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zing Grace
군의 겨울은 추웠다. 나다니엘은 챙이 짧은 군모를 눌러쓰고 머플러를 여몄다. 희끄무레한 안개 속에서 동이 터오고 있었다. 날은 흐렸고 아침 빛 대신 구름이 푸르게 젖은 채로 하늘을 가렸다. 비행을 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쇠로 만든 무거운 기체들이 활주로 위에 거병처럼 서있었다. 나다니엘은 가죽 장갑 안에서 추위에 서서히 얼어오는 손을 세게 주먹 쥐었다. 일벌처럼 일해야 할 때였다.
거수경례를 한 군인들이 차례로 거병 위에 올라탔다. 기체는 육중했고 흰 안개에 젖은 활주로를 무섭게 내달리는 동안에도 흔들림 없이 나아갔다. 마지막 비행을 하기에는 최악의 날씨였다. 그들은 모두 그들의 비행이 스무살의 꿈처럼 생겨먹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조국의 하늘을 지키기 위해 기체 위에 올라타는 군인은 아무도 없었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였고 그들은 다섯 살 때부터 애국심보다 먼저 자유와 권리와 책임을 배웠다. 탑건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열두살의 여름에 비행기를 타고 써머캠프에 다녀왔고, 개중의 몇몇 보이스카웃과 걸스카웃들, 모험심이 충만했던 소년들과 견장에 눈독들인 소녀들은 열아홉살이 되어 커데트 에어리어에 지원했다. 엄격한 체격심사와 성적과 훈련을 갖춘 뒤에 드디어 거병 위에 올라타게 되었을 때 대부분의 생도들은 그들이 탄 기체가 자유와 가장 동떨어져 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들이 훈련용으로 탔던 전투기에서는 늘 모래냄새가 났다. 이라크의 자유와, 자유의 나라 미국을 위하여. 많은 군인들이 부상과 내상을 겪으며 고국으로 돌아왔고 사막의 모래가 마치 진흙처럼 그들의 몸에 거칠게 달라붙어있었다. 상처 입은 전투기들은 몇몇의 상처 입은 군인들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왔다. 기체에서 떨어지는 모래에서는 한 번도 군인인적 없었던 민간인의 피 냄새와 고철의 냄새, 화약의 냄새와 탁한 바람 냄새가 났다. 한 번도 자유와 가까웠던 적 없는 냄새들이었다.
나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몇몇의 생도들이 학교에서 떨어져 나가는 과정을 알았다. 그들은 자유의 나라 미국의 뒤에 숨어있는 수만가지의 자유의 뜻에 대해 배우고는 곧 커데트 에어리어를 떠났다. 천여명의 커데트 에어리어 졸업생 중에 마지막 비행을 맞는 파일럿의 숫자는 적었다. 그들은 엄격한 조건아래 선별되어 엄격한 훈련을 받았고 살아돌아오는 대신 전투기와 함께 죽는 명예를 익혔다. 기체의 무게와 무게만큼 값비싼 명예는 고작 스물두세살의 청년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장에 대한 환상과, 자유에 대한 거짓말, 그리고 스물두세살의 호기로움으로 두려움을 대신해 자리를 메웠다. 남은 사람들만이 활주로 주변을 서성거리다 비행기에서 내려 군병원으로 들어가는 수십명의 부상자들과 마주쳤다. 붕대는 모래빛으로 빛이 바래있었고 그들의 군복은 사막의 색을 닮아있었다.
흐린 하늘 속에서 관제탑의 붉은 등이 서서히 깜박거렸다. 마지막 비행은 미루어지지도 취소되지도 않았다. 전장은 날씨와 날짜를 고르지 않았다. 그들의 기체에서는 모래냄새가 났고 전투기의 바퀴가 굉음을 내며 시멘트 위로 새 홈을 패어놓으면서 천천히 날아올랐다. 하늘 위에서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직감을 대신해 계기판만을 가늠하는 이성뿐이었다. 미숙한 파일럿들은 하늘 위에서 그들의 기체에 장착된 자유의 의미까지 되새길 여유가 없었다. 비행은 아주 복잡하고 고된 작업이었고 그들의 모든 이성을 숫자와 계기판들에 쏟아 붓도록 하는 것은 계획된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군의 겨울은 추웠다. 나다니엘은 활주로를 달리면서 그의 전투기 창에 약간의 서리가 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코드네임 허니비 이륙합니다.”
