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msbury 03


 알아. 기억해. 기억하고 있어. 이든 플로베르는 눈을 감았다. 입술사이로 흘러나오는 가쁜 숨소리에 이든은 귀기울였다. 루윈의 목소리가 탁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창 밖에서 들어온 빛이 그의 얼굴을 가로질렀다. 반쯤 그림자에 잠겨있던 얼굴이 빛을 받아 창백하게 빛났다. 그는 영국인보다도 창백했다. 그의 성처럼 아마 그는 순수한 영국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루윈의 내리감은 눈커플 아래로 길게 늘어진 갈색 속눈썹이 호흡할 때마다 가늘게 떨렸다. 방안을 떠돌던 먼지들이 빛에 비추어 반짝거리며 빛났고 그의 속눈썹 위로 가만히 먼지들이 반짝거리며 내려앉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루윈은 불편한 자세로 매달려있었다. 그는 발끝으로 발돋움해 바닥을 겨우 밀어내다가 이따금 이든의 구두코를 밟았다. 혀는 뜨거웠고 초록색 크리스마스 푸딩처럼 부드러웠다. 이든은 그가 입을 벌릴 때마다, 라틴어의 R과 L을 발음할 때 마다 연구개를 쓸어내리고 떨어지던 혀를 생각했다. 이든은 묵직한 청춘의 무게처럼 자신에게 매달린 루윈을 끌어안은 채로 소파에 뉘였다. 그의 손이 닿았던 자리가 볼성사납게 화끈거렸고 이든은 여전히 목마른 사람처럼 그의 입술에서 입을 떼지 못했다. 다급하게 벌벌 떨리는 손으로 셔츠를 풀어내렸다. 단추를 하나 풀 때마다 성질이 나빠질 것 같았다. 소파의 팔걸이에 비스듬히 등을 기댄 채로 고개를 젖히고 헐떡거리고 있는 루윈은 그의 머릿속에 십여년 째 잠들어있었던 그림 같았다. 그는 이든이 잊지 않고 입을 맞추는 동안 자발적으로 입을 열었다. 입술이 열릴 때 마다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이든은 그가 방금 피우고있었던 담배를 알아맞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급하게 끌러낸 베스트와 셔츠 사이로 드러난 흰 피부 위에 자국을 찍어내면서 그를 감싸던 옷가지를 헤쳐냈다. 말 그대로 헤쳐냈다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선배. 속살거리는 소리에 그가 앓는 소리를 냈다. 루윈. 루윈이 고개를 들었다. 짙은 갈색 머리위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루윈”

 난 당신을 이름으로 부르고 싶었어요. 십년 전부터. 목 끝으로 차오르는 말은 입 밖에 내뱉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루윈. 애걸하는 목소리로 부르자 짙은 눈이 마주친다. 불편한 자세 탓에 고개를 가누기 힘든 것처럼 꼿꼿이 목을 들고 있었다. 루윈.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 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그가 허락했다는 것을 이든은 알았다. 루윈. 하얗고 마른 배 위에서 더 밑으로 입을 맞추며 내려가는 동안 이든은 계속 루윈,하고 이름을 불렀다. 입을 맞출 때 마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잘게 끊겼다. 살결에 부딪힌 이름들이 부스스 떨어져 내려 가루가 되어 빛을 받는 것 같았다. 이든의 한쪽 무릎은 소파 아래에 닿아있었다. 그는 루윈의 손목과 허리를 붙잡은 채로 경배하는 사람처럼 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그에게 입을 맞췄다. 채 다 벗겨지지 못한 옷가지들이 이든의 얼굴과 팔을 스쳤다. 루윈은 눈에 띄지 않게 몸을 내주었고, 이든은 그것도 금세 알아차렸다. 몸이 약간 흔들렸지만 그는 이든을 밀쳐내지 않았다. 꿇고있던 무릎을 세워 일어서 둘이 몸을 뉘이기 벅찬 소파에 그의 몸 위로 올라타자 루윈이 손을 뻗었다. 셔츠 위로 등을 끌어안는 손길에 숨을 들이켰다가 그의 머리 위로 내뱉었다. 여전히 루윈의 머리맡은 창가에서 비쳐든 빛으로 반짝거렸다. 허벅지로 그의 다리사이를 문지르다가 귓가에 입을 맞췄다. 아프면 얘기해요. 듣고있어요. 이든은 거기까지 얘기하고 목덜미에 입을 맞추면서 웃었다. 멈출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뒷 이야기는 칼칼한 갈증과 함께 삼켰다. 목 안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말라왔다. 햇빛에 달궈진 등이 따가웠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아마 아파서였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여유가 없었다. 이든이 자신의 것을 밀어 넣을 때 마다 루윈은 인상을 지푸렸고, 곧 얼굴은 놀라울 만큼 고통스럽게 변했다. 그의 미간이 지푸려질 때 마다 이든은 거기에 키스했다. 등을 끌어안고 있던 손이 셔츠 아래의 등을 긁었다. 그는 여전히 참을 성 있는 고상한 루윈 이바노브인 것처럼 단지 목 안에서 울리는 소리만을 냈다. 이든이 입을 맞추자 그는 가까스로 입술을 열었다. 혀를 얽는 동안도 그는 끔찍하게 아픈 사람처럼 겨우 입술을 연채로 목 뒤에서 소리를 냈고 이든은 겨우 대화대신 그를 달랠 수 있는 것을 찾기라도 한 것처럼 루윈의 입 안을 느리게 헤집었다. 이든이 그의 안에서 빠져나왔다가 다시 들어갈 때 마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루윈의 숨이 흘러나왔다. 등을 끌어안은 손이 절박해져있어서 이든은 그의 어깨 위에 이마를 기댄채 어깨에 입을 맞췄다. 가까스로 셔츠에 가려 보이지 않을 곳에 자국이 남았다.

