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msbury 05
푸르스름한 빛깔에 젖어있는 그를 보고 있으면 슬퍼졌다. 아침이 다가오면 그는 다시 집으로 간다. 여기가 아니라. 집으로.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옷가지를 집어 올릴 때 마다 그의 희고 마른 등이 굽었다. 비스듬히 창을 등지고 선 몸의 반이 푸르스름하게 젖는다. 등을 둥글게 말 때면 간밤에 수 없이 손가락 끝으로 헤아렸던 그의 척추가, 물고기의 뼈처럼 도드라져 나오는 둥근 뼈 들이 살갗 밖으로 튀어나온다. 루윈. 이름을 부른 것 같았는데 입 밖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금방 울음을 터트리려는 아이처럼 눈가가 쓰려왔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깨우지 않으려는 듯이 조용히 바닥에 떨어진 자신과 그의 옷가지들 가운데서 자신의 것만을 추려 차례로 갖추어 나갔다. 하얗게 빛을 받던 몸이 그가 어제 입고 있었던 갈색 수트로 덮여 나간다. 조용히 몸 위에 덮여있던 시트를 걷었다. 셔츠에 손을 꿰어 넣고 앞을 여미고 있던 그의 뒤로 다가가 허리를 가만히 끌어안는다. 루윈. 손이 멈췄다. 아주 잠시 동안. 루윈. 보채는 아이처럼 수차례 이름을 부르는 동안 그는 가장 아래 단추부터 천천히 셔츠의 단추를 채웠다. 셔츠의 단추를 채우는 손을 두 손으로 잡아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는 다시 손을 들어 천천히 다음 단추를 여몄다. 목 안쪽에거 뜨끈하게 올라오려던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눈시울이 따가웠다. 그의 뒷모습은 늘 서러웠다. 그는 해가 뜨면 집으로 돌아갔다. 햇살처럼 웃는 밀리 이바노브가 기다리는 집으로. 그의 셔츠는 늘 손가락 두 마디가 들어갈 만큼 공간이 남았다. 단정하게 잘린 갈색 머리 아래로 매끈하게 이어지는 목덜미 위에 입을 맞췄다. 셔츠가 느슨하게 감추는 목덜미 뒤에. 그는 잠시 손을 멈추었다가 다시 단추를 채워나갔다. 그의 손을 여러번, 수 차례 아래로 끌어내렸지만 그는 다시 단추를 여몄다.
"아침 먹고 가요"
"루윈"
그는 잠시 손을 멈추었다가, 셔츠의 깃을 세우고 넥타이를 두른다. 가슴에 맞닿아있는 등의 온도가 식은 것처럼 느껴져 견딜 수가 없어진다. 그는 거울을 보지 않고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넥타이를 맨다. 학창 시절의 그가 늘 단정하게 떨어지는 넥타이를 매고 있었던 것처럼. 그가 맨 넥타이의 매듭은 한눈에 보기에도 익숙했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많은 남자들의 목에 매여 있는 것뿐이었을 테지만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창백한 손이 매듭 사이에서 검지를 구부려 천을 잡아당기는 모습을 머릿속에서 상상했다. 햇살은 아직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방 안에 비스듬히 번진 빛들 속에서 먼지들이 별처럼 느리게 빛났다. 그의 머리칼 끝에서 빛나는 것들을 바라보다가 가만히 머리칼 위에 입을 맞췄다. 그 위에는 목덜미에, 그리고 뒷목에. 입술을 맞춘 자리를 그가 하얀 손끝으로 더듬는다. 어디에 입 맞추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이. 그 광경이 슬퍼서 또 잠시 웃었다. 그는 아마 자신의 입술 자욱이 밀리가 발견 할만한 곳에 있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있다 가요. 부인은 모르잖아요.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조용히 약간만 고개를 틀어 눈을 마주치고는 다시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밤새 바닥 위에서 구겨진 옷들은 주름이 져 있었다. 이든은 그가 부인에게 변명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과연 변명할 만한 일이 있을까. 그녀는 그의 옷 위에 흩어진 구겨진 자국들에 대해 몇 번이나 보아오면서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 같았다. 아마 밤새 그가 서재의 의자나, 소파에 앉아 등걸에 몸을 기대고 책을 펼쳐 읽으며 자신과 내내 이야기 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오래 앉아있는 사람의 등은 저렇게 구겨지지 않는다. 당신은 집으로 가네요. 집에 가면 부인도, 딸도 있겠죠. 목소리는 꽉 잠겨있었다. 밤새 춥지도 않았는데, 그의 옅은 체온을 내내 끌어안고 있었는데도 목소리는 금방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처럼 꽉 잠겨있었다. 목이 아팠다.