너희는 일벌처럼 살아야해. 아무 생각도 하지마.
시야는 흐렸고 빛은 비치지 않았다. 상공 만피트에 이르렀을 때에도 마찬가지 였다. 계기판 안에서 그들은 빨간 점으로 서로를 확인했지만 그 뿐이었다. 통신기는 오래도록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가 짧은 노이즈만 내뱉었다. 공기에서 습한 냄새가 났다. 안개 낀 하늘의 냄새와 햇빛이 비치지 않은 구름에서 나는 비린 물의 냄새. 미숙하고 어린 파일럿들의 어깨가 긴장과 추위로 굳었다.
“가렛 생도 비행고도를 낮추기 바란다.”
통신기는 더 고요해졌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열대의 육중한 전투기들이 우유 속에 잠긴 과자처럼 구름 속에 젖어 고요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레이더망에 잡히는 빨간 점에 지나지 않았으나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나다니엘은 통신기에서 흘러나오는 명령에 따를 수 없었다.
“구름 때문에 고도를 더 낮출 수 없습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습니다. 삼천피트 위로 상승합니다. 허가해주십시오.”
“오천피트 이하로 하강 명령한다.”
“죽습니다.”
“죽어도 좋다.”
“고도 높이겠습니다. 코드네임 허니비 전원 삼천피트 상승합니다.”
“나다니엘 작전교육관 생도.”
약간의 노이즈가 관제탑에서 흘러나왔다. 나다니엘 작전교육관 생도. 남자의 목소리는 딱딱했다.
“명령 불이행합니다. 허니비 전원 상승비행합니다.”
나다니엘 생도!
“오랜만이네 나단.”
“졸업했어요.”
“이제 군인이야?”
“아마도요.”
그녀는 하늘색 포장지 안에 색색의 컵케이크를 넣고 종이팩을 닫았다. 남색 교복을 입고 나단에게는 지나치게 작은 의자 위에 앉아있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흰색 테이블 위에 팩을 올려두며 맞은편에 앉았다. 가게 안은 단 아이싱의 냄새와 아이스크림의 냄새, 와플의 냄새로 가득했다. 평일 오후면 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우르르 몰려들어와 코튼캔디를 연상케 하는 하늘색과 레몬색, 흰색으로 가득찬 가게 안에 앉아 컵케이크를 먹었다. 의자에 앉으면 아이들의 다리는 바닥에 닿지 않은 채로 달랑거렸다. 빨간 타탄체크무늬의 치마와 분홍색 머리 방울, 하늘색 캡과 보라색 운동화. 레이스가 달린 양말과 끄트머리 올이 다 풀린 청바지. 나다니엘은 아이의 손을 잡고 가게로 들어온 어머니들이 자동차의 키를 짤랑거리며 투정부리는 아이의 손을 흔들다가, ‘가져갈거에요’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녀들은 바쁘게 아이를 자동차에 태우고 뒷좌석에 컵케이크 상자를 놓은채로 월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 중산층의 가정을 책임지는 남편들의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커스터드 크림과 피쉬 칩스. 감자튀김과 스테이크. 베이컨과 콩통조림과 으깬 감자 같은 것들. 하이스쿨의 여름방학이면 나다니엘은 어머니와 면식이 있는 그녀의 가게일을 돕고 약간의 푼돈을 받았다.
“아직도 신경쓰이니 나단?”
