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th



 “손 쥐어봐요.” 

 욕실에선 목소리가 울렸다. 이든은 그의 흰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채로 눈을 감고 그의 오른손 손목 쥐었다. 때로 그는 이든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생소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든의 전공이, 그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들이 무엇인지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이든은 채 완전히 쥐어지지 않은 그의 가늘고 흰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손등 위에 손을 겹치고 그의 주먹을 안으로 말아 쥐도록 천천히 손을 접었다. 이든의 품에 들어오기에 약간 넘치는 등허리는 그의 얼굴만큼 희었고, 이든은 따듯한 수증기 안에서 작은 물방울이 맺힌 목덜미 위에 잘게 소리가 일도록 입을 맞췄다. 펴봐요. 루윈.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하나하나 펼쳤다. 완전히 손바닥과 손가락이 수평이 되도록 그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동안 이든은 그의 어깨에 턱을 괴고 그의 손가락들을 바라봤다. 제 때 치료 받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의 손의 감각은 아주 더디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 감각 중의 일부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든은 그의 오른손이 할 수 있었던 수 많은 일들을 떠올렸다. 자신의 넥타이를 매는 동안 그의 오른손은 얇은 넥타이를 받잡고 있었고, 머그컵을 쥘 때면 오른손으로 자신의 컵을 들었다. 침대에 앉아 책장을 넘기거나, 이든의 머리칼을 쓸어주던 손도, 소독약을 집어드는 집게를 집던 것도 그의 오른손이었다. 이든은 뜨거운 물 속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손끝을 바라보다 그의 오른손을 내려놓고 왼손을 두 손 안에 쥐었다. 검지와 중지에 이제 막 물집이 잡혔다가 굳어지기 시작해 아직 말랑말랑하게 굳은 불투명한 굳은살을 따듯한 물속에서 손끝으로 살살 비벼 문지르고 그의 손가락과 손바닥에 묻은 검은 잉크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문질러 닦아 냈다. 
 그의 오른손은 여전히 컵을 쥐거나, 신문을 집을 수 있었지만 글씨를 쓰거나 얇은 종이를 넘기는데는 부정확했다. 이든은 그의 필기체를 기억했다. 그의 글씨는 누가 보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와, 그의 목소리를 닮아있었고 이든은 그의 글씨를 마치 그를 좋아하듯 좋아했다. 그는 말을 할 때 군더더기 없는 정확하고 분명한 발음으로, 그리 크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처럼 그의 글씨는 꾸밈은 없었지만 보기 좋게 위아래로 흘려 쓰여 있었고 단정하고 알아보기 손쉽지만 잘 쓴 글씨라는 것도 한 눈에 들어왔다. 그들 사이에는 오가는 말이 적었고, 오가는 말이 적었던 만큼 말 이외의 것으로 이야기를 나눠야하는 경우도 드물었으나 이따금 그는 그의 단정한 필기체로 무언가를 적어놓고는 했다. 차키 아래에 끼워진 메모나, 중요한 일을 적은 종이 같은 것들. 

 “아프진 않아요?”
 “오히려 아프지는 않아요.”

 이든은 그가 빈 공책에 글씨를 빼곡히 옮겨 적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번도 아는체 하거나 그것을 그의 앞에서 눈여겨 본적은 없지만 루윈 이바노브가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생소한 광경이었다. 마치 그가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서명을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그가 잘 갖춘 양복을 입고 오른손으로 서명을 하는 모습은 곧잘 영화에 나오는 장면만큼이나 익숙한 것이어서, 그는 아주 전형적인 그런 인물들의 표본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고,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오른손으로 담배를 피고, 오른손으로 단추를 잠그는. 그러니까 그것은 한편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을 보았을 때 그가 대다수의 사람 중 하나인가 아닌가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보이지 않는 사인 같은 것이었다. 루윈 이바노브는 오른손으로 일을 하고, 서명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 중의 하나였고, 대다수의 기득권층 중의 한 사람이었다. 루윈 이바노브의 오른손이 더 이상 이전만큼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든에게 있어서 그가 오른손으로 글씨를 쓸 수 없는 것 외에는 더 큰 문제점은 없는 데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하루에도 몇 장씩 느리게 공책을 채워나갔다. 처음 글을 익히는 아이가 쓸 법한 숙달되지 못한 삐뚤빼뚤한 글씨를 보며 이든은 속을 앓았다. 
 그는 은행에서 돌아와 이든을 기다리던 때처럼 식탁에 앉아 이든을 기다렸다. 신문이나 책을 읽는 대신 공책에 글을 옮겨쓰는 것이 바뀌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의 왼손 약지에는 이든의 손에 끼워진 것과 같은 반지가 끼워져있었고 그는 제법 그것이 거슬릴 법도 한데 천천히 글씨를 써 나갔다. 이든은 조용히 식탁 맞은편에 앉아 그가 글씨를 쓰는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곤 했다. 루윈은 이든이 가까스로 고개를 돌리고 나면 조용히 이든의 얼굴을 바라보고나서 책을 덮었다. 이든은 루윈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그가 다시 글씨를 적어넣는 것을 보는 것을 못견뎌했다. 
 이든 플로베르는 루윈이 이 넓은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싫어했고 그리고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루윈은 혼자서 무언가를 할 때마다 그가 여전히 할 수 있는 것과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에 대면해야했고 이든은 그 생소하고 새삼스러운 상황 속에서 루윈이 혼자 있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하물며 이든의 앞에서 글씨를 처음부터 다시 써 나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습관처럼 미간을 찌푸리는 동작만이 서른이 넘은 남자가 그 과정을 몹시 벅차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든은 몸이 약간 더울 만큼 따듯한 물을 더 받으면서 루윈의 몸을 끌어안았다. 물이 어깨까지 차오르고 나서야 이든은 그의 두 손을 자신의 두 손안에 잡고 눈을 감았다. 그는 매일 오후, 또는 저녁까지도 작은 현미경으로 미세한 나뭇가지나 뿌리들처럼 생긴 신경계의 다발들을 관찰했다. 이든은 그의 머리에서부터 이어져 자신의 눈앞에 있는 흰 목덜미를 지나 어깨와 팔을 거쳐 손까지 이어질 그의 수만개의 신경들을 생각했다. 그의 손목에서 손바닥을 지나 손가락까지 가는 그 겨우 몇 인치 되지 않는 아주 얇고 미세한 길가운데서 무엇들이 길을 잃었는지 생각했다. 


*오른손을 다친 루윈. 4~5년후 배경. 패러랠. 카테고리 변경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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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