집이라는 말을 발음할 때 마다 눈시울이 따가웠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아 눈커풀을 닫았다. 눈물이 고인채로 눈을 감으면 눈 안쪽의 검은 막이 뜨끈하게 아파온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었나. 그의 목덜미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책에서 묻어나오는 활자들의 냄새, 오래된 고서적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좋은 곰팡이 냄새, 손끝에 묻었을 잉크 냄새 같은 것, 그의 아내가 늘 깨끗하게 빨아서 정갈하게 다려 놓은 셔츠에서 나는 가루 세제의 냄새 같은 것, 그의 사무실에서 늘 흘러나오던 차가운 공기의 냄새, 그의 아내의 향수 냄새. 이든은 울고 싶었다. 처음에는 우연히 울고 싶었고, 그 다음에는 이따금 울고 싶었으나, 이제는 줄곧 그를 보면 울고 싶어져 왔다. 그가 제게 등을 돌릴 때 마다,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한 침대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 때 마다, 등을 돌린 채 푸르스름한 빛에 젖어있을 때 마다, 그의 목덜미에서 아내의 향수 냄새가, 셔츠에서 나는 가루 세제의 내음이 날 때 마다.
당신 목덜미에서, 내 냄새가 났으면 좋겠어요.
이를 세워 목덜미를 깨물었다. 약간의 붉은 자욱들은 그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라질 것이었다. 이든이 속삭이는 말은, 말보다 공기처럼 천천히 흩어졌다. 여전히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빛줄기 가운데서 먼지들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그는 늘 돌아가야 했다. 제게서, 그가 원래 속해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루윈 이바노브. 집으로 돌아가는. 돌아가는. 자신은 늘 그가 잠깐 머무르는 곳에 불과했다. 잠시. 클럽의 응접실에서, 부인 몰래 입 맞추고는 했던 그의 서재에서, 심지어는 자신의 집에서 조차. 그는 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주 오랜 시간을 자신과 머물고 난 뒤에도 그에게는 가야할 곳이 있었다. 그의 서재가 고스란히 갖추어져 있는, 그가 늘 쓰는 펜이 잉크 곁에 가지런히 놓여있고 그의 수트들이 나란히 어깨를 맞추어 걸려있는 옷장이 있는 집으로. 그의 집에는 그를 닮은 딸이 있었다. 그녀의 성격은 그보다는 밀리를 닮은 듯 했지만 또래와 비교해서 조금 더 흰 얼굴, 총명하게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나 양갈래로 땋아내린 얇은 갈색 머리칼 같은 것은 그녀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이든은 어린 루윈을 알고 있었다. 지금과 비슷한 성격의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열아홉, 열여덟의 그를. 그가 집으로 돌아가면 약간 뻗친 앞머리를 손으로 열심히 빗어 내리며 그의 어린 시절의 얼굴을 닮은 아이가 달려 나와 그를 끌어안을 것이었다.
