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사냥

“사생활이 엉망이군. 로랑”


로랑 크로잔은 평소 그가 여가를 즐기는 모습 그대로의 차림이었다. 가지런히 올려 높이 묶은 긴 재색머리는 말을 달리는 사이 바람에 날렸는지 단정하기보다는 여기저기 흩어진 채였고, 남성용 블라우스는 단추가 두어 개 풀어져있었다. 로랑의 바지 주머니에 하얀 커프스 자락이 비어져 나온 것으로 보아서는 처음부터 커프스를 두고 갔던 것이 아니라 말을 달리던 도중에 풀어낸 것일 것이다. 말은 쉽게 명마라고 보기엔 어려운 종류의 털색을 한 것이었으나 시올은 로랑이 그 말을 꽤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종마에게서 얻은 말 치고는 잿빛에 가까운 어둑한 흰색 털에 드문드문 작은 검은 점들이 말을 지저분하게 보이게 했다. 게다가 명마도 아닌 주제에 보이는 외모만큼 제법 까탈스럽게 굴었으나, 로랑은 그 점을 마음에 들어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을 높이 산 모양이었다. 사냥에 나갈 때는 제대로 말을 듣는 갈색 말을 데리고 나갔지만 단순히 승마를 할 때는 그 제멋대로인 말을 끌고나갔다. 과연 저런 놈은 자기 같은 족속을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시올은 로랑을 보고 혀를 찼으나 그의 친구는 예상대로 눈도 깜짝하지 않으면서 가볍게 웃고 말았다.


“엉망이라고 할 만한 짓을 한건 없는 것 같은데.”

“요즘 계속 사냥에 승마 뿐 이잖아.”

“오늘 밤에 미술품 경매가 있지. 겨우 그 나이에 머리가 쓸모없어졌나 시올?”

“로랑.”


로랑은 저택의 입구에 기대어 있는 시올을 보며 넌지시 웃고 이내 말에서 가뿐히 몸을 내렸다. 저렇게 저택 입구에 기대어 서있었다면 자신이 돌아오기 전까지 하인들이 대여섯 번은 응접실에 돌아가 기다리지 않으시겠냐고 물었을 것이다. 확실히 언제 밖에서 돌아올지 모르는 자신을 응접실에 앉아 기다리느니 저택 입구에서 로랑을 잡아채는 쪽이 훨씬 현명한 선택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손님은 저렇게 번거로운 짓을 하면서까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과연 로랑의 친구답게 고집스럽고 귀엽지 않은 면이 있었다. 로랑이 말을 끌고 오는 것을 보던 하인이 말의 고삐를 건네어 받아갔고 로랑은 승마 모자를 벗으며 시올을 바라봤다.  


“너 요즘 검은 제대로 쥐고 있나?”

“네가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는데.”

“닥치고 사람 말 좀 들어 로랑”


닥치라는 말에 결국 로랑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집만 세고 대범함은 없는 줄 알았는데 자신과 사귄지 오래되더니 사람이 제법이 되었다. 로랑은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커프스를 꺼내어 이마를 훔쳐내고 입고 있던 조끼를 벗었다. 로랑을 안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쓸데없이 저택 입구에 서서 볕을 받으며 로랑을 기다렸을 것이다. 로랑은 말을 끌고 나가면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서야 돌아왔고, 돌아온 뒤에도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는데 시간이 걸렸다. 로랑은 응접실로 들어가자마자 멋대로 시올을 앉게 내버려 두고는 응접실의 창의 커튼을 모두 걷고 창을 열었다. 어깨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부분의 블라우스가 땀에 젖어 몸에 달라붙어있었다.


“요즘 너희 집안 소문이 흉흉하던데.”

“크로잔이? 왜?”


