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rant



 “랭커스터에는 처음이시라구요?”


 여자의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었다. “그렇습니다.” 마부는 마차에서 짐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의 짐은 큰 트렁크 두 개와 모자가 든 상자 두 개가 전부였다. 런던에서 랭커스터까지의 긴 여정을 마친 말들은 이제 잘 마른 여물을 먹고 충분히 쉬게 될 것이었다. 마부는 런던으로 돌아가기 전에 랭커스터의 크로잔 저택에서 이틀을 머물러 가기로 되어있었다. 흰 에이프런에 손을 문질러 닦은 메이드가 나와 빗물과 구정물로 더러워진 마부를 뒷문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저택은 그가 경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컸다. 으리으리한 저택을 광활한 평지가 둘러싸고 있었고 평기가 끝나는 곳에 사냥터로 보이는 숲이 맞닿아 있었다. 튠이 그 길을 거꾸로 거슬러 저택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 저택의 숲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져있는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튠에게 저택을 소개한 테오도라 크로잔이 크로잔 저택의 사실상 안주인이었다. 크로잔 후작 내외가 수년 전 빗길의 마차사고로 타계한 사실은 런던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었다. 튠이 랭커스터에 머물 곳을 찾을 때, 집에 장성한 어른이 없다는 이유로 크로잔 저택은 제외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조언을 들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미망인이 된 테오도라 크로잔이 본가로 돌아가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한 뒤에는 크로잔 저택에 머물기로 쉽게 결정을 내렸다. 넓은 저택 안에는 열일곱의 소년과 미망인, 그리고 오랫동안 그 집에서 일한 최소한의 고용인뿐이었다. 안색을 살펴야할 주인도, 큰 소란도, 어줍잖고 시시한 시골 귀족의 파티도 없을 것이었다. 지내기에는 썩 괜찮은 조건이었다.


 “소르디에 백작?”


 튠은 테오도라의 목소리에 멈췄던 걸음을 뗐다. 테오도라가 안내한 객실은 집주인 내외가 썼던 침실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넓었다. 저택의 앞뜰을 향해 난 창문에서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보기 좋게 내리쬐고 있었다. 열린 창으로 불어드는 바람에 흰 린넨 커튼이 안으로 휘날렸다.


 “달리 필요하신 건?”


 없다고 말하려던 차였다.


 “테오?”


 소매를 말아올린 흰 셔츠에, 갈색 승마바지, 손에는 승마모를 든 청년이 문간에 서서 튠을 바라보았으나 곧 시선을 거뒀다. 여기에 있다길래. 그는 처음부터 튠을 본 적 없는 사람처럼 테오도라를 향해 말했다. 청년이 승마모와 커프스를 손에 쥐자 집사가 자연스럽게 청년의 손에서 그것들을 받아갔다. 청년은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회색빛 눈은 청년의 얼굴이 움직일 때마다 청색으로도 보였으나 머리칼은 영락없는 옅은 회색이었다.


 “로, 이쪽은 소르디에 백작. 백작 이쪽은 로랑.” 


 

 오늘부터 머문다던 그 사람이네. 로랑의 목소리에서는 아직 가쁨 숨소리가 들렸다. 튠은 그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숨을 죽였다. 막 말을 달려 돌아온 듯 옅은 색 머리칼 사이로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들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고작 열일곱밖에 되지 않았으나 성년이 되자마자 부모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될 청년이었다. 로랑은 키가 컸고 골격이 다부졌다. 로랑은 물 흐르는 동작으로 채찍과 재킷을 벗어 고용인에게 건네고 있었다. 한 번도 타인의 아래에 서본 적 없는 익숙한 몸짓들이 고작 열일곱의 청년을 위압적으로 만들었다. 새파란 눈동자가 로랑의 손 끝에 잠시 머물렀다.


 “반갑습니다 백작.”


 가냘픈 외모와는 거리가 멀었다. 로랑의 말투에서도 그것이 묻어났다. 튠은 일전 런던에서 크로잔 후작 내외를 멀찍이서 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타계한 후작 내외의 얼굴을 정확히 반씩 섞어놓는다면 저런 얼굴이 나올 것이다. 어머니 쪽을 완전히 닮은 테오도라와는 생판 달랐다. 아름답다는 표현에 가까우리만큼 우아한 얼굴을 보완하기라도 하듯 뚜렷한 이목구비의 선은 크로잔 핏줄임이 틀림없었다. 로랑은 짐짓 여유롭게 웃고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거나 손님을 맞는 긴 말을 늘어놓는 대신, 보일 듯 말듯 아주 적은 각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잠깐 눈을 깜박인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

흰색 승마복인지 테니스복인지를 입은 청년 로랑이랑 마주친 어른 튠을 쓰고싶었는데 뭘 더 이어쓰려고 했는지 까먹어서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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