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eath of tree


1.
죽은 나무가 완전히 땅으로 돌아가는데는 그들이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1.
어린 묘목이 가렛 노부부의 앞마당에 심어졌을 때 나무는 아직 다섯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여전히 아이의 한 손안에 고스란히 들어오는 얇은 나무 밑동은 그것이 서너해살이 풀인 것처럼 여리고 부드러웠다. 바람이 부는 대로 나무는 가지와 함께 흔들렸다. 나다니엘은 그 나무와 함께 컸다. 병들지 않고 해가 지날 때마다 차례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다시 잎이 지는 것은 노부부가 나무를 돌보는 증거였다. 나다니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무와 같았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햇볕을 쬐고 고요할 만큼 조용히 숨을 쉬고 하늘을 바라봤다. 해를 향해 가지를 뻗는 것은 나무의 본능이었다. 해가 지날 때마다 나무기둥은 단단해졌다. 여리고 부드러운 새 가지처럼 보드라운 황갈빛의 기둥은 점점 짙은 고동색이 되었다. 그들은 함께 나이를 먹었고 뼈와 기둥 안에 나이테를 새겼다. 한해동안 햇볕을 쬐고 물을 마시고 숨을 쉰 증거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무는 단단한 땅에 뿌리를 내렸다. 가지를 뻗는 것 보다 먼저 나무가 하는 일이었다. 나다니엘은 단단하게 건강하게 자랐고 거친 위스콘신의 바람이 불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나다니엘의 손은 잘 뻗은 가지처럼 천천히 커졌지만 스무해가 지났을 때 그는 자신의 두 손으로도 나무의 둥치를 완전히 감싸지 못했다. 나무의 뿌리는 그의 높이만큼 아래로 깊게 뻗어나갔고 겨울의 돌풍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무는 이웃 개의 영역이었고 청솔모의 놀이터였다. 나다니엘의 책가방을 걸어놓는 걸이이기도 했다가 노부인의 뜨개질 동무가 되기도 했다. 노부인은 나다니엘을 보듯 나무를 바라보았고 나무를 바라보듯 나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나무는 움직이지 않았고 나다니엘은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1.
나다니엘은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를 지켰다. 그 모든 것들은 말로 설명하거나 정의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고 나다니엘은 그런 것을 표현하고 머리로 이해하는 법에 대해 한 번도 배운 적 없었다. 모든 것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본능으로부터 부여받은 것들이었다. 나다니엘이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의 뼈가 단단하게 굳고 크기를 불려나가고 근육아 뼈를 감싸고 피부 아래를 단단하게 메워나간 것처럼. 그는 그런 것들에 대해 배운 적 없었다. 그것은 아이가 자라고 나무가 가지를 뻗는 것처럼 이루어지는 것들이었다.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알아 온 것과 같이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떠나는 것에 대해서 몰랐다. 아무도 그런 것에 대해 알려주거나 설명하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가 그런것을 말해주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들의 다리는 나무의 뿌리처럼 단단하게 땅에 박혀있었고 땅은 많은 것들을 지탱했다. 집의 주축과 수많은 도로와 교량과 빌딩의 둥치와 학교와 숲과 산과 들.

1.
나무는 많은 것들을 지탱했다. 그것이 살아있는 동안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삶을 지탱했다.

1.
거울 속의 남자는 배에 붉은 흉터가 남아있었다. 아물기 시작하는 상처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상처는 간지러웠고 나다니엘은 붕대 위에서 흉터를 더듬었다. 그는 마루의 눈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루의 눈은 바다처럼 파랬고 물처럼 검었다. 나다니엘은 한 번도 죽을 고비를 넘겨본 적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사람이 자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크고 단단한 어깨와 등을 만들었고 그를 가르친 수 많은 책들과 교본들과 운동들은 그것을 좀 더 수월하고 편안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준 것뿐이었다. 그는 주변을 메운 많은 것들이 각자의 갈래로 갈라질 때에도 천천히 앞을 보고 걸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하라고 머릿속에 새겨져있는 말과 같았다. 그의 동료들은 대장이 되고 싶었고, 군인이 되고 싶었고, 집에서 떠나고 싶었고, 비행기를 타고 싶었고, 전쟁에 나가고 싶었다. 그들은 갈라진 갈림길을 걸어온 사람들이었다. 갈림길에서 늘 선택에 부딪혀 비행기를 타거나 땅에 머물러야했고 전쟁에 나가거나 미국에 머물러야했다. 대장이 되거나 졸개로 남아있어야 했고 집을 떠났기 때문에 군에 있어야했다. 나다니엘은 그 수많은 동료들 가운데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타고난 본능에 따라 그 자리에 서있었다. 나무와 같았다. 수많은 것들이 터를 잡았다가 떠났다. 더 좋은 나무를 찾아든 들짐승이 더 좋은 초목을 찾아 떠났다가 좋은 수액을 위해 남겨둔 유충은 좋은 침대를 위해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가운데서 나다니엘은 나무처럼 서있었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서 거기에 있었다. 땅이 많은 것들을 지탱하는 동안 거친 비바람에 땅이 쓸려나가지 않도록, 초목이 쓸려나가지 않도록 단단하게 토양을 붙잡고 서있는 나무가 되기로 그는 태어나기 전에 결정했다.

