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텍사스
뉴욕과 텍사스의 경기는 뉴욕 전체를 흥분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이타카만 해도 그랬다. 당장의 시험과 과제 속끓는 문제들을 속시원하게 털어버리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묻어버린 젊은 대학생들이 몰려나와 지붕을 맞대고선 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펍은 웅성거리고 북적거리고 시끄러웠다. 그나이 또래 사내애들의 음탕한 농담들 사이에 말없이 교수들이 자리를 비집고 앉아있었다. 어깨에 묵직하게 근육이 불거져나온 사내애들 팔을 하나씩 두르고 헤프게 옷을 차려입은 여자애들도 더러는 보였다. 대학가의 펍은 더럽고 값이 쌌다. 버거운 학비를 대는 대학생들은 돈이 없었고 펍도 값을 낮추지 않으면 해먹고 살기 어려웠다. 대학가에서 좀 더 벗어나 시가지로 들어서면 그 때 부터는 젊은애들이 중년배들과 뒤엉켜 큰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텍사스 촌놈들! 술배가 두툼하게 살이 오른 중년들은 자리에 앉아 텍사스 욕을 하면 젊은 애들이 뒤에서 웅성거렸다. 뉴욕은 대부분 이겼으나 텍사스와 미시시피를 두고는 더러 지기도했다. 뉴욕이 텍사스에게 기분 좋게 이기는 날이면 중년배들은 돈 없는 젊은 놈들의 술값을 얇은 지갑을 탈탈 털어 내고 자리를 떴고 집에 가서는 나잇살이 두둑하게 오른, 왕년에는 젊고 예뻤을 아내에게 가서 흠씬 두들겨 맞았다. 이든의 뉴욕은, 뉴욕 뉴욕이 아니라, 뉴욕이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맨하탄이 있는 뉴욕이 아니라 이타카의 대학가, 밤이면 어깨에 어깨를 나란히하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중년들이 어두운 시가지를 비틀거리며 걷는 거리가 그의 뉴욕이었다. 텍사스 촌놈들을 외치면서 거리를 비틀거리는 젊은 애들과 대학가. 비틀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젊은 애들 사이를 두 손을 허름한 양복 주머니에 움푹질러넣고 선선히 걸어나가는 교수의 뒷모습과 헤픈 웃음에 헤픈 화장을 하고 술에 취해 남자의 품에 안겨 거리를 나서는 여자애들이 있는 뉴욕이 그의 뉴욕이었다.
펍의 티비는 TV라기보다는 텔레비전이라고 발음하는게 더 그럴싸해보일 정도로 낡고 육중했다. 모니터에서 관중들이 소리지르고 야유할 때마다 티비를 받치고있던 녹슨 철제선반이 덜컹거렸고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불룩한 모니터는 가끔 초록색 잔디 대신 눈 아픈 붉은 선을 죽죽 그어댔다. 그래도 이든은 알아보았다. 오늘도 쿼터백은 리차드 포드다. 뉴욕 자이언츠의 사랑받는 쿼터백. 사실이 그랬다. 리차드는 미국 영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처럼 전형적인 쿼터백이었다. 그는 백인이었고, 뉴욕 센트럴 하이스쿨을 졸업했고, 뉴욕 주립대를 다녔으며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멍청하고 아름다운 치어리더같은 여자와 연애를 했다. 뉴욕 대학들 사이의 네트워크라는 것은 무시할 것이 못됐다. 가끔 교수들은 몇 십년전 가르쳤던 제자의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으며 개중에는 뉴욕 애들이 개처럼 달려들어 숭배하는 리차드의 이야기도 포함되어있었다. 텍사스의 공격수가 공을 옆구리에 낀 채로 필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시골 촌뜨기들! 관중들의 목소리는 악에 받쳐있었다. 고함을 지르고 발을 구르며 팔다리를 허우적거린다. 아메리칸 풋볼의 관중들은 선수들만큼이나 흥분하는데 도가 튼 놈들이었다.
이든은 술잔을 비우고 위스키 병을 기울여 잔을 채워 넣었다. 남자의 눈이 화면에 머물러 있다가 방금 채워넣은 술잔으로 옮겨갔다. 관중들은 여전히 야유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를 비명처럼 내지르고 있었고 귀가 따가웠다.
“풋볼 좋아합니까?”
“좋아하지”
“뉴욕? 텍사스? 그래도 역시 풋볼은 뉴욕 자이언츠죠”
“안그래요?” 동의를 구하듯 묻고 이든은 잔을 들이켰다. 남자가 설핏 웃었다.