로랑은 값비싼 패브릭으로 마감을 한 소파 위에 등을 곧게 세운 자세로 앉아있는 시올을 돌아보며 미간을 지푸렸다.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허리께 밖에 오지 않는 창틀이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시올을 바라보는 동안 메이드가 시올 몫의 차만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나갔다. 저택의 모든 것들이 로랑의 통제 아래에서 로랑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고용인들은 로랑이 승마를 끝낸 뒤의 저런 차림으로는 차에 입도 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특히 시올 처럼 애써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사람의 앞에서라면 더더욱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 직접적으로 자신 몫의 차를 내오지 말라고 지시한 것은 로랑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에 맞추어 고용인들이 로랑의 지시 없이도 로랑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그는 원래부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고, 거리낌 없는 것과 거리끼는 것 사이에도 분명한 선을 두었다. 


“소르디에 가주를 두고 노하임이 한마디 한 모양인데, 네 형님께서 가주를 닮아 그런 것 아니냐고 한마디 하신 것 같더군.”

“아, 그 창녀랑 책벌레 얘기 말인가?”


노하임이 책벌레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고, 소르디에가가 로티아 덕에 승승장구 한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귀족들의 뒷소문이라는게 깨끗할리 만무한 일이고 로티아를 보고 더러 창녀라고 하는 소문이야 굳이 로티아가 공신 가문의 싹을 잘라버리려고 이를 갈기 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독사의 황비라고 불리는 만큼 자신의 뒷이야기에 대해서는 눈도 꿈쩍안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냥 두고 보기에는 가소로운 일이었다. 황제가 여자에게 넋이나가 멍청해졌다고 해도 그간 가문이 뿌리를 내린 세월만큼 깊이가 다른 법이었다. 로랑은 소매의 커프스 단추를 풀러 소매를 걷으면서 시올을 보고 웃었다. 고집 세고 귀족의 뒷이야기에 관심 없는 시올 라작이 자신에게 와 직접 말을 전할 정도면 자신이 알아두어야 할 이야기인 것은 틀림없다. 


“알고 있었나?”

“거기 까지는. 그래서?”

“틸루드 노하임이 거기에 대고 그건 크로잔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했다더군. 그 일 있고 얼마 안되어 소문이 도는 모양이고.”

“뭐라던가?”

“짐승 새끼들이 아랫도리 간수 못하고 여기저기 놀리고 다닌다고 말이야. 사자도 결국 축생이라던가 하는 소문이 들리더군.”

“노하임 짓이군.”

“소르디에 짓일지도 모르지.”


시올은 테이블에 놓인 잔을 비우고 마들렌을 베어 물었다. 말하려고 했던 용건은 끝났다는 의미였다. 마들렌을 다 먹고 나면 자리를 뜰 것 같은 친우를 바라보다가 로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 만찬과 그 후에 있을 경매, 그리고 그 뒤까지 이어질 사교 모임을 생각하면 예의상의 옷차림은 갖추어야했다.


“저녁까지 있다가.”

“관심 없는 거 알잖아.”

“만찬 뒤에 경매할거야. 그 뒤에 네가 좋아하는 남작 영애도 올거고.”


로랑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웃다가 응접실에 시올을 남겨두고 문을 열었다. 


“내가 후원하는 작가가 그린 그림에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 잘 봐둬. 저녁까지 있을 공간을 준비하라고 일러두지.”


좋은 이야기를 해줬으니 하는 말이야. 문이 닫히기 전에 로랑이 흘린 말에 시올은 이미 닫힌 문을 돌아보았다. 평소처럼 그는 이번에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랑 크로잔이 좋은 의미로 즐기고 있는지는 불확실 했으나.