여자의 이마에는 주름이 패여 있었다. 나다니엘은 그 가게에 들러 발을 동동거리며 먹는 아이 중의 하나였을 때보다 여자는 훨씬 늙어있었다. 나다니엘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녀의 가게에 들러 남자아이답게 민트쿠키몬스터 컵케이크를 먹었다. 그 다음에는 니트로 짜인 겨울 모자를 귀까지 덮어쓰고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여섯 개의 컵케이크를 사갔고, 그 다음에는 여름방학동안 레모네이드를 만들고 계산을 돕다가, 마침내는 겨우 한 달에 한번 마을로 돌아와 그녀의 가게에서 집으로 가져갈 컵케이크를 샀다. 나다니엘이 자라는 동안 여자는 프랑스인 남편과 이혼을 했고 근근한 위자료를 받으며 나다니엘보다 일곱 살은 어린 두 아이를 키웠다. 여자는 나다니엘의 재색 눈을 좋아했다. 대개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은 나다니엘에게서 한 눈에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어머니의 흔적이었다. 여자는 한참이나 나다니엘의 눈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아이를 쓰다듬듯 나다니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다니엘은 희미하게 웃었다. 짧은 갈색머리 사이로 여자의 주름진 손가락 끝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왜 커데트 에어리어에 가고싶었는지 생각해봐 나단”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열아홉살이었어요. 적어도 군이 뭘 하는 곳인지 정확히 알진 못했고요. 난 그냥 하이디의 가게나 엄마가 월마트에 다녀오는 길이 안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보이스카웃 같은건 줄 알았어요 하이디. 난 지금은 한 번에 만명을 죽일 수 있는 전투기를 몰아요.”
“나단. 적어도 나는 네가 그 학교를 중간에 나오지 않은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 넌 열심히 노력했고, 우리 마을의 자랑이야. 알리사의 아들이라고 하면 누구나 칭찬할걸. 겨우 스무살에 낳은 아들이 이렇게 잘 자라준걸 알리사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지 아니 나단?”
“이번에 졸업한 파일럿 중에는 벌써 전쟁에 나가고 싶어서 좀이 쑤셔하는 애들도 있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의무 복무 기간이 남았지만 내가 군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이런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너희는 일벌처럼 살아야해. 아무 생각도 하지마. 무슨 생각이든 머릿속에 전쟁에 대한 환상 대신 들어차는 순간 너희는 전투기를 바다에 박아버리고 싶을걸! 멍청한 일벌처럼 살아 제군들! 너희는 신문을 읽고 뉴스를 봐야해! 네 폭격기가 어느 마을의 컵케이크 가게를 부숴버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죽고 싶어 질걸!
“나단. 나랑 알리사는 네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알아. 적어도 넌 우리 마을에서 가장 가슴 따듯한 사람 중에 하나야. 잊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고마워요 하이디”
나다니엘은 조금 더 웃었다. 따듯한 공기 때문에 붉게 달아오른 뺨이 밤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얼어붙었다. 하이디는 가게의 불을 끄고 쇼윈도를 정리했다. 그녀는 겨울에는 레모네이드를 팔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보다는 나다니엘이 만드는 레모네이드가 손님에게 더 인기 있었던 탓이었다. 나다니엘은 손에 여덟 개의 컵케이크가 든 하늘색 종이팩을 들고 거리를 나섰다. 위스콘신의 겨울은 추웠고, 밀워키 시내는 우유가 엎질러진 것처럼 눈으로 하얗게 들어찼다. 시내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 사람들은 그런 농담을 좋아했다.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낙농업대신 우유가공공장이나 치즈공장, 또는 그런 사무실로 일을 다녔다. 아버지가 다니던 공장에 아들이 다니고, 아들이 다니던 학교에 손자가 다녔다. 두 블럭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들이었다. 그 마을에서 떠나는 몇 안되는 사람 들 중에는 나다니엘도 있었다. 나다니엘이 커데트 에어리어에 입학하게 된 날에는 모두가 모여서 크리스마스 같은 만찬을 먹었고 알리사는 들떠있었다.
나다니엘은 그 풍경들을 좋아했다. 결국에는 모두에게 다시 나누어 주어야 할 만큼 식탁 위로 쌓인 치즈선물이나 하이디가 가져오는 컵케이크, 알란부인의 플럼 푸딩, 타피오카와 칠면조. 사람들은 소만큼이나 순진했고 눈이 오는 계절에는 더더욱 그랬다. 발목까지 털로 덮인 부츠를 신고 눈 사이를 헤치며 걷는 아이들의 모습이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작고 찢어지는 목소리와 코튼캔디 색으로 가득한 컵케이크 가게의 모습, 도로를 메운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의 알록달록한 불빛이나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다가 마주쳐 인사하는 모습 같은 것들. 하늘 위에서 보면 그 마을의 풍경은 작은 레고처럼 보였다.