“뉴욕엔 리차드가 있다고요. 리차드 포드. 뉴욕의 영웅! 영웅이라고 하면 수퍼맨이나 배트맨같겠지만 오, 아니지. 뉴욕에서 리차드는 그 정도는 하죠. 배트맨은 고담을 지키지만 리차드는 뉴욕을 지키니까.”
이든은 어깨를 들썩거렸다. 눈앞의 술잔이 금방 비워졌고 남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침엽수처럼 짙은 색의 녹색 눈이 남자의 녹안을 바라보다가 가늘게 휘었다. 누런 조명이 비칠 때 마다 조금씩 머리에서 빛이 반사 된다. 저런 머리는 검은 머리칼이 아니다. 검은 머리는, 아이다처럼 검은 머리를 한 사람은 저런 조명 아래에서 빛이 반사되지 않는다. 아주 짙은 색으로 빛이 가라앉고 머리칼이 음영처럼 보인다. 이든은 남자의 머리가 검은 색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짙은 눈썹 아래에서 눈이 웃고있었으나 왜 웃고있는지를 따질만큼 제정신은 아니었다. 이미 위스키 한병이 위 안에서 출렁거렸고 식도가 타는 듯이 화끈거렸다. 텍사스는 여전히 공을 쥐고 달리고 있었다. 텍사스의 터치다운. 해설자가 말하는 순간 이든은 다시 채운 잔을 끝까지 들이켰다. 뉴욕의 성격 나쁘고 우아한 관중들이 일어서 야유를 쏟아냈다.
“텍사스가 좀 하는 것 같이 보이긴 하지만 리차드가 나오면 끝난다고요. 리차드! 배트맨 리차드! 솔직히 텍사스 조무래기들 하는 전술이 다 거기서 거기지 안그래요? 리차드만 나오면 끝난다고요.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놈들!”
팬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오버액션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내뱉었기 때문에 팬이었다. 팬들이 구단을 좋아하는데는 정상적인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섰고 그건 제아무리 똑똑한 놈들이라도 변함없었다. 오히려 똑똑한 놈들이 더 멍청해지기도 했다. 랩이나 연구실에서는 천재며 인재같은 소리를 듣던 놈들이 아메리칸 풋볼 앞에서는 이성을 잃은 고릴라처럼 흥분해서 날뛰었다. 가끔은 대학가에 폭력을 몰고다니는 놈들도 있었고 그런 놈들의 주먹질은 대체로 음주로 인한 쌍방과실로 알음알음 조용히 처리되었다. 텍사스는 뉴욕 놈들을 기집애들이라고 놀렸지만 사실 놈들도 치고박고하는 싸움은 더러 했다. 특히나 풋볼에 대해서는. 텍사스는 터치다운에 기분좋게 엑스트라 포인트를 더했다. 뉴욕 관중들의 야유가 커졌으나 텍사스 관중들의 환호성에 묻혀 잡음처럼 들렸다. 공격권은 뉴욕에 넘어왔으나 오늘 키커는 영 미덥지 못했다. 리차드는 뒤에서 뭔가를 지시하고 있었으나 도통 먹혀들어가는 법이 없었다.
“젠장. 시골 뜨내기들이. 키커가 오늘 따라 컨디션이 안좋은 모양인데. 솔직히 리차드 하나면 텍사스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리차드 같은 쿼터백 하나면 다른건 남 부럽지 않지만 오늘은 좀”
독한 보드카를 작은 잔에 따라넣고 이든은 미간을 지푸렸다. 짙은 녹색 눈이 반쯤 찡그려진 눈커풀에 가려졌다가 드러나기를 서너차례 반복하는 동안 남자가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남자의 짙은 눈썹 아래에서 서글서글한 눈이 웃는 듯 보였다.
“이봐”
“거기 술병 좀 집어주지”남자는 텍사스 억양을 썼다. 빌어먹을 텍사스. 짙은 눈썹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듯했던 눈이 단순한 흥미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눈치채는데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남자도 이든도 취해있었으나 인사불성이 되어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등줄기에 오한이 들었다가 사라졌다. 방금 쥐었던 병을 가리키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그 보드카. 술기운이 도는 손이 더듬더듬 바를 더듬어 방금 따라 넣은 술병을 건네주자 남자는 잔에 보드카를 채운 뒤에 한 번에 들이켰다. 깨나 목이 아플터였으나 그는 신경 쓰는 기색이 없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의자에서 남자가 일어났다. 육피트가 훌쩍 넘을 것 같은 큰 키. 일어선다면 시선이 마주칠 만큼은 큰 것 같았다. 이든은 남자가 방으로 돌아갈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몸을 돌려 이든에게 걸어왔다.