로랑 크로잔의 저택에는 하인들이 많았다. 실제적으로 로랑의 개인 저택에 살고 있는 주인이 로랑 하나인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부엌 메이드와 풋맨의 수 모두 지나치게 많았다. 로랑은 개인적인 식사이외에도 이따금 이와 같은 경매와 사교 모임을 열었고, 만찬을 열 때마다 형제들의 집에서 메이드와 풋맨을 빌려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결국 고용인의 숫자 자체를 늘리기로 했다. 대신 그는 큰 사냥과 만찬이 있을 때면 다른 귀족들에게 하인들을 빌려주는 것으로 노는 손들을 밖으로 돌렸다. 해가 지고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하자 옷을 갖추어 입은 풋맨들이 시간에 맞추어 만찬에 오는 손님을 맞기 위해서 저택의 입구에 서있었고 아래층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로랑의 개인실 안쪽까지 소곤소곤 들려왔다. 목재로 된 집안의 소리는 아무리 조심하도록 일러도 벽을 타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 법이었다. 만찬에 초대하지 않은 상인과, 여하의 예술가들도 경매에는 초대되었고 초대객의 손님이라면 얼마든지 함께 집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로랑은 여전히 젊은 사람답게 자유로웠고, 제멋대로였으며 그런 점은 그가 변덕스럽게 일을 벌이는 데에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로랑이 잿빛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겨 정돈하고 크로잔을 떠올리게 하는 남색 리본으로 묶고 나타났을 때 시올은 서재 한켠에 앉아 새로 들여온 고미술서를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만찬 시간일세 시올. 시올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아쉬운 듯 눈길을 준 뒤에 덮었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책을 구하는 건가 로Lau.”

시올 라작은 아쉬운 것이 있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오래된 로랑의 애칭으로 로랑을 불렀다. 변방 귀족의 아들인 시올과 로랑의 사이에는 접점이랄 것이 없어보였고, 특히나 예술에 대해서는 깊은 조예보다는 흥미와 변덕으로 시장성을 간파하는 로랑은 클렘버리의 열렬한 팬인 시올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보였지만 둘은 아주 잘 지냈다. 그렇게 말해도 그 책은 내주지 않을 거야. 로랑은 단호하게 말하고 서재의 문을 열었다. 이제 곧 만찬이었다.

  

만찬에는 원래 초대된 귀족들의 자리 외에도 로랑이 뒤늦게 이른 시올의 자리가 마련되어있었고 만찬은 야채와 고기를 삶아 걸쭉하게 끓인 퓌레부터 시작해서 그의 집사가 직접 고르고 걸러 내린 와인, 그의 부엌 메이드가 가장 잘 만드는 잉글리시 푸딩과 사과 케이크로 끝을 맺었다. 풋맨들은 저녁식사를 할 틈 없이 만찬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는 손님을 경매장으로 꾸며낸 살롱으로 안내하는데 바빴고 로랑은 만찬이 끝나자 후희를 즐길 여유 없이 자리를 일어났다. 살롱 뒤편에 마련된 방 안에서 아름답고 독특하고 흥미로운 것들이 붉은 벨벳 아래에 조심스레 감싸여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번 째 그림이야 시올. 잘 봐두도록 해.”


로랑은 살롱의 벽에 기대어 섰다. 살롱은 잔잔한 꽃무늬가 새겨진 패브릭으로 벽을 바르고, 밝은 초로 샹들리에를 밝혔다. 간간히 등장하는 보석이나 장신구를 보기 위해 참석한 몇몇의 부인들과 영애들을 빼면 고가의, 그리고 귀족적인 취향의 수집품은 대개 남성들의 몫이었다. 귀족이든, 상인이든, 단순한 졸부임에 상관 없이 또는 단순한 미적 취향이냐 사적인 뽐내기를 위함인가에도 상관없었다. 경매품은 대개 각자의 취향에 맞추어 돌아갔고 돈은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여전히 돈이 남아 도시는 모양이군요.”

“안목이 남아 돌아서 말입니다.”


가시가 선 말에도 로랑은 그저 유쾌하게 웃어보였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도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초대객의 명단에는 없었으니 아마 초대객과 함께 들어온 손님일 것이고, 초대하지 않은 이유는 로랑이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초대한 기억이 없는 것 같군요.”

“초대하지 않아도 들어올 수 있는 게 당신 유일한 장점이지 않습니까?”

