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나다니엘은 시간에 맞춘 일과에 익숙했다. 그보다는 스스로 게을러지지 못하는 사람 쪽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그는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시간에 출근했다. 출근이라고 하기에도 어색한건 작은 접전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훈련장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에 총기를 손질하고 과녁을 한참이나 노려보는 연습을 한 뒤에 체력을 단련하는 정도가 다였다. 나다니엘은 제법 스스로 정해둔 시간 내에서 움직였고 사격장에서 훈련을 하는 동안에도 주변에 사람이 많거나 적어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종종 사람이 없는 시간에는 세스 테일러와 마주쳤다. 마치 사람이 드문 시간을 찾기라도 한 것처럼 세스는 드물게 총성이 잦아드는 시간에 사격장에 들어왔다. 나다니엘은 이따금 그와 마주쳤다. 익숙하게 단련된 어깨가 뻣뻣하게 당겨올 때 쯤 너덜너덜해진 과녁을 보다가 시선을 돌리면 세스 테일러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총을 손질하고 어깨를 펴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나다니엘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만큼 많은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종류의 사람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에 붙임성 좋은, 사교성에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 특무부에 들어온 뒤로 꽤 오랫동안 데면데면한 사람의 하나로 훈련장만 배회했던 것을 보면 그보다는 더 쉽게 나단이 사람관계에 익숙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거쳐 온 인간관계들은 대부분 주어지면 해내야하는 팀워크에 가까웠고, 사관학교는 그의 그런 기질들을 좀 더 군대에 알맞은 방식으로 훈련시켰다. 나다니엘은 속을 알 수 없는 전혀 다른 사람과도 팀을 이루고 작전을 명령하는 방법은 알았지만 드문드문 마주치더라도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을 붙여야하는지 몰랐다. 나다니엘이 세스를 관찰한 것 보다는 더 적은 빈도로 세스는 이따금 가볍게 고정된 과녁으로 몸을 풀고 움직이는 것들을 향해 총을 쏘는 나다니엘을 바라봤지만, 나다니엘이 그런 시선을 눈치 챌 정도가 되면 이내 다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얼굴을 돌렸다. 나단이 세스에게 말을 건 것은 그러니까 새삼스럽게 그가 말 수가 없는 자신의 성격을 돌이켜보아서도, 데면데면한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서도 아니었다. 그냥 내키지 않는 자세로 총을 들고 있는 세스의 옆 모습이 불안해 보였을 뿐이었다.
“다른 훈련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나다니엘의 목소리에 세스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나다니엘의 목소리는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낮았고, 말수가 적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으레 그렇듯 날카롭지 않고 모나지 않았다. 불쑥 말을 걸어도 누구도 놀라지 않고 천천히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느리게 훑어볼 수 있는 목소리였다. 세스 테일러는 말 없이 총을 바라보다가 다시 과녁에 시선을 두었다. 팔은 좀 더 들어올리는 편이 좋아요. 일직선으로. 나다니엘은 하릴없이 말을 덧붙였다. 새삼스럽게 나다니엘이 말을 건 이유는 딱히 다른 이유가 있기 보다도 그가 동료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나다니엘은 적어도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누군가를 도울 의향이 있었다. 그의 눈에 세스 테일러는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으나 도움을 원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나다니엘은 평소처럼 익숙한 하루를 보내고 버스로 두세정거장은 되는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나설 때도, 집으로 돌아갈 때도 그랬다. 나다니엘은 오랜 시간 걷는 것에 익숙했고 타인의 생각보다도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했다. 이따금 아침 산책을 나선 노부부와 강아지나 유모차에 앉은 어린아이들도 그가 느리게 고개를 돌려 시선이 머무르게하는데는 충분히 풍족한 자극이었다. 나단은 그 날 드물게 사격장에서 세스 테일러를 만났고 어딘가 들뜬 것 같은 표정, 뺨이 미세하리만치 붉다거나하는 것들에서 늘 내켜하지 않는 세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림짐작을 하긴 했지만 그게 큰 문제가 될거라는 생각은 적어도 하지 못했다. 나다니엘은 제법 훈련을 마친 뒤였고, 사격장에서 돌아나오며 유리 창 너머로 세스의 등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쉽게 그와 다시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다니엘의 아파트는 바로 근방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교통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세스는 정류장 벤치에 앉은 채로 숨을 몰아 쉬고 있었고, 나다니엘은 그가 버스에서 내린 채로 그곳에 앉아있었으리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테일러?”
나다니엘의 목소리에 겨우 고개를 든 세스를 바라보며 나다니엘은 붉게 열이오른 얼굴과 뭐라고 대답을 하려다가도 꽉막힌 채로, 숨이 기도를 통과하는 것조차 힘든 것 처럼 색색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그를 바라봤다. 사격장에서도 어쩐지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는데. 나다니엘은 목이 아플 것 처럼 올려다보는 세스 테일러를 보다가 가볍게 무릎을 굽혔다. 전 보다는 조금 세스의 고개가 덜 젖혀졌다. 나단은 크고 투박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고 다시 한 번 이름을 불렀다. 테일러.
“많이 아파요?”