“이봐”
남자가 한 번 더 불러세우듯 말하는 찰나에 이든은 눈을 껌벅거렸고 곧 머리가 아파왔다. 퍽퍽한 주먹이 오른쪽 뺨을 강타했고 남자가 일어섰을 때 난 것보다도 훨씬 큰, 마치 텍사스 관중의 우아하지 못한 야유소리 같은 큰 소리를 내면서 이든이 앉아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고 이든은 머리를 감싸 쥐며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다가 다음 주먹에 한번 더 뒤로 넘어졌다. 무릎이 꺽이면서 넘어졌으나 이면에는 팔꿈치에서부터 팔목을 바닥에 댄 채로 몸을 지탱했다. 남자는 여전히 웃고있었다. 빌어먹을 텍사스. 입안이 비렸다. 고작 두 번 주먹을 맞은 것으로 입안이 터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실상 터져있었다. 낡은 목재바닥이 몸 아래에서 삐걱거렸다. 피 섞인 침을 탁 뱉어내고 일어나다가 다시 남자의 주먹에 맞고 넘어져 이번에는 일어서는 것을 포기하고 주먹을 날렸다. 남자의 머리끝을 스치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왼뺨에 독한 펀치를 맞고 다시 손을 뻗어 그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손 끝에 머리가 스친 감각은 있었지만 예상보다도 남자는 충격을 받지 않은 듯 했다. 그의 주먹은 단단했고 단련된 사람처럼 퍽퍽했다. 맞은 곳들이 하나하나 시큰하게 아파왔다. 제대로 아프다고 느끼기도 전에 다음 주먹이 꽂혔고 그 때마다 이든도 손을 내질러 남자를 쳤으나 명중률은 다른 듯 했다. 이든은 누워있었다. 머릿속에서. 뒤돌아 나가는 크루거의 주먹에 입술에서 터진 피가 묻어 흥건하게 젖어있는 것을 크루거의 얼굴 위에 겹쳐서 바라보면서 애써 짐작하는 방향대로 얼굴을 피하기는 했지만 결국 싸움이 끝나기 전에는 한 대라도 더 때리는 놈이 이긴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가 폭력을 멈추기 전까지 성질 나쁜 우아한 뉴욕 놈답게 팔을 뻗었다.
텍사스의 승리를 알리는 해설자의 흥분 섞인 목소리가 가시기 무섭게 남자는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내리치던 주먹을 거뒀다. 얼굴에 묘한 흥분이 어려있었다. 리차드 포드는 헬맷을 집어던지면서 뭐라고 욕을 하고 있었으나 카메라는 리차드를 짧게 비추고는 다시 승리로 흥분한 텍사스의 관중들을 비췄다. 빌어먹을 텍사스 놈들. 남자는 한참 화면에 시선을 두었다가 몸을 일으켰다. 남자의 몸무게에 짓눌려있던 이든도 곧 주변의 테이블을 짚고 일어나 소매로 입술을 거칠게 문질러 닦았다. 몸을 고스란히 감싸고있던 흰 터틀넥 티셔츠의 소매에 짓무른 입술에서 흐른 검붉은 피가 지저분하게 묻었다. 이든은 바를 짚고 기대어 서서 컵 안에 남은 보드카를 입안에 털어넣었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동안 목 안쪽이 쓰리게 아파와 이든은 미간을 잔뜩 지푸린 채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컵을 내려놓았다. 턱. 마르고 건조한 소리가 펍 안에 울렸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빌어먹을 텍사스!”
악에 받친 관중처럼 시야에서 사라진 남자의 뒷통수에 내지르고는 오늘의 스코어가 지나가는 화면을 짙은 색 눈을 홉뜨며 지켜보았다. 이든은 주머니를 뒤져 꾸깃꾸깃하게 구겨진 담배곽을 찾아내 서둘러 입에 물었다. 손은 술이 아니라 마약을 한 사람처럼 덜덜 떨리면서 담배를 꺼냈고, 그 때 마다 몇번이나 얇은 개비가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갔다. 겨우 입에 담배를 물고 한모금 빨아들인 뒤에야 이든은 안도한 사람처럼 숨을 내뱉었다. 담배연기가 터진 입안을 쓸어내고 지나갔다.
젠장할 뉴욕. 텍사스 정도는 이겨줘도 좋았다. 특히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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