1.
거울 속의 남자의 배에는 붉은 흉터가 남아있었다. 나다니엘은 그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야했다. 

1.
아물기 시작하는 상처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상처는 간지러웠다. 나다니엘은 오랫동안 거울을 바라봤다. 하루에 한번은 그랬다. 거울 앞에 서서 그는 붉은 흉터의 상징성에 대해 생각했다. 도미닉의 치료는 상처를 아물게 했지만 상처의 흉터가 사라지게하지는 못했다. 그의 허리에는 칼날의 길이만큼의 붉은 흉터 세 개가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배 위에는 마루가 남긴 서명이 남았다. VALiUM. 나다니엘은 오랫동안 진통제의 이름을 생각했다. 진정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오랫동안 그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난 후에 그것이 어쩌면 마루의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 같은 이름을 가진 마루는 아주 적었다. 발륨. 나다니엘은 그가 자신에게 남긴 것의 의미와 자신이 그것을 가지게 된 의미를 생각했다. 마루의 눈은 푸른 색이었고 나다니엘은 파란 눈을 바라보면서 바다 밑으로 꺼져가는 감각에 빠졌다. 다시 죽게 된다면, 다시 죽음의 문턱을 밟으면 그는 다시 한 번 마루의 파란 눈을 떠올리게 될 것이었다. 마루가 그에게 가져다준 것은 죽어가는 생물이 느끼는 감각이었다. 마루는 그의 존재를 자신의 위에 남겼고 나다니엘은 그가 남긴 존재의 자욱을 바라보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들은 완전히 상반된 것들이었다. 나다니엘은 그가 남긴 서명 위에서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가 남긴 서명은 나다니엘에게 그의 삶과, 자신의 선택과, 마지막이 될 것이었다.

1.
막스. 만약에 안젤라와 내가 위험해진다면,

안젤라를 구해. 

1.
품 안에서 어깨를 들썩이는 막스의 갈색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나다니엘은 다른 생각을 했다. 

1.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운전석에 앉아있는 수백명의 가장들. 피로하고 지친 얼굴과 지갑 안에 끼워놓은 가족사진과 그를 반겨줄 작은 딸과 아들과 개. 모형처럼 세모와 네모로 이루어진 파랗고 붉고 초록색을 띈 격자무늬의 지붕과 천사모양의 도어벨과 현관문 안쪽의 얇은 레이스로 된 반투명한 흰색 커튼. 현관 앞의 붉은 깔개와 아이방으로 올라가는 하얗고 좁은 계단. 개가 배를 깔고 누워있는 카펫과 가운데자리가 푹 꺼진 헝겊 소파와 텔레비전. 텔레비전 위의 가족사진, 결혼식의 사진,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의 사진, 아이의 첫영성체 사진, 개를 데려온 날의 사진과 노부모의 생일 사진, 아이의 학교 축제와, 할로윈, 죽은 아버지와, 아직 살아있는 어머니가 뜬 무릎 가리개. 아직 치우지 못한 일월의 크리스마스 트리, 붉고 반짝이는 산타와 천사모양의 오나먼트, 노란별과, 전구들, 벽장식용의 벽난로, 남편이 풀칠한 벽지. 창고안의 오래되고 낡은 아기 유모차, 아기의 신발, 개가 물어뜯은 아내의 구두와, 아이들의 운동화. 자전거와 보호모, 무릎 보호대와 보관용 철쇠. 범퍼가 찌그러진 남색 구모델의 자가용과, 여자의 핸드백, 학부모 참관일. 식탁위의 치즈와 냉장고 안의 피넛버터와 구운지 삼일 된 쿠키와 슈, 타피오카. 