그는 베스트를 갖추어 입고 손에 재킷을 들었다. 이든은 가만히 돌아보지 않은 채로 재킷을 집어든 그의 손끝을 바라보다가 가까스로, 움직이지 않는 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품안에 있던 온기가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처럼 손끝으로 모였다가 흩어졌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가 따듯하게 덥혀진 가슴께를 느리게 훑고 지나갔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재킷에 팔을 밀어 넣었다. 앞을 여미고 재킷을 두어번 손으로 쓸어 내리자 툭,툭 소리가 났다. 루윈이 겨우 이든을 돌아보았을 때, 이든은 침대의 모서리에 앉아있었다. 애처로운 얼굴로 그의 흰 얼굴을 바라보면서. 조금 전에 말했던 것 같은 목소리로 더는 보채지 않았다. 아무리 울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 같았다. 그가 의자 위에 놓여있던 페도라를 집어 들어 갈색 머리칼 위에 눌러 썼을 때 이든은 천천히 침대 모서리에서 일어났다. 벗은 발이 시려왔다. 이든은 셔츠를 입고, 대충 바지를 꿰어 입은 채로 그의 뒤를 쫓았다. 문 앞까지 배웅할게요. 울음을 참은 탓일까 머리가 아파왔다. 관자놀이를 손으로 눌렀다가 떼면서 침실을 지나 집 안을 걷는다. 집에는 거주하고 있는 메이드도, 일꾼도 없었다. 일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어머니의 말에 이든은 한사코 사양했다. 집은 늘 비어있었고 이든은 그 적막 가운데서 바다를 건너온 책들을 선별하고, 골라 번역했고, 이따금 몇 가지의 칼럼과 기사들을 써냈다. 외로웠다. 아주 자주. 또는 그러한 빈도로. 일주일에 두어번 일하는 여자가 들어와 밀린 집안일과 청소를 해내고 약간의 스프와 요리를 했다. 그러고 나면 그는 하루종일 언제 다시 루윈 이바노브가 올지 모르는 집 안에 앉아 홀로 시간을 보냈다. 거실은 조금 더 빛이 들어 밝았다. 이든은 루윈의 등 뒤로 길게 지는 그의 그림자의 끄트머리를 밟으며 혼자 살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집을 가로질렀다. 문을 열었을 때 아침의 공기, 아직 이슬이 가시지 않은 공기의 냄새가 밀려들었다. 축축하게 젖은 공기는 일요일 아침이면 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종류의 것이었다. 공기는 밤 새 고요 속에서 스스로 정화된 것처럼 맑았고, 두어번의 기침을 할 정도로 쌀쌀했으며 온 몸이 젖을 내릴 것처럼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이든은 그가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문고리를 잡고 잠시 멈칫거렸다. 집 안에서 밖으로, 아주 약간 단이 있는 계단으로 발을 디디는 루윈의 뒷모습을 보며 이든은 그의 옷자락을 잡을까 잠시 고민했으나 우는 것이 소용 없다는 것을 안 아이처럼 이든은 조용히 그가 모르는 행동을 그만 두었다.
"플로베르"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이든은 문가에 기대어 서서 그의 갈색 눈동자를, 표정 없는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페도라를 벗어 입술과 입술이 포개지는 광경을 가린다. 여름이면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날 정돈되지 않은 정원에서 누가 훔쳐보고 있기라도 한 듯이. 덩굴들은 높게 자라 담을 덮었고, 담 밖에서는 정돈되지 않은 넝쿨에 가려 집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든은 그 정돈되지 않은, 멋대로 자라는 정원들을 내버려 두었다. 그것이 편안했다. 그의 정원은 영국식 정원에 보다 근접해 있었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산책로 만큼이나 편안했다. 가을이면 담의 안팎으로 심어진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작은 정원을 메웠다. 그의 입술에서는 간밤에 입맞춘 자신의 입술의 맛이 났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면 곧장 밀리의 인사로 덮일 입술 위에서 만져지는 자신의 흔적을 더듬으며 이든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손에 그가 잊은 손수건를 쥐어주었다. 그는 정말로 돌아섰다. 천천히 돌아보지 않고 걷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의 등은 늘 올곧게 서있었고 그래서 이든은 그의 등이 굽어있는 것을 좋아했다. 곧게 선 등은 돌아가는 등이었다. 그는 돌아보지 않는다. 정원을 채 다 걸어 정원 끝의 쇠로 된 빗장을 열고 귀를 가득 메우는 쇳소리와 함께 거리로 사라졌다. 이든은 문간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가 입 맞춘 흔적들이 고스란히 온기가 되어 입술 위에 남아있었다. 그는 오래도록 그 키스를 기다린 사람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을 마셨다. 폐의 안쪽까지 차갑게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핑 돌아나갔다.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지 오래였는데도 이든은 여전히 그 푸르스름한 공기가 가득 찬 아침이 슬펐다.