나다니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마을에 데리고 오고 싶었던 여자를 떠올렸다. 나다니엘은 이전에 한 번도 그녀와 사적으로 말해본 적 없었다. 그녀는 그의 상관이었고, 미공군의 우수한 파일럿이었다. 짙은 금발을 뒤에서 하나로 올려 묶고 비행모를 쓴 여자는 위스콘신의 차가운 겨울만큼 새파란 눈으로 기체를 확인하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여자는 곧고 단련된 손으로 반듯하게 거수경례를 했다.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가렛이라고 부를 때면 나다니엘은 어깨를 움츠렸다 펴면서 대답했다. 나다니엘은 그녀가 신을 믿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 그녀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밀워키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여자는 충분히 어떤 상황에서도 이륙하는 전투기를 다룰 때처럼 정확하고 충직하게 해낼 것 같았다. 나다니엘은 여자가 부스스한 금발을 정돈하고 아이를 깨워 차에 태워 학교 가는 모습들을 상상했다. 오후면 아이를 차에 태워 데려오다가 하이디의 가게에서 컵케이크를 세 개쯤 사서 월마트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일주일에 한번쯤은 그 집으로 자신이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거실과 벽난로 위에는 가족사진이 놓여있고 티비 위에는 군에서 받아온 훈장들이 걸려있는 대개 그런 군인들의 집이었다. 아이는 아버지를 매일 보지 못하는 대신에 친구들에게 메달이나 뱃지를 자랑하고 이따금은 나다니엘이 비행기에 올라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나다니엘은 그녀를 보면서 알리사가 꾸린 것처럼 아주 약간은 덜 풍족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떠올렸다. 그녀와 영화를 보고 쇼윈도를 구경하는 대신에 나다니엘은 종종 그런 상상들을 했다. 겨우 나눠본 말이라고는 고작 ‘네 중사님’ 같은 대답뿐인 여자를 보면서. 여자는 나다니엘을, 아니 그들을 보고 ‘헤이 허니비들’하고 말했다. 그들의 코드네임이었다.
“나단, 병원가니?”
나다니엘은 교복을 입고 캐리어를 들고 있었다. 밀워키에서의 잠깐의 휴가는 곧 끝이 났다. 이제 커데트 에어리어로 돌아가면 그는 이라크나, 알래스카, 하와이, 미군이 있는 어딘가로 허니비들과 헤어져 뿔뿔이 흩어질 차례였다.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이거 가져가렴.”
하이디는 하늘색 종이 팩을 건넸다. 안에는 색색들이 컵케이크가 들어있었다. 캐롤이 좋아하겠네요. 하이디는 말 없이 웃었고 나다니엘은 교복을 추스르고 밀워키를 나섰다. 알리사가 공항까지 바래다주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있었다. 몇몇 창문들 뒤에서 인기척이 보였다. 작은 마을을 떠나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나다니엘은 마을을 떠난 젊은이 중에 하나였다. 비록 그의 집이 커데트 에어리어나 군에서 제공하는 아파트 정도에 불과하더라도, 나다니엘의 방과 앨범들이 알리사의 집에 고스란히 있더라도 그들은 일년의 대부분을 마을이 아닌 곳에서 보내는 젊은이를 신기하고 대견하게 여겼다. 잘 있어요 하이디.
“여자들은 작별할 때 선물이 필요한 법이니까.”