1.
사람이 사는 데는 수많은 쓸모없는 것들이 필요했다. 많은 것들이 집 안에 쌓였다가 버려졌다가 다시 자리를 메웠다. 수 만가지의 물건들. 수십개의 연필과 노트들과 영수증들. 후라이 팬과 블랜딩 기계 칼과 도마와 그릇과 접시와 오븐, 마이크로 오븐, 냉장고, 거품기와 뒤집개. 오리와 칫솔과 버블과 치약, 스펀지, 타일, 샤워커튼과 욕조. 카페트와 소파와 티비와 침대와 커튼과 벽난로와 사진들로. 수만가지의 것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지붕들이 불어날 때마다 그는 경외심을 느꼈다. 삶이 하나에서 둘이 될 때, 둘에서 넷이 되었다가 넷이 여덟이 되어 하나의 도시 안에 수만개의 삶으로 이루어질 때 그는 현기증을 느꼈다. 독한 감기약을 먹고 잠이 들이 이전의 감각처럼 온 몸의 감각들이 혈관을 타고 머리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1.
품 안에서 어깨를 들썩이는 막스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나다니엘은 다른 생각을 했다. 수만가지의 잡동사니로 이루어진 집과 수만가지의 집이 모인 도시와 수만개의 도시로 이루어진 융단을 위해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나다니엘 가렛. 어쩌면 죽을 준비를 쉽게 끝마쳐 버린 나다니엘 가렛. 그가 선택한 것들이 녹아든 상처를 얻고 나서 비로소 태어나서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을 완전히 이해한 나다니엘 가렛. 그는 자신이 선택한 것들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모든 것들은 말로 설명하거나 정의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고 다니엘은 그런 것을 표현하고 머리로 이해하는 법에 대해 한 번도 그 누구에게서도 배운 적 없었다. 그것들은 그의 뼈와 혈관을 통해 그의 머리에 도달했다. 그의 피가 돌도록 심장이 피를 펌프질해서 머리로 올려 보냈다. 나다니엘은 자신의 각오에 대해서 막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쉽게 울었다. 안젤라를 구해. 나다니엘이 생각하는 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막스는 다시 울음을 터트릴 것같았다. 이제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말 대신에 손으로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젠가 그에게 무언가가 남아있기를 바랬다. 어쩌면 자신이 그에게 남아있지 않더라도. 

1.
나는 괜찮아.

1. 
나무는 베는 대로 넘어졌고 벼락을 맞는 대로 불탔다. 나다니엘의 나무는 여전히 가렛 노부부의 정원에 있었다. 가장 높은 가지는 나다니엘보다 훨씬 높이에 있었고 훨씬 더 볕이 잘 드는 곳에 있었다. 나무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둥치는 점점 두터워졌다. 뿌리의 시발점이 땅 위로 굵은 뱀의 몸통처럼 드러났다. 나무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나다니엘이 둥치를 두드리면 이파리가 떨어지고 가렛 노부부가 그 나무를 베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나무는 언제든 둥치만 남기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나무는 어디에도 가지 않았고 무엇도 거스르지 않았다. 그것은 필요하면 그 자리에 심어졌고 필요하면 그늘이 되었다가 필요하면 잘리거나 베이거나 사라지거나 죽을 수 있었다. 나다니엘은 머릿속에서 나무의 단단하고 딱딱한 껍질을 총으로 단련된 단단한 손바닥으로 쓸었다. 나다니엘은 그가 타고난 것을 거스르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는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이제 막 깨닫게 된 것 뿐이었다. 

1.
죽은 나무는 그 모든 것들의 집이 되었다. 나무는 그가 살아온 수백년의 세월처럼 죽은 뒤의 백년여동안도 살아온 세월처럼 서있었다. 그는 딱정벌레와 너구리의 집이 되었고 밑동은 곰의 굴이, 나무옹이는 딱따구리의 집이 되었다. 밑동이 이끼로 뒤덮이기도 전에 날아온 포자씨앗이 남은 영양분을 빨아들여 버섯이 되고 고사리가 자랐다. 이끼가 밑동을 푸르스름하게 뒤덮은 뒤에는 이파리가 하나도 돋지 않는 가지 위에 새들이 앉고 수많은 곤충들이 이내 자신의 대를 이어줄 유충들을 죽은 속살 안에 숨겨놓고 떠나갔다. 수백년 동안 깊은 대지와 땅을 뚫고 자란 나무의 뿌리와 잔가지들이 그가 죽은 뒤에도 흙을 단단하게 뒤엎고 그물처럼 잡았고 흙은 나무의 뿌리 사이에 단단히 잡혀 폭우가 내린 뒤에도 수많은 씨앗을 품은 채 떠내려가지 않아도 되었다. 숲의 수많은 동물들의 움직임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곤충들의 먹이로 밑동이 갉혀 쓰러진 나무는 곧 뱀과 오소리와 지네의 터가 되어갔다. 나무 속은 점차 비었고 밑동을 푸르스름하게 덮은 이끼는 곧 나무 전체를 덮었다. 그는 쓰러진 뒤에는 점차 땅을 위한 좋은 영양분이 되었다. 수많은 동물들이 그의 빈 속 안에 터를 잡았다가 떠나갔다. 푸르스름한 이끼가 그를 숲과 같은 색으로 만들기 시작했을 때 그는 그제서야 겨우 생물의 흔적을 남기듯 천천히 썩어 들어갔다. 나무가 썩는 냄새는 비에 젖은 나무의 속살의 내음처럼, 물에 젖은 연필 내피의 냄새처럼 연하고 풍부했다. 쥐며느리와 곰팡이 딱정벌레와 노래기. 나무의 시체 위로 무덤처럼 소복히 쌓이는 낙엽이 습윤한 물기를 머금고 낙엽 사이사이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유충이 움틀거리면 나무도 흙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땅으로 돌아가는데는 그들이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1.
죽어서 모든 것들의 집이 되는 삶이라면 그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1.
밑으로 꺼질수록 검어지는 바다를 상상하면서 그는 바다 한가운데 가라앉은 나무의 기둥처럼 가라앉은 거대한 비행기와 비행기 안에서 천천히 하얀 뼈가 되어가는 자신을 생각했다. 마루의 눈은 바다처럼 파랬고 물처럼 검었다. 물고기의 작은 입질에 하나하나 살점이 뜯겨나가 하얀 뼈가 남게 될 때면 비행기는 푸르스름한 이끼와 해조류로 뒤덮여 작은 정원이 될 것이다. 이따금 이는 물의 일렁임에 하얗게 남은 뼈가 천천히 물결치듯 움직이고, 그의 가죽으로 된 비행모와 옷가지들은 천천히 닳아 없어지게 될 터였다. 