이든은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돌아간 하루를 이든은 느리게 보냈다. 바다를 건너 어렵게 도착한 독일 서적들을 손으로 몇 번씩 쓸어 넘기고, 고르고, 첫문단과 두 번째 문단을 번역하기를 하루 종일 계속했다. 재떨이 가득 담배 꽁초가 쌓였고, 손에는 만년필의 잉크가 묻었다. 이든은 흐르는 따듯한 물에 손에 묻은 푸른 잉크를 문질러 닦아 내며 전화가 울리는 소리를 오래도록 들었다. 오래도록 전화가 울리는 동안 그는 소파 위에 앉아 그것을 지켜봤다. 루윈 이바노브. 그의 전화는 손끝부터 떨려왔다. 마치 그가 전화한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든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등을 곧게 세운 채 예절 교본 속에 나오는 그림 같은 자세로 문을 나서는 루윈의 뒷모습을 생각했다. 그의 머리칼에 어울리는 갈색 수트, 약간의 스트라이프와 그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페도라. 이든은 그 전화가 울리는 것을 멈출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전화가 울리는 것을 지켜보다가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로 재킷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유흥가는 저급한 소리로 가득했다. 이든은 그 소란스러운 길거리에 서서 루윈 이바노브를 생각했다. 모든 것이 여기에서 보이는 것과는 정 반대인 남자. 등불은 약간의 누런 빛을 띄고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깔깔거리며 우아하지 못하게 웃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정뱅이들이 여자들과 음탕한 농담을 나눴다. 멋 모르는 젊은 남자애들은 그 거리에 몸담는 것이 자신의 미래에 어떤 의미가 되는지도 알지 못하는 채로 여자들의 치마폭에 휩싸여 건물들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조용했다. 거리에서 들리는 모든 소음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 중의 하나였고, 그의 아내도 거리의 여자들처럼 음탕하고 거칠게 웃지 않았다. 밀리. 밀리 이바노브. 그녀의 성이 이바노브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이든은 헛구역질 했다. 그녀의 엷은 색 머리칼이 조금 더 짙었다면, 적어도 상류층의 여자답지 않은 호탕함이 우아하면서도 보기 좋은, 기분 좋은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어깨가 조금 덜 무거웠을 지도 모른다. 사려 깊으면서도 활발하고, 아이를 사랑하면서 남편을 보살피는, 남편의 오랜 친구에게 까지도 조건 없이 상냥한 그녀의 성격이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든은 조금 더 자신을 합리화 시킬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신사분, 들렀다 가시지 그래요? 여자의 목소리는 약간의 유혹과 약간의 조롱으로 움틀 거렸다. 얇고 고우면서 날카로운 음색은 말을 할 때 마다 발음이 정확하지 못하게 일그러졌다. 이든은 깔끔한 영국식 억양으로 말하는 남자를 떠올렸다. 겨우 그의 전화에서 도망친 주제에 다시 그의 생각을 하며 누런 불빛이 빛나는 거리를 걸었다.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저급한 홍등가의 끝자락에 다가섰을 때, 이든은 가난하고 허름한 사람들이 모인 펍 안으로 기어들듯 들어갔다. 뭐야 저새끼는. 희미한 웅성거림 가운데서 이든은 느리게 웃었다. 느리게 웃음이 얼굴 위로 번져 나갔다. 이든은 이전에도 그러했던 것처럼 싸구려 맥주에 싸구려 닭요리를 시키고 앉아 술집 주인과, 그 주변으로 몰려드는 몇몇의 배불뚝이 사내들과 어울려 수다를 떨었다. 