병원에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한 일은 그녀의 보기 좋은 금발을 짦은 단발로 잘라버리는 일이었다. 그들 입장에서 그것은 여자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관리하기 귀찮은 부속물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다니엘은 캐롤의 침대 옆에 컵케이크를 내려놓고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나다니엘이 그녀에게 경례하는 것을 싫어했다. 군에서도 그랬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을 싫어했다. 그녀를 동경했던 여러명의 여생도들이 병원을 찾았다가 괴팍하기 짝이 없는 홀대에 지쳐 두어번의 방문을 끝으로 다시는 그녀에게 걸음조차 하지 않았다. 나다니엘은 테이블 앞에 조용히 앉아 그녀가 서투른 솜씨로 왼손으로 컵케이크를 먹는 것을 지켜봤다. 목과 무릎 위의 냅킨에 민트색, 분홍색 크림이 묻을 때마다 그녀는 조용히 나다니엘의 눈치를 살피고 나다니엘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에 다시 포크를 집어들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녀와, 군사령부와, 병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아래에 있던 훈련생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만큼이나 자존심이 센 여자였고 파일럿이 왜 오른 팔을 잃어야했는지에 대해 누구에게도 설명하고 싶지 않아했다.
나다니엘은 그녀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자신의 눈치를 살필 때마다 침을 삼켰다. 그녀의 눈에는 보기 싫게 져버린 사람들 특유의 음습한 무언가가 남아있었다. 자존심과 자부심이 한번에 바닥에 떨어진 사람들 만이 가질 수 있는 절망과 고작 몇 해 전에 불과한 과거에 대한 집착 같은 것. 나다니엘은 가끔 그가 가져가는 케이크나 과자 같은 것들을 먹다가 냅킨 위에 잔뜩 음식을 흘리고 나다니엘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을 보면서 캐롤과 영화를 보고 쇼윈도를 구경하는 상상을 했다. 캐롤이 나다니엘의 눈치를 살필 때마다 나다니엘은 새삼스럽게 그녀가 여자였음을, 스물세살의 남자 앞에서 흉한 모습을 보기 싫어하는 여자였음을 깨달았다. 수치심으로 부끄러워하는 캐롤을 보면서 나다니엘은 그녀가 어지럽게 흩어놓은 것을 모른척 했다.
너희는 일벌처럼 살아야해. 아무 생각도 하지마. 무슨 생각이든 머릿속에 전쟁에 대한 환상 대신 들어차는 순간 너희는 전투기를 바다에 박아버리고 싶을걸! 멍청한 일벌처럼 살아 제군들! 자유 같은 건 개나 주라고 해! 난 내 두 팔의 자유를 잃어버렸어 멍청이들아! 전투기로 이라크를 박살내기도 전에 팔이 박살났다고!
나다니엘은 캐롤이 소리치던 모습을 떠올렸다. 허니비들은 그녀의 독기어린 파란 눈을 보다가 말없이 뒤로 물러났다. 사년 동안의 훈련동안 그들이 몰고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다른 것임을 모르는 일벌들은 없었다. 그들의 절반은 의무 복무에 묶여, 그들의 절반은 이제 와 새로 해야 하는 일을 찾지 못해서 그들이 자란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철과 쇠와 자유로 된 둥지였다.
“캐롤. 저 이제 안와요. 작별인사 하려고 왔어요.”
캐롤은 말없이 나다니엘을 바라봤다. 그들이 처음으로 그녀의 부상소식을 듣고 병원에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사관생도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가 그들에게 했던 유일한 말은 아직 빨갛게 물이 든 붕대를 붙잡고 소리쳤던 것뿐이었다. 혼자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그것이 전쟁터에서 팔을 잃고 악에 받쳐 소리지르는 옛 상관의 말이라면 더욱 그랬다.
“잘가 허니비”
캐롤은 한참이나 더 나다니엘을 바라봤다. 초점이 풀리고 진통제에 익숙해진 눈을 바라보면서 나다니엘은 조용히 웃었다.
“잘 있어요. 캐롤"
대개의 첫사랑은 시시하게 끝나는 법이었다. 비좁고 열악한 병실에서 후유증으로 고국에 돌아온 군인들이 뉴스나 드라마 따위를 틀어놓고 포커를 치거나 탁구를 했다. 몇몇의 간호사들이 나다니엘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고 그들은 나다니엘의 견장을 보고 그가 이제 드디어 졸업생이 되었음을 축하했다. 다리를 절고 팔을 다친 군인들은 이제 막 군인이 되는 미숙한 파일럿 앞에서 카드와 리모컨을 내려놓고 침묵을 지켰다. 이상한 엄숙 속에서 나다니엘은 구석에 놓아둔 캐리어와 외투를 들고 군병원을 나섰다.