1.
나다니엘의 유해는 오랫동안 바닷 속에 가라앉아 있을 것이었다. 비행기는 아주 작고 이끼와 풀로 뒤덮여 누군가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나다니엘은 군번줄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겨우 하얀 페인트로 도색된 비행기의 번호를 해조류를 살살 긁어내 확인 한 뒤에야 그 비행기가 나다니엘 가렛의 것이고 언젠가 없어졌다가 발견되었으며 비행기는 그와 함께 사라졌기 때문에 닳아 없어진 가죽 비행모를 쓰고 있는 하얀 유골이 그 임을 추측할 것이었다. 그의 유해는 영영 가라앉은 채로 다시는 발견되지 않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어쩌면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지도 몰랐다. 비행기는 먼지가 되었다가 불씨가 되었다가 매캐한 공기가 되었다. 기름이 타들어가는 냄새. 가죽과 뼈와 비행기가 모두 남지 않았을 때 아무것도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없게 될지도 몰랐다. 그의 이름은 파란 눈을 가진 마루의 뒷주머니에서 쩔그렁거리고 있거나, 그 마루도 언젠가 사라질지도 몰랐다. 구름 위를 넘어서면 하늘과 바다의 구분선은 없어졌다. 하늘을 푸르렀고 바다도 그랬다. 지평선과 수평선을 구분할 수 있는 지표들이 모두 없어졌을 때 그들을 바다가 아니라 하늘에서 죽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복잡한 계기판이었다. 

1.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운전석에 앉아있는 수백명의 가장들. 피로하고 지친 얼굴과 지갑 안에 끼워놓은 가족사진과 그를 반겨줄 작은 딸과 아들과 개. 모형처럼 세모와 네모로 이루어진 파랗고 붉고 초록색을 띈 격자무늬의 지붕과 천사모양의 도어벨과 현관문 안쪽의 얇은 레이스로 된 반투명한 흰색 커튼. 현관 앞의 붉은 깔개와 아이방으로 올라가는 하얗고 좁은 계단. 개가 배를 깔고 누워있는 카펫과 가운데자리가 푹 꺼진 헝겊 소파와 텔레비전. 텔레비전 위의 가족사진, 결혼식의 사진,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의 사진, 아이의 첫영성체 사진, 개를 데려온 날의 사진과 노부모의 생일 사진, 아이의 학교 축제와, 할로윈, 죽은 아버지와, 아직 살아있는 어머니가 뜬 무릎 가리개. 아직 치우지 못한 일월의 크리스마스 트리, 붉고 반짝이는 산타와 천사모양의 오나먼트, 노란별과, 전구들, 벽장식용의 벽난로, 남편이 풀칠한 벽지. 창고안의 오래되고 낡은 아기 유모차, 아기의 신발, 개가 물어뜯은 아내의 구두와, 아이들의 운동화. 자전거와 보호모, 무릎 보호대와 보관용 철쇠. 범퍼가 찌그러진 남색 구모델의 자가용과, 여자의 핸드백, 학부모 참관일. 식탁위의 치즈와 냉장고 안의 피넛버터와 구운지 삼일 된 쿠키와 슈, 타피오카. 

1.
죽어서 모든 것들의 삶이 되는 죽음이라면 그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1.
살아온 삶만큼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많은 삶을 지탱할 수 있다면 그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제목은 <나무의 죽음>. 
mission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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