부녀자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우스운 낭만 문학의 이야기들, 발을 절룩거리며 저급한 거리를 빌빌거리고 돌아다니는 개의 이야기, 어느 광산의 파업 이야기며 지식인에 대한 우스운 조롱들. 이든은 가만히 앉아 싸구려 맥주를 들이키며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와 있을 때에는 한 번도 그렇게 웃지 못했던, 그런 웃음소리로. 그날 그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싸구려 술집에서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공원과, 거리와, 도서관 사이를 느리게 산책하고 아주 늦은 밤에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전화가 울렸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루윈은 다시 전화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살롱은 몇몇의 사람들도 붐볐다. 붐빈다고 표현하기에는 사람의 수가 적절치 않은 감도 있었으나 그들은 마치 오랜만에 본 사람들처럼 만나서는 곧장 간단한 안부와 함께 이야기를 꺼냈다. 이든은 소파에 비스듬히 앉은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학파의 이야기, 어느 논문의 이야기, 새로 대두된 의학적 사실들, 외교적 위치가 정치에 주는 영향들. 배불뚝이 사내들이 펍에서 떠들어대던 소리와 흡사한 주제들이었다. 다만 그 내용이 달랐을 뿐이다. 이든은 살롱 안을 천천히 둘러 보다가 흰 얼굴의, 갈색 머리칼의 남자를 발견했다. 그를 발견하는 것은 늘 손쉬웠다. 그는 이든이 그를 살롱에서 처음 만났던 날처럼 벽에 기대어 빛을 등지고 서있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 위로 쏟아지는 빛 속에서 먼지들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그는 두어명의 사람에 둘러싸여 새로 편집하고 있는 책의 이야기를 꺼내었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눈이 마주쳤다. 세 번, 네 번. 이든은 그와 눈이 마주친 횟수를 세다가 다섯 번, 그가 몸을 돌려 살롱을 벗어나는 것을 눈으로 좇았다.
손가락이 벽지를 훑었다. 볕이 좋았다. 열린 창문마다 볕이 들어 살롱과 복도 안은 모두 희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든은 몇 일간 보지 못했던, 보지 못하는 동안에도 줄 곧 눈 앞에서 아른 거리던 남자의 등을 보며, 등 뒤에서 문을 닫았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이든은 습관적으로 아주 기민하게 문을 잠갔다. 그의 등은 희게 빛을 받아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지난 몇 일간 떠올릴 때 마다 슬펐던 등이 가만히 미동하지 않고 방 가운데에 멈추어 서 있었다.
"딸이 보고 싶어 해"
이든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은 내가 없어도 괜찮았어요?"
목이 매여 말이 흐리게 번졌다. 말꼬리가 느리게, 숨이 모자란 사람처럼 흐리게 번졌다. 이든은 그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려다가 돌아서는 그를 보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맨 넥타이의 매듭을 이든은 늘 잘 구분했다. 간결하게, 그다운 단정함으로 정갈하게 매인 매듭에 시선이 머무르던 찰나 따듯한 입술로 입술이 덮였다. 이든은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손바닥으로 그의 갈색 수트 위를 보듬었다. 이든은 아주 오랫동안 그의 키스를 기다린 사람처럼 눈을 감고 그의 입술에 온전히 감각을 맡겼다. 볕이 따스했는데도 여전히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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