나다니엘은 대답을 듣기라도 한 것 처럼 오랫동안 무릎을 조금 굽힌 채로 세스의 앞에 서있다가 자세를 낮춰 등을 보였다. 무거울 텐데. 꽉 잠긴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 된통 앓고 있는 태가 났다. 사십키로가 넘는 등집을 지고 가는 행군도 일년에 두어번은 있었다. 쉽가리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아픈 마당에 그게 그렇게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류장에서 아파트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고 그 거리를 걸어갈 수 없을 만큼 지쳐있었다면 더욱 그랬다.
나다니엘은 제법 키가 큰 남자를 등에 업고 무게를 견디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남 눈에 꽤 이상한 광경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짐을 지듯이 어깨에 매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이었다.
나다니엘은 특무부 발령이 결정 된 뒤에 근방에 비교적 빨리 플랫을 잡았다. 아파트는 미음자 형 구조로 밖을 둘러 복도가 나있었고, 베란다 창을 열면 네모모양으로 가둬진 잔디밭에 세발자전거나 통학용 자전거 같은 것들이 세워져 있었다. 아파트는 좀 낡았지만 그런대로 쓸만 했고, 채광이 좋았다. 나다니엘이 고작해야 그 아파트에 오후 내내 머무르는 날은 주말뿐이었기 때문에 아침 채광이 좋은 것과, 부엌이 크지 않아 공간이 넓다는 것.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아서 허전하지 않다는 것들은 나단이 아파트를 고른데 꽤 좋은 이유들이 되었다. 세스 테일러는 얼마 후에 그 아파트로 이사왔다. 나다니엘이 뜰 쪽의 커튼을 열면 바라볼 수 있는, 건너편 아래층에.
나단은 세스의 이삿짐을 옮겨주며 가봤던 문 앞을 익숙하게 찾았다. 열 때문에 어딘가 혼미한 듯한 세스에게 물어 문을 열고 침대에 업고 있던 몸을 눕혔다. 세스의 열과 옮기는 동안 흐른 땀으로 셔츠가 젖어서 등에 한기가 들었다. 나단은 라디에이터를 틀어 온도를 높였다.
“약은..?”
“식탁 위에.”
나단은 물 컵과 약을 함께 건네고 그가 잠들기까지 기다렸다. 그가 잠든 뒤에도 집에서 나가지 못한건 그냥 자신이 나간 뒤에 안에서 문을 잠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다니엘은 세스와 같은 공간에서 그가 자는 걸 지켜볼 만큼 서로가 친근하지 않은 사이란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그래도 여전히 자신이 집을 나선 뒤에 문이 열려있는 것이 신경 쓰였다. 나다니엘은 세스의 텔레비전을 함부로 켤 수도 없었고,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하루를 재미없게 같은 식으로 보내는 만큼 여유가 되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나단은 두어 시간 뒤에 세스가 일어날 때까지도 식탁 앞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따금 밖에서 자전거 벨이나 차가 지나가는 작은 소음이 들렸고, 세스가 뒤척이는 동안 이불이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시간은 길고 무료했고 나다니엘은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세스의 주방은 자신의 것 보다는 좀 더 복잡하고 식기가 많았다. 해가 거의 다 져서 누런 빛이 사라지고 희미한 청보라색으로 어둑해졌을 때야 깨어난 세스를 보고 나다니엘은 코트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 잠그고 자요 테일러.”
“고마웠어.”
나다니엘은 입 근육과 눈을 움직여서 느리게 표정이 번지도록 웃었다. 달칵, 하고 등 뒤에서 문고리가 걸어잠기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그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나단이 침대 옆 커튼을 걷었을 때, 익숙한 창문에서 익숙한 사람이 손을 흔들었다. 나단은 그 창문이 세스의 집 창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느리고 과장되지 않게 손을 흔드는 사람을 보곤 아침이 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천천히 웃었다.
그 뒤로 세스는 곧 잘 잠들었다. 나단은 비교적 일찍 잠들었고 침대 맡의 스탠드도 켜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밤 새 창문 너머에서 세스가 어떻게 밤을 보내는지 알진 못했고, 세스는 밤이면 잊지 않고 커튼을 쳤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세스는 그래도 곧 잘 토막잠을 잤다. 둘은 모두 말이 없었고 나단은 말이 없어도 편한 세스와 같이 있는 것도 편했다. 나단은 이따금 사격장이 아닌 휴게실 같은 곳에서 세스와 마주쳤다. 둘은 서로 말이 없었고, 굳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세스는 나단이 곁에 있으면 종종 소파 위에서 잠이 들었다. 나단은 군복 대신 서서히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재킷이나 코트를 잠든 세스에게 양보했다. 나단은 가쁜 숨이 천천히 돌아올 때 까지 느긋하게 수분을 채우며 몸을 쉬었고 세스는 모자란 잠을 채웠다. 나단은 세스를 이제 세스라고 불렀다. 테일러보다는 좀 더 편안한 어감이었다.
with Seth
with Seth
'OperationDOXA' 카테고리의 다른 글
Never before (0) | 2012.02.19 |
---|---|
The bed of sea (0) | 2012.02.03 |
Dinner table (0) | 2012.01.23 |
Origin (0) | 2012.01.23 |
Amazing Grace (0) | 2011.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