“아아. 확실히.”


  헐뜯는 말에도 아랑곳 않고 여유롭게 웃으며 로랑은 네 번째 조각상이 팔려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비너스를 닮은 조각 위로 덮어놓은 벨벳을 벗겨내는 순간 몸에 살집이 들어찬 졸부하나가 번쩍 손을 들어 값을 불렀고 몇 번의 값이 오르기도 전에 조각상은 그의 것이 되었다.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꽤 괜찮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가 낸 값만큼 값을 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섯 번 째 그림이 벨벳을 벗는 순간 친우의 등이 긴장하는 것을 바라보던 로랑은 고개를 돌렸다. 소르디에 기사단에 적을 둔 말단 귀족이었다. 


“마음에 둔 경매품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요즘 새끼 사자 몰이가 유행한대서 말입니다.”


“저런, 사냥을 하시려면 더 일찍 오셨어야 할텐데요.”


로랑 크로잔을 바라보던 기사의 얼굴이 구겨졌다. 노골적인 대화를 돌려 피하면서도 로랑은 기분 나쁜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기사의 사복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한 눈에 훑어보곤 그의 재정 상태를 어중간히 파악하곤 입에 담배를 물었다. 영애가 값을 올리는 동안 시올이 지지 않고 물건의 가격을 올리고 있었다.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남작 영애는 시올의 등을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었으나, 동행한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고작 그런 그림에 지나친 값을 매기는 것은 아닌지 그녀를 타이르고 있었다. 손 놓고 있어도 시올 라작이 그 그림을 그녀에게 안겨다 줄 것을 모르는 동안은 로랑 과 그림의 작가만이 유일하게 이 경매를 즐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자 사냥을 하시려면 사자 굴에 들어가셨어야지요. 아니면 기회를 틈 타 다리 저는 사자라도 있는지 보러오셨습니까.”


사자 사냥을 하고 싶었으면 사자 굴에 들어 갔어야 했다. 아무 맥락 없이 로랑의 개인적인 만찬과 모임을 틈타 단순히 크로잔을 헐뜯고 싶은 것뿐이었다면 지난번 만남에서 로랑이 그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처사를 베풀었거나, 로티아의 힘만 믿고 공신의 위치를 망각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니면 둘 모두 재어볼만한 머리가 없었거나. 로랑의 사교 모임은 기본적으로 로랑이 좋아하는 또는 로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도 아니면 적어도 취향과 이해관계 상에서는 우호적인 사이였다. 아무리 명단에 없는 손님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호의 없이 젊은 사자 굴에 기어들어오는 바보 같은 이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소르디에건 노하임이건 개인적인 사이에서는 딱히 가문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 로랑에게는 저런 흉물스런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은 달리 싫어할 것도 없는 대상이었다. 가문끼리의 신경전이야 오래된 일이었고 로랑에게도 별달리 생소한 일도 아니었으나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특히나 로랑처럼 제 가문과 가족에게 끔찍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는 로랑의 손님들 앞에서 흥밋거리라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었으나 로랑의 손님 중 로랑을 눈 앞에 놓고도 악질적인 풍문에 웃어줄 이는 없었다.

말단 귀족으로 귀족의 자부심은 있되 등에 날개를 달았다고 착각했으니 하늘 모르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 듯한데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 분수를 알아야했다. 작위가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었고, 날개를 달아도 밀랍이 녹는 지점을 모르면 어디서든 추락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저런 듬성듬성 엮인 모조 날개는 하물며 논할 가치도 없었다. 



  “하기야 하이에나처럼 쏘다니는게 창녀보단 낫군요. 안 그렇습니까?”


