익숙했다. 남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에 조차도 그랬다. 그는 상냥하고 온화했지만 그런 것들을 배우는 데는 아직 미숙했다.
“괜찮아 이제.”
나다니엘은 막스를 안심시키듯 충혈된 눈가를 굳은 살이 배긴 엄지로 쓸고 웃었다. 좋아해. 나다니엘은 아주 쑥스럽고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웃었다. 미숙한 감정을 미숙하게 표현해야했지만 그래도 쉽게 놀라고, 쉽게 초조해하고, 쉽게 걱정하는, 마음이 여린 남자가 울음을 그치는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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