 이든 플로베르는 소파 위에 가쁜 숨을 내쉬며 늘어져 있는 남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맞췄다. 바닥은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옷가지들과 진득한 체액으로 엉망이었다. 이든은 루윈의 어깨 위에 남은 자국을 몹시 신중하게 바라보다가 앞단추만 풀어진 채로 아직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았던 셔츠를 여며주었다. 창백하리라고 생각할만치 하얀 얼굴이 아주 조금 붉어져있었다. 땀으로 젖은 갈색 머리칼은 손가락이 빗는 그대로 가지런히 넘어갔다. 루윈. 이름을 부르자 루윈이 뺨 위에 손을 올리고 가볍게 소리가 나도록 입술을 맞춰주었다. 아주 조금 젖어있는 살갗에 살갗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여전히 방 안은 반짝 거렸다. 벽지는 아주 예쁜 크림색이었고 루윈의 살갗보다는 좀 더 진했다. 잘 수놓은 패브릭으로 만든 긴 소파 위에 몸을 늘이고 앉아있는 루윈을 바라보며 십년 전 그의 맞은 편에 앉아 손을 떨던 자신을 떠올렸다.
 루윈 이바노브. 선생이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요한 눈동자로 시선을 돌렸고, 모든 아이들이 대답할 때에도 루윈의 시선은 대답으로 들릴 만큼 충분하게 느껴졌다. 이든은 루윈이 시선을 돌리는 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때도 여전히 꽉 막힌 정장의 생김새를 한 교복 안에 갇혀있었다. 루윈 이바노브가 교정을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이든은 그의 등을 바라보며 기숙사 창가에 기대어 서있었다. 하얀 김으로 흐려진 창문을 손으로 닦고 나자 손이 시려왔다. 명확히 들리지 않았으나 누군가가 부르는 듯한 목소리에 이든은 몸을 피했다. 그가 돌아보는 모습을 창 모서리에서 훔쳐보며 이든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의 십대가 통째로 불타오르는 것처럼 엉망이 되어있었다. 이든은 여전히 훌륭한 학생이었고 공부를 잘했지만 루윈 이바노브와 마주칠 때 마다, 그와 관련 있는 것을 접할 때 마다 조금씩 엉망이 되어갔다. 무엇 하나 흐트러진 것 없었지만 가슴이 뛰었고 입술이 말랐다. 루윈 이바노브는 이따금 거기에 이든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표정으로 무언가가 신경쓰이기라도 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스쿨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였고, 가장 냉담하고 사교성 없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든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그의 주변 모든 것들이 그의 눈에는 정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든에게는 그랬다. 그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튀어나와있었고, 그 모든 것들 사이에서 색을 입었다. 아주 흔한 갈색 머리와 흔한 갈색 눈동자에 색이 입혀졌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색들이 가지런히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이든은 창백한 그의 뺨을 바라보다가 펜을 집어 들고 있는 그의 손과, 펜촉과, 노트에 관심을 기울였다.

 “루윈”

 나 기억해요? 그에게 물었을 때처럼 루윈을 바라보았을때 루윈은 조용히 눈을 감고있었다. 지친 몸을 그대로 쉬게 두려는 것처럼 그의 표정은 늘 그렇듯 무표정했고 고요했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있었던 감정이 물밀듯 밀어닥쳤다. 오랫동안 물이 말라있던 해변에 겨우 썰물이 들이닥친 것만 같았다. 목이 칼칼했고 가슴께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이든은 그의 곁에 앉아 가만히 손끝에 입을 맞췄다. 십년 전에도 똑같이 입맞추고 싶다고 생각했던 손 끝 위에. 하얀 손톱이 돋아난 손끝 위에. 그의 손끝이 이든의 입술에 묻어있던 타액으로 약간 번들거렸다. 손끝에서 옅은 담배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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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