막 그림을 낙찰 받은 시올이 엷은 색의 눈동자를 빛내며 웃고 있는 로랑을 보고 멈추어 섰다. 로랑은 몹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로랑 크로잔이 특유의 여유로움으로 갈등을 즐긴다는 것은 이런 것을 의미했다. 확실히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좀 더 건전한 경쟁이었다면 로랑은 평소처럼 호탕한 지방 유지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을 것이다. 낯선 초대객이 로랑의 심기를 건드렸음이 분명했다. 로랑은 곁눈질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경매를 훑었다. 살롱의 안쪽에 있는 소파에는 귀부인들이 앉아 보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원하던 물건을 손에 넣은 남성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이나 문에 등을 기대고 각기 사교 활동으로 이곳에 온 목적을 전환하고 있었다. 방에 있는 사람 중의 절반쯤은 로랑의 사냥 동료이기도 했다.


“들쑤시고 다닐 때에는 당신이 찌르고 있는 것이 지푸라기인지 사자 꼬리인지 정도는 알고 다니시는게 좋을 겁니다.”


로랑은 하인에게 손짓을 하며 자리를 떴다. 사자의 앞마당에 와서 사자에게 겁을 주려고 한 꼴이니 로랑이 저렇게 불유쾌하고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웃으며 자리를 뜨는 것도 이해는 갔다. 시올은 로랑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긴 소파 곁에 서서 하인에게서 초대객의 명단을 받아드는 로랑을 관찰했다. 그는 소르디에와 안면식이 있을 손님을 셋으로 추리고, 그 중에서도 말단 귀족과 연이 닿았을 만한 성미가 유순하고 호기심 많은 귀부인 하나로 다시 대상을 좁혔다. 금발의 하인의 로랑에게 알았다고 대꾸하고는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명단을 다시 덮고 살롱으로 돌아갔다. 아마 지목된 귀부인에게 다시는 저 불쾌한 기사를 데리고 오지 못하도록 언질을 주려고 돌아갔으리라.


“계집 하나 때문에 귀족들 뒷소문이 바닥까지 떨어지는군.”

“누구를 말하는 건가?”

“대사.”


“입조심 하게 로랑.”


로랑은 눈을 감고 웃고 있었다. 살롱의 문간 너머에서 로랑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소파에 길게 몸을 뉘이고 다리를 꼰 채로 누워 있다가 시올의 말에 눈동자를 가늘게 좁히며 눈을 떴다. 연신 웃느라 지칠법도 한데도 로랑은 결국 끝까지 웃는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그 웃는 얼굴이 정말로 유쾌해졌다가 불쾌한 것의 표현이었다가 다시 편안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을 시올이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겹도록 로랑의 웃는 얼굴을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림은 남작 영애가 더 애태우기 전에 가져다주게. 너한테 원망을 품기 전이 나을걸.”


자는 것처럼 한동안 조용히 오르내리던 로랑이 느리게 눈을 뜨며 일어났다. 하인이 그의 흐트러진 커프스를 정돈하는 동안 집사가 다가와 흐트러진 머리칼을 풀러 다시금 정갈하게 빗어 남색 리본으로 하나로 묶었다. 오래전 그의 세련될 만큼 심플한 남색 리본이 그의 가문을 상징하는 색이기 때문을 알았을 때, 시올은 혀를 내둘렀다. 그의 가문에 대한 사랑은 로랑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시올의 눈에도 의외라고 할 만큼 깊었고 그것이 전혀 의외성을 갖추지 않게 된 것은 시올이 그와 충분히 가까워진 이후였다. 로랑 크로잔은 정이 깊었다. 사람을 쉽게 믿는 바보는 아니었으나 사람을 좋아했고 그의 제멋대로인 성미와 이해타산이 분명한 성격 덕에 그것을 내보일 기회가 없는 것뿐이었다. 


“시올. 사람은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 거야.”


로랑은 그 작은 휴게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매번 경매에 참가하는 귀족 하나가 다가와 그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는 로랑이 입에 무는 시가 끝에 친절하게도 불을 붙여주었다. 로랑은 뒤를 돌아보고 시올을 보고는 조금 입매를 끌어올려 웃고는 곧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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