사람이 죽는 건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야 애송이!
등 뒤에서 사포처럼 거친 목소리가 소리쳤다. 나다니엘은 택시를 잡아탔다. 대개의 첫사랑은 시시하게 끝나는 법이었다.
징예 위원회장은 비어있었다.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 서 주변을 돌아보던 나다니엘은 그제서야 테이블 위에 서류 한 장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다니엘 가렛 작전교육관 생도의 연방 특무부 특수 배치를 추천하고 징계 위원회를 소집 해제함. 책상에 걸터 앉아 복잡한 서류를 위에서 아래까지 천천히 읽어나가는 동안 남자는 나다니엘의 맞은편에 걸터앉았다.
“가렛 네 단점은 생각이 너무 많다는 거야. 군은 생각이 많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 대신 특무부에서는 쓸만할 것 같더군.”
나다니엘은 천천히 웃음기가 번지도록 웃었다. 색이 엷은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좌천 같은데요?”
“특무부는 군보다 위야. 굳이 따지자면 승진에 가까울 것 같은데.”
나다니엘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아 들고 조목조목 바라보던 남자는 다시 서류를 나다니엘의 손에 쥐어주며 웃었다. 갈색 머리가 제법 벗겨지기는 했으나 챙이 짧은 군모 아래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았다. 특무부에서는 명령 불이행하겠다고 대놓고 말하지 말게. 적어도 징계위원회보단 무서운게 열릴테니까.
“농담하시는거죠?”
“아니”
잘가게 가렛. 특무부가 자네에게 맞았으면 좋겠네. 옆집 아저씨 같은 얼굴로 웃어넘긴 대령은 군모를 고쳐 쓰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날씨는 좋았다. 창 밖에서 비친 빛이 천천히 회의실에 스며들었다. 나다니엘은 책상에 걸터앉아 서류를 두 번 접어 주머니 안에 넣었다. 명령을 이행했다면 여기 남아있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령의 사무실에서 나다니엘은 대답했다. 군은 아직 미숙한 파일럿이 관제탑 사령부보다 얼마나 더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믿나?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은 인정하네. 작전교육관으로서 얼마나 잘해주었는지도 알고 있지만 확률적으로는 군이 선택한 쪽이 동료들이 죽을 확률이 높은 작전이었다는 것은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불렀네.
군인이라고 해서 그 모든 것을 기껍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싸우라고 배웠지만, 미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 자유를 위한 일이거나 시민을 위한 일이 된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은 군인이었지만 군인이라고 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기꺼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총과 칼과 무기를 들고 맞섰지만 되도록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기를 바랐다. 커데트 에어리어의 호기로운 스물두어살들은 그들이 치러내는 것들이 정당한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거기에 의미가 있기를 바랬다. 민간인의 비린 피냄새와 전투기에 묻어있는 모래냄새 같은 것들 속에서 적어도 정당화 시킬 수 없는 것들에 무언가를 지키기라도 하는 명분이 있기를 바랬다.
예를 들면 알리사가 마트에서 돌아가는 길이 안전하기를 바란다거나, 하이디의 컵케이크 가게와 가게에서 컵케이크를 먹는 아이들이 안전하기를 바란다거나, 잭이 가꾸어놓은 정원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무탈하다거나 그런 것들이었다. 아무도 바라지 않는 독단적인 자유보다는 마루에게서 시민들을 지키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납득할 수 있었다. 작전명 DOXA. 억견이라고 불러도 괜찮았다. 정당화 할 수 없는 것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다니엘은 알았다. 살인이나 전쟁, 폭격 같은 것들. 필요한 것은 결국 명분이었다. 나라를 지킨다거나, 타국의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부자연스럽고 고집센 명분만 아니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명분이 정직할수록 좋았다. 비록 억견이더라도 그 정도의 명분이면 싸울만한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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