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msbury 01


 하얀 컨트리 풍의 가구. 하얀 목재들과 하얀 목재 위에 갈색 나무판을 하나 덧댄 듯한 테이블. 격자에 짜 맞춘 듯 벽을 나누고 있는 흰 목재 틀 안은 큼지막한 꽃이 수놓인 패브릭으로 마감되어있었다. 재떨이 하나와 꽃병 하나. 테이블 위는 간소했고 사람들은 제각기 소파 위에 앉아 웅성거렸다. 파이프와 담배가 뒤섞여 자욱한 연기를 만들 때 마다 창백한 빛이 집 안을 비췄다. 밖이 비쳐보이는 흰 커튼이 이따금씩 바람에 날렸고, 그 때 마다 흰 가구가 빛을 반사시켜 온통 집 안이 부옇게 변했다. 눈 앞의 있는 사람의 얼굴 조차도 흰 빛줄기와 부연 담배연기로 아주 멀리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들의 대화는 가벼우면서 무거웠고 무거운 듯 가벼웠다. 이든은 옅은 분홍빛의 패브릭으로 마감된 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그는 그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한 번 씩 들어본 적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서로 교류가 있었을 법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영국에서 두군데로 일축되는 컬리지를 나왔으며, 그 후로도 대개는 동창회를 통해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낮았고 그들은 언성을 높이는 것이 얼마나 교양 없는 일인지 알고있다는 것처럼 여유롭게 굴었다.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처럼, 또는 멀리서 물길이 흘러나가는 소리처럼 사람들의 목소리가 웅성거렸다. 가끔씩 이든 플로베르를 그 장소에 데리고 온 남자가 벽에 기대어 미동하지 않는 이든에게 눈길을 주었으나 그는 약간 입술을 올려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이든 플로베르는 들어온 직후부터 줄곧 한 곳에 눈이 못박혀 있었다. 갈색의 쓰리피스 정장을 입은 남자는 아주 약간 늦게 들어와 창가 옆의 벽에 등을 기대고 자리를 잡은 뒤로 이든과 마찬가지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클럽의 토론 주제가 제창되는 사이 눈을 내리깔고 흘려듣는 듯한 표정으로 담배를 빨다가 이내 사람들이 다가오자 피우던 담배를 비벼 껐다. 창을 등지고 있는 탓에 그가 있는 곳만 그늘이 져있었고 그의 창백한 뺨은 빛만큼이나 창백해 보였다. 하얀 가구들에 반사된 빛이 얼굴에 닿았을 때에야 간혹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빛을 받아 일렁거렸다. 그는 말이 많지 않았고, 두어명의 사람들이 번갈아 그의 곁을 지켰다. 그는 사람이 적든 많든 간의 사람들의 중심에 서있었고 움직이지 않은 채 고요히 그들 사이에 있었다. 그는 벽에 기대어 서서 그들의 말을 듣다가 짧은 말을 내뱉었고 그럴 때 마다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롤 손가락 끝으로 옮겼다. 루윈 이바노브. 이든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있었다. 써보라고 하면 토시 하나 틀리지 않은 채로 말끔하게 누런 종이 위에 그의 이름을 적을 수도 있었다. 그는 한때 스쿨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의 하나였고, 가장 냉담하고 가장 사교성이 없는 사람 중의 하나였으며, 이든 플로베르의 십대를 통째로 날려버린 사람이기도 했다. 루윈 이바노브. 루윈의 페도라가 머리 위에서 약간 흘러내렸을 때 이든은 순식간에 손을 뻗어 그것을 잡을 뻔 했다. 루윈과 이든은 서로 다른 벽에 등을 맞붙이고 있었지만 이든은 그가 흘러내린 페도라를 손으로 벗어 창틀 위에 올려둘 때 까지도 그의 흰 손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바노브가 펜을 잡으면 이든의 눈에는 그의 내리깐 눈과 흰 손등만이 보였다. 그는 이따금 펜을 들어 펜을 잉크에 적셨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필체로 노트 위에 과제를 적어나갔다. 그의 손으로 쓰여지는 수식은 수식이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까워서 이든은 그의 수학 노트를 한권 훔칠 수 있었다면 무슨 댓가를 치르고라도 그렇게 했을지도 몰랐다. 다만 루윈 이바노브는 자신의 자리를 비우는 법 없었고 아주 세심했기 때문에 이든이 노트를 훔칠 기회조차도 주지 않았다.

  "관심있나"

 남자의 목소리는 걸걸했다. 그는 여전히 이 응접실 안에 어울리는 낮고 작은 목소리로 이든에게 말을 걸었고, 두텁지 않으나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잡힌 손으로 이든의 어깨를 가볍게 짓눌렀다. 이든은 그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어깨가 들썩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도 매우 적절한 단어였다. 

  "루윈 이바노브. 괜찮은 친구지"

 이든은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름을 들으며 루윈을 바라봤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들린 곳을 향해 시선을 두었고 이든과 눈이 마주졌다. 빛에 일렁거리던 눈이 다시 잠시 그늘에 가려 깊어졌다. 그의 잘 빗어 넘긴 머리칼 아래로 이마와, 콧잔등과 입술 위에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출판업계에 있는 친구인데 소개시켜주지. 따라와, 어쩌면 자네같은 인재를 좋아할지도 모르겠군." 



※ 1920년대 영국 브룸즈베리 클럽 배경의 패러